따뜻한 말 한마디가 어쩌면 누군가의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내가 기억하는 나를 바꾼 칭찬은 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서였다. 어떤 발표를 하고 나서 선생님이 해 주신 한 마디.
“역시 연재는 발표를 잘하네. 연재는 생각이 참 깊은 것 같아.”
사실 나는 발표 울렁증을 넘어 말하는 것 자체에 대한 울렁증이 극심한 아이였다. 나의 세상에선 자발적으로 손 들어 발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느낄 만큼 지극히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 그게 나였다.
속으로 몇십 번의 고민을 하다 처음 손 들어 발표했던 순간, 선생님에게 들은 그 한마디는 내게 주저하지 않는 방법을 일깨워 주었다.
프로 내향인인 나는 그 이후로도 내 성격을 고치려고 노력했다. 분단별로 할당된 장기자랑 시간, 분단장인 나는 팀장으로서 총대를 메야하는 상황이 있었다. 또 수십 번의 마음속 고민 끝에 TV에서 유행하는 춤을 우스꽝스럽게 췄고, 투명인간처럼 말없이 조용한 나의 의외의 모습은 반 친구들의 흥미를 유발했다.
이 기세를 모아 매년 수련원 캠프파이어에선 HOT의 안무를 선보이는 팀을 이뤄 활동했고, 이윽고 전교 어린이 부회장 선거에 출마해 교문 앞에서 나의 크루들과 선거 운동을 했다. 친구들의 추천으로 소위 '나서는 일'에 동참하게 된 나는 이후 진심으로 임하는 '딴짓'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이야기로 만든 대본으로 창작극을 하는 고등학교 연극반. 자작곡을 만들어 대학가요제에 나가고 싶은 꿈을 꾸며 가입한 대학교 밴드 동아리. 15초의 짧은 메시지로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방법을 함께 스터디하는 대학생 연합 광고 동아리. 대학교 캠퍼스 곳곳의 유휴공간을 찾아다니며 전시나 공연 행사를 개최하는 문화기획집단 창단. 만들어진 몇 안 되는 자작곡으로 멤버들을 모아 활동한 인디 밴드. 그리고 예술가들의 일거리를 창출하는 교육과 서비스를 만드는 창업.
이 모든 여정은 나다움을 찾아가는 시간이었고, 모두 재미와 의미를 좇는 과정이었다. 그 가운데에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창업한 이후 어린이들과 만나는 교육 프로그램에서는 늘 아이들에게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주저하지 않는 마음을 일깨워주려 노력한다.
나를 표현하지 못해 힘들었던 나는 사람들의 마음속 숨은 이야기를 표현하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아이에게 어른이 무심코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어쩌면 누군가의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고 믿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