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와 서울말

나의 모어에 대한 단상

by 연재

"경상도 분이신 줄 전혀 몰랐어요"


라는 말을 내가 들을 줄이야. 내 고향 경상북도 구미는 경상도 중에서도 조금은 특이한 방언을 쓰는 곳이다. 할아버지도 구미 토박이인 것을 보면 우리 조상 대대로 이 땅에서 살아왔던 것이 분명하다. 나는 태어나서 19살까지 구미 밖을 나가 살아본 적이 없으므로 나의 모어는 단연 구미 사투리(이하, 구미어)다.


구미어의 독특함은 종결 어미의 활용법에 있다. 경상도 사투리의 대부분은 경북과 경남을 막론하고 질문형은 <~노>나 <~나>로 끝내거나 종종 봉화와 같은 강원도와 가까운 경북의 경우 <~니껴>로 끝나는 경우가 있다. 구미와 바로 붙어 있는 대구의 경우 <~으예>를 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니껴>나 <으예>의 경우 서로 존대하는 상대와 대화 시 붙는 어미이고 친구처럼 동등한 관계에서는 <노>와 <나>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구미어의 경우 정말 특이하게도 <노>나 <나>와 더불어 <여>를 쓰는 빈도가 압도적으로 많다. 아래의 예시를 보자.


✅표준어

뭐 하니! 밥 먹었니? 너 지금 어디가?


✅일반적인 경상도 사투리

- 뭐하노! 밥 먹나? 니 지금 어디가노?


✅구미어

- 뭐해! 밥 머? 니 지금 어디가?


[여]로 표기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여]와 딱 떨어지는 발음은 아니다. 이 구미어 어미 [여]를 정확히 발음하는 한글 표기법이 없다. 훈민정음이 28자인 시절에는 표기할 수 있었을까? 저 말의 발음법을 최대한 풀어 설명해 보면 입 모양은 [으]에 가깝고, 귀로는 [여]에 가장 가깝게 들리며, 간혹 [유]로도 들린다. [으ㅕ]라고 표기하면 그나마 가장 가깝다. 하지만 너무 세세하게 따지면 헷갈리니 [여]라고 하겠다.


아래 영상을 참고해 보자.

https://youtube.com/shorts/JZAE1341TSo?si=wPX0Gi8VU5zMnylD


구미어 <여>의 활용 예시를 더 풍성하게 살펴보자


✅구미어

반말 : 니 또 왜케. 모가 또 문제고. 알았다 고마. 난쥬 이야기 하자. 나 나간데이. 도서관 가.

존대 : 왜그러세. 뭐가 또 문제예. 알았어. 난쥬 이야기 해. 저 가여. 도서관 가


✅갱상도

반말 : 니 또 와그라노. 모가 또 문제고. 알았다 고마. 낸쥬 이야기 하자. 나 나간데이. 도서관 간다.

존대 : 와그라십니까. 모가 또 문젠교. 알았습니데이. 낸쥬 이야기 하입시다. 저 갑니데이. 도서관 갑니데이.


이 <여>의 활용법이 토박이가 아니면 어려운 건, <노>의 대체어처럼 질문형 어미에 쓰이다가 일반적인 문장의 어미에도 쓰인다는 점이다. 위의 예시의 경우 <간다>를 <가여>로 표현한다. 게다가 동등한 관계가 아닌 손윗사람과의 대화에서는 이른바 구미어의 <여> 용법은 난이도가 높아진다. 19년 구미 살이 동안 나는 <여>의 용법을 정확하게 구사하며 살아왔고, 간혹 경남에서 이사 온 친구의 말을 촌스럽게 느끼기까지 했다.


때는 스무 살, 대학교에 진학하고 친한 경영학과 친구들이 어느 날 내게 물었다.


"연재야. 우리 친구 된 지도 꽤 되었는데, 왜 아직도 넌 존댓말이야?"


이런 만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구미어'의 특성에 대해 설명했고 간혹 장난치지 말라고 까지 말하며 믿지 못하는 친구도 있었다. 2005년은 인터넷 채팅체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던 시기로 <늑대의 유혹>, <그놈은 멋있었다>와 같은 1세대 웹소설이 유행하던 시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안녕하세여 또는 안냐세여

하이루 방가방가.


난 존댓말을 쓰거나 인터넷 소설체를 쓴 것이 전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간혹 오해를 받기도 했다.


스무 살 대학교 행정 OT를 앞두고 임시로 역 주변 모텔에서 묵고 있던 시절, 나의 말씨가 서울사람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 편의점에서 음료 하나를 사는 것도 부끄러웠다. 내가 한마디 꺼내면 상대방은 '엇 경상도에서 오셨어요?'라고 되물을 것만 같아서.


대학시절 친한 녀석들은 나의 말투를 따라 하기도 했다.


'응'이라는 말 대신

'맞나'를 남발하던 나를 따라 하던 친구도 있었다. '맞나'는 서울말로 대체해 보자면 '정말?' '오호' '응' '대박' 등의 의미를 무심한 뉘앙스로 내포하고 있던 2음절의 만능어였다.


사회초년생 시절 첫 직장에서 전화를 받을 때면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고 무지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온 지 20여 년. 분명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구미에 내려가면 몇 초 만에 되돌아가곤 했던 나의 모어가. 옅어지기 시작했다.


엄마와 통화하는 동안에도 서울사람처럼 말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서울말 쓰나' 하며 놀리기도 한다.


이제 나는 100% 서울말도 100% 구미 사투리도 아닌 묘하게 블랜딩 된 말씨가 되었다. 가끔 100% 구미어를 구사하는 행인을 지나칠 때면 뒤를 돌아볼 만큼의 분석능력은 갖추었지만 내가 온전히 100% 구미어를 구사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고향에서 산 시간만큼을 고향을 떠나 살아왔다. 이제 타향살이의 세월이 더 길어질 텐데 그럼에도 여전히 영화나 드라마 속 어색한 사투리 연기를 볼 때마다 참지 못하고 채널을 돌리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다.


구미어든 서울말이든 나는 나. 연재어 구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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