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꾼 건 어쩌면 '나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
정성을 다하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돈이 되는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시간을 들여 에너지를 쓰는 김에 '정성'을 담으면 어떤 의미로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배움'을 얻는다.
그동안 내가 정성 들여온 일들을 되돌아본다. 애석하게도 그것은 모두 '돈'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허무한 이상주의자의 꿈과 닮아있다. 이십 대 시절 만나는 사람마다 '왜 사냐고' 묻던 나는 대체 인생에서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내가 정성 들여온 일들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은 아래와 같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 대신 창작 연극부 활동에 몰두하며 내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내는 일
-대학교 시절 취업 준비 대신 대학가 활성화를 위한 문화기획집단을 창단하고 축제를 개최한 일
-군대 시절 병영문학상, 육군뮤지컬 배우 지원, 미군부대 파견 등 부대 밖 다양한 경험을 추구한 일
-대학 밴드 동아리 멤버 8인을 모아 인도로 거리공연여행과 사회적 기업가 인터뷰를 떠난 일
-사회초년생 연차를 맞추어 창작곡으로 홍대 앞 클럽에서 밴드활동을 한 일
-회사에서 비효율적인 행정업무를 타개하기 위해 스프레드시트로 자동화 행정양식을 설계한 일
-컨설턴트 활동을 하며 저비용으로 컨설팅 프로그램 운영 관리를 위한 온라인 시스템을 설계한 일
-프리랜서 기획자로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청년 예술가들의 창작 프로젝트를 운영한 일
-소셜벤처를 창업하며 예술가들의 일거리를 창출하는 교육과 서비스를 기획하고 운영한 일
-비영리 섹터 리더들과 함께 팀을 꾸려 자전거 인프라 확충을 위한 '메시지 라이딩' 장르를 실험한 일
이런 일들은 모두 떠오른 아이디어를 실현해 내는 일들이다. 그리고 대부분 '딴생각'으로부터 파생된 '딴짓'들 투성이다. 내가 속한 집단 혹은 사회에서 응당 그러해야 한다는 틀 거리가 생기면 나는 답답해했다. 선배들의 길을 답습해 온 동아리 생활에서는 관습을 어떻게 하면 의미 있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회사에서는 너무나도 비효율적인 행정업무를 자동화해서 불필요하게 소모되는 시간을 줄이고 의미 있는 일을 하는 데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바꾸고자 노력했다. 창업을 하면서는 무자본으로 재단, 심사위원, 파트너에게 가치를 제안하고 설득해 프로젝트 비용을 확보해 사회적 의미를 창출하는 일들로 연명해 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신기하다. 생각을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해 글로 잘 표현하고자 노력했던 시간들이 쌓이고, 내 사업을 일구기 위한 수없는 프레젠테이션을 거쳐 설득하는 말하기를 곧잘 하는 기획자로 성장했다.
기획은 설득하는 일이다. 내가 설득해 온 일에서 '돈벌이'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돈이 안 되는 일에 정성을 들여왔는데, 큰 수익은 아니더라도 주변에 함께 하는 예술가와 파트너들에게 일을 나누고 수익을 공유하며 지속할 만큼의 예산은 늘 따라왔다. 참으로 신기하지 않은가?
내가 정성을 다하는 방식은 아래와 같다.
-함께 일하는 파트너들과 철저한 기록과 공유를 통해 정보를 균질하게 배포한다.
-일의 목적과 대상을 분명히 하고 고비용-저효율의 상태를 저비용-고효율의 가심비 프로젝트로 변화시킨다.
-결과, 납품이 중요한 용역일지라도 중간 과정을 철저히 기록하고 공유한다.
-함께 하는 팀원에게는 역할과 책임에 따라 일하고 합류 시 초심과 동기를 명확히 파악한다.
-활동에 필요한 도서, 교육, 복지는 자원이 허락하는 선에서 기본을 챙긴다.
-나이와 직급, 경력이 무관하게 수평적 소통이 가능한 문화를 만든다.
정성을 다하면 그 끝에서 '나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의 방향성과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과 패턴이 보인다. 지금까지는 내가 경험해 온 삶의 이야기들을 엮어 나만의 길을 걸어왔다. 내가 추구하는 의미를 중심에 두고 정진하면 운과 돈은 적당히 따라와 주었다.
늘 돈이 되지는 않지만 하고 싶거나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어 왔는데, 때론 하고 싶은 일이 창출하는 영향력을 키우거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돈이 되는 일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요즈음 하게 된다. 직업세계에서 돈벌이가 유일한 의미인 것처럼 회자되는 세상에서 나는 언제까지 이 이상적 '나다움'을 유지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