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spite of의 정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연재

"in spite of의 정신"을 가져야 하는 거예요!


고등학교 시절 여름방학 논술 특강에서 만난 강사 선생님의 말이다. 죄송하게도 그 선생님의 성함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어령 선생님의 문하생으로 오랫동안 함께 했다는 이력을 자랑처럼 말씀하셨고 그분의 강사 활동명이 '청산'이었다는 것만 알고 있다. 수업 시간이 지루하지 않을 만큼 달변가셨던 청산 선생님은 중간중간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inspite of의 정신'을 가지며 살아가라는 가르침이었다.


논술 선생님이 우리말에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번역투의 말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강조하고 싶었던 이유에 대해 말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하지만 등 더 자연스러운 우리말이 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을 가지라는 이유는 표현이 영어보다 훨씬 다채로운 우리말이지만, in spite of에 딱 들어맞는 우리말 표현이 없는 것 같다는 것이다. 더 치열하고 애달프고 큰 용기가 필요할 것만 같은 뉘앙스를 표현하기에는 in spite of 만한 것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우리와 함께 하는 여름방학 논술특강 시간은 인생에서 아주 짧은 시간이고 수업에서 배운 것들 모두를 잊어버려도 단 하나 기억했으면 하는 것이 in spite of의 정신이라는 점을 역설하셨다. 덕분에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말을 기억하는 걸 보면 청산 선생님의 의도가 제대로 먹혀든 것이다.


내 인생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순간들은 다음과 같다.


- 나는 초내향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서는 연극부 활동으로 나를 표현하려고 애썼다.

- 나는 밴드부에서 엔지니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곡을 만들어 팀을 이뤄 대학가요제에 출전했다.

- 나는 말주변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 프런트맨으로서 관객과의 스몰토크를 이어갔다.

- 나는 생활비가 빠듯한 대학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모전을 통해 3번의 인도여행을 다녀왔다.

- 내 20대는 숫기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0% 이상 여초집단인 연합광고동아리 활동을 했다.

- 나는 토익점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문화 축제를 열어 졸업조건을 맞추었다.

- 나는 모아둔 돈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계획서와 PT로 초기 창업자금을 모아 창업했다.

- 인디음악은 돈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디뮤지션의 일거리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을 지향한다.

- 나는 책임지는 게 스트레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사람들을 모으고 함께 하는 프로젝트를 만든다.

-


in spite of의 정신으로 불확실성 속에 나를 내던져 온 시간들은 분명 성장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여정은 그 일이 점점 잘할 수 있는 일로 변모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이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한다'


이거... 그냥 '하면 된다' 아닌가?

(하면 된다는 우리 집 가훈이었다. 그 시절의 가장 흔한 가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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