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가 남긴 치유, 회복의 흔적

커뮤니티는 관계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심는 일이다

by 호밀밭
메인 이미지.jpg

사람들이 만든 자작곡엔 각자의 사연이 담겨있다. ‘오늘도 눕는다’, ‘앞서갔던 꿈’. 두 번의 워크숍 동안 내가 다듬었던 노래다. ‘오늘도 눕는다’는 잠이 들지 못하는 밤을 위로하며 만든 노래다. 당시 오래 교제했던 분과 이별하고 가장 괴롭던 고민은 매일 잠들지 못하고 뜬눈으로 지새우는 밤이었다.


아무리 아파도 / 아무리 슬퍼도
그냥 눕는 하루 / 그냥 닫는 하루


다시 보니 유치하기 짝이 없는 가사지만 원래 사랑과 이별이라는 게 이렇게 뒤에서 구차하게 우는 게 아니겠는가. 마음에서 꺼낸 문장과 내게 편한 음역대로 부르는 노래는 그때의 허전한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두 번째 워크숍에서 만든 자작곡 ‘앞서갔던 꿈’엔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 선배들에게 바치는 고마움이 담겨있다.


해낼 수 있어 걸은 길이 아니었단 걸 / 해야만 해 걸어냈던 길이었단 걸
앞서갔던 그대 젊음 / 내가 기억 할게요


늘 하고 싶던 이야기였지만 쑥스러워 꺼내지 못하던 말과 포장되지 않은 마음이 떨리는 목소리와 멜로디로 타인과 공유된다. 써보지 않던 서툰 방식의 글짓기는 매끈한 요령을 입지 못해 가장 날것의 마음을 꺼내놓는다. 나의 가장 깊은 마음이 경청 받는 경험은 새로운 기쁨이다. 그 진지한 기다림을 통해 우린 서로의 가장 내밀한 욕구와 아픔을 알 수 있었다.


*


나처럼 메마뮤 2기 동료들도 각자 7개의 노래를 만들었다. ‘세상 이용자’. ‘청소’. ‘그때의 우리처럼’, ‘KF99’, ‘하고 싶은 거 다 해’, ‘한량의 취미’. ‘별이 지지 않는 곳’. 그리고 멤버 한 사람씩 돌아가며 가사와 멜로디를 붙였던 합창곡 ‘겨울 그리고 봄’이 있다.


‘세상 이용자’는 본인이 심각한 길치라는 고백이다. 지도와 네이게이션을 보아도 목적지로 바로 향하지 못하는 자신을 미숙한 ‘세상 이용자’라 비유하지만, 어두운 밤거리를 돌아가더라도 그 정처 없이 헤맸던 길이 결국 나다움을 향해 가는 길이란 메시지가 담겨 있다. ‘청소’는 빈틈없이 가득 찬 방, 이젠 이 방에 무엇이 들었는지 나조차도 알지 못한다는 자조적인 웃음이 담겨있다. 항상 같은 물건이 늘어나고, 어느 것도 버리지 못하는 사이 내 두 팔이 자유롭게 춤출 수 있는 방이 사라졌다. 가사에 맞춰 쓱쓱싹싹 작은 율동과 멤버들의 코러스가 들어간 아주 귀여운 노래다.


‘그때의 우리처럼’. 그루브한 비트 위로 어우러진 랩과 멜로디. 사랑했던 사람과 점점 식어가는 마음을 담담한 문장으로 묘사했던 노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였는데 노래가 마무리되기 전 ‘연락할게 나중에 말고 지금 만나자’는 가사에 가장 크게 울렁이기도 했다. ‘kf99'은 미세먼지로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더 높은 수치의 마스크를 쓴다는 노래다. 주제는 미세먼지였지만 목소리와 코드 진행이 무척 청량했던 곡.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근무하셔서 아이들이 뛰어놀지 못하는 하늘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고 했다.


‘하고 싶은 거 다 해’를 만드신 분은 노마드 워커로 살아가며 다양한 직종, 다양한 경험을 기쁘게 영위하고 있었다. 주제에 맞게 글쓰기 모임, 영상 강의, 북 디자인 등 영역을 넘나들며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계시던 분의 노래라 다른 도전에 망설이던 멤버에게 도움과 새로운 자극이 되어준 노래다. ‘한량의 취미’는 여태껏 나 홀로 즐기던 취미를 이젠 내가 낳은 귀여운 아이, 내가 만든 가족과 함께 즐기겠다는 가사였다. 직접 쓰신 가사에 맞춰 기타 반주와 후렴은 남편 매튜가 관객의 호응은 두 아이가 해주었다. 서로 눈을 맞추며 부르는 가족의 자작곡은 많은 참가자의 부러움을 받을 정도로 달콤했다.


‘별이 지지 않는 곳’은 멀리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노래였다. 대강 짐작할 수밖에 없는 사연과 문장.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깊게 묻지 않았다. 우리가 기쁜 커뮤니티로 존재할 수 있던 건 꺼내진 말 보다 꺼내지지 않은 말을 훨씬 조심스럽게 또 아무도 애써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2기에 참가했던 나머지 두 분은 개인 업무로 자작곡을 완성하지 못했지만 메마뮤 2기 앵콜곡 ‘겨울 그리고 봄’을 함께 준비했다. ‘겨울 그리고 봄’은 제목부터 후렴까지 한 문장씩 마이크를 돌려가며 서로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엮어내 완성했다. 작사부터 작곡, 노래까지 하나의 커뮤니티로 만들어 낸 진정한 자작곡인 셈이다. 이렇게 어느 목요일 저녁에 만나 서로의 마음을 표현한 지난 8주가 과연 어떤 울림이 되었을까.


*


우리는 이미 다양한 커뮤니티에 속해있다. 직장부터 종교, 동네 친구들 혹은 취향. 각자의 방식으로 때론 느슨하게 혹은 쫀쫀하게 만나며 관계 내에서 회복하고 성장한다. 커뮤니티에 갖는 기대란 그런 것이다. 메마뮤는 커뮤니티가 존재할 다른 가능성을 열었다. 공동의 작업물을 만들어내는 제한된 기간의 커뮤니티이자, 서로를 많이 밝히지 않아도 음악으로 깊이 연결될 수 있던 커리큘럼이었다. 커뮤니티에 대한 색다른 경험이 지역의 또 다른 커뮤니티에 대한 기대와 초대를 만들리라. 관계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심는 일.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책임지는 우리가 가장 먼저 기대했던 지점이다.


커뮤니티의 주요한 대상은 언제나 둘이다. 일반 참석자만큼 중요한 파트너는 커뮤니티 운영자다. 하나의 커뮤니티가 생성되고 성장할 때 동시에 그 운영자가 얼마나 지역사회와 연결되는지도 중요하다. 이제 메마뮤는 자생하는 커뮤니티로 새롭게 시도한다. 지역 사회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커뮤니티를 시작하는 본격적인 생존의 도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시도가 어떤 결과로 맺어질지, 지역을 넘나들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도 있고 그저 짧은 시도로 그쳐 버릴 수도 있다. 어떤 결과가 기다릴지 모르기에 더 큰마음으로 메마뮤를 이어갈 눈썹과 바코를 응원한다. 자작곡 워크숍 Make.My.Music. 즐겁고 떨렸던 나의 30대의 가장 소중한 커뮤니티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커뮤니티엔 실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