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는 관계의 휴게소를 만드는 일이다

여기서 획득한 감정이 당신의 일상을 반전시킬 힘이 되길 바란다

by 호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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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에서 나누는 건 고작 몇 마디의 질문과 대화뿐이지만 여기엔 드러나지 않는 기대와 의외의 슬픔이 담긴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낯선 타인을 알아가는 것 같지만 대화보다 앞선 건 언제나 ‘질문’이다. 상대를 향한 질문엔 내게 필요한 정보와 불필요한 정보를 가를 수 있는 힘이 있다. 설정된 질문엔 나누고 싶은 주제 내에서 대화가 진행될 기준이 되는 것이다.


내게 가장 필요한 정보는 ‘오늘의 감정’이다. 오늘 어떤 감정이 지배적이었는지 묻는다. 커뮤니티가 진행되는 동안 나의 코드를 그의 감정선과 맞추기 위함이다. 지쳤다고 하면 조금 느린 템포로 질문을, 오늘 하루 즐거웠다 하면 웃음과 함께 커진 제스쳐와 높은 목소리로 대화를 건넨다. 감정은 증폭시킬 수 있고 또한 반전될 수 있다. 하나의 커뮤니티가 대화의 양과 질을 약속할 때 참여자는 사회 안에서 가장 자유로운 감정적 배출구를 얻는다.

‘감정’이란 코드에 집중하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지역과의 연결성에 집중하시는 분도 있고, 내용에 따라 성장이란 키워드에 집중하는 커뮤니티 매니저도 있다. 결국 커뮤니티가 무엇을 지향하는지에 따라 우선순위가 갈린 것인데 내가 지향하는 커뮤니티는 ‘세상과 분절되지 않으면서도 일상과는 독립된 인간관계’다. 즉 세상 속에서, 세상이 중요시하는 주제를 다루지만 그렇게 형성된 관계만큼은 일상과는 전혀 접점이 없는,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관계의 휴게소를 만드는 것이다.


나는 커뮤니티가 갖춰야 할 중요한 감각은 ‘선을 넘지 않는 것’이고 구체적으로는 개인의 ‘일상’을 흔들지 않는 것에 있다고 여긴다. 그렇게 오늘 당신이 누구에게서 무슨 일을 겪어 왔는지 묻지 않았다. 해결할 수 없는 일 혹은 해가 진 지금 다시 당신의 일상과 연동될 질문은 꺼내지 않는다. 누군가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과한 방어기제라 말했지만 내가 고려했던 건 고작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이 끝나고 다시 일상에 연결되어야 할 분들이었다.


지난 커뮤니티에서 누군가 직장 생활에 대한 고민을 꺼내놓았다. 내내 얼굴에 스치던 슬픔의 원인이 구체적인 삶의 문제라는 걸 깨달았지만 내가 건넬 수밖에 없던 것은 어설픈 위로와 그저 괜찮아질 것이라는 타인의 삶을 관망하는 약한 희망이었다. 게워낸 감정은 공허하고 마음은 텅 빈 곳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이해와 관심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관계가 다시 무언가를 주고받기 위한 거래로, 타인이 나의 회복을 위한 도구로 전환되는 것이다.


나는 커뮤니티가 일상에서 느끼지 못한 자유롭고 긍정적인 감정을 초대하는 창구가 되길 바란다. 여기서 획득한 감정이 당신의 일상을 반전시킬 힘이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개인의 일상과 커뮤니티 간의 거리가, 서로의 삶이 중첩되지 않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나는 앞으로도 꺼내질 말들을 고려하고 마주 앉은 당신의 눈빛에 불현듯 스치는 슬픔을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꺼내지지 않은 말들의 중요함을 잊은 것은 아니다. 말의 간극을 줄이고, 일상과 커뮤니티의 간극을 줄이는 것. 내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고, 커뮤니티 매니저로서 내가 도달해야 할 다음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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