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밀밭 May 28. 2021

응원이 필요한 시간 9 to 12

그녀의 9시에서 12시는 오늘도 답답함으로 얼룩졌다

 

  B 씨는 초등학교에서 계약직 영양교사로 근무 중이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나면 2학년, 1학년 연년생 아이들의 등교 준비를 도와줄 돌봄 선생님이 6시 40분에 오신다. 나란히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가만히 쓰다듬은 후 출근길에 나선다. 학교에 도착하면 가운을 갈아입고 조리종사원의 위생을 관리하고 조리세부사항을 감독하며 위생안전교육을 진행한다. 점심시간이면 급식은 잘 되고 있는지 아이들이 골고루 잘 먹는지 살핀다. 식단을 짜고 학생들에게 영양교육을 실시한다. 퇴근해서 4시 반쯤 학교 돌봄 교실에서 아이들을 찾아 집으로 돌아온다. 근처에서 간단히 식료품을 사고 저녁을 지어 아이들의 식사를 챙긴다. 씻기고 숙제를 봐주고 한숨 돌리고 나면 그녀의 두 번째 하루가 시작된다. 


저녁 9시. B 씨에게 가장 응원이 필요한 시간이다. 식탁 위에 생활의 흔적들을 닦아내고 두꺼운 교재를 펼친다. 각자 할 일을 하고 있던 아이들이 엄마 곁에 모여들어 이것저것 간섭을 시작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책과 필기구를 뒤적이고 낙서를 한다. 간식을 요청하기도 하고 오늘 일과에 관해 이야기하길 원한다. 눈은 책에 가 있고 귀는 아이의 말을 향한다.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이 허둥대는 동안 시계는 무심히 10시를 가리킨다. 잠자리를 두고 작은 설전이 벌어진다.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라는 엄마의 잔소리. 엄마와 함께 잠들고 싶다고 투정하는 아이. 엄마와 함께 깨어있고 싶다고 버티는 아이. 같이 누우면 엄마가 잠들어 버려서 공부 시간을 잃어버린다고 설명하는 엄마. 지금 잠자리에 들지 않으면 내일 학교에 지각을 하고 피곤할 거라고 반복되는 설명. 매일 거듭되는 실랑이가 끝이 보이기 시작하면 어느새 11시. 아이들의 이부자리를 고쳐주고 다시 식탁에 앉는다. 온 집안의 고요는 소름 끼치도록 생소하고 짜릿하다. 이내 그것은 묵직하게 그녀를 짓누른다. 어디까지 했더라. 함부로 헝클어진 책장을 뒤적여 시작했던 페이지를 간신히 찾아낸다.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어요. 영양과 전공 8과목에 교육학 8과목입니다. 올해 영양교사 티오가 8명 났더라고요. 나쁘지 않죠. 그러나 주말부부로 지내면서 남편의 도움 없이 일과 육아와 공부를 병행하는 제게도 나쁘지 않다고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전념하지도 깨끗하게 포기하지 못하는 공부를 지속해야 할까요.”     


 B 씨는 2003년에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을 했다. 모 초등학교의 영양사공무원이 출산휴가를 떠난 자리에 배정된 6개월짜리 일자리였다. 그녀가 첫 직장에 근무하기 10년 전 1993년에 영양사라 불리는 식품위생직 9급 공무원을 전국적으로 대거 뽑았다. 그 인원들이 각 학교에 1명씩 배치된 후 정규직 자리가 좀처럼 나지 않았다. 당연한 수순으로 시험 역시 시행되지 않았다. 그녀가 졸업한 2003년 전후의 졸업자들이 대부분 그런 이유로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비정규직 처지에 있었다. 2007년 전국의 고등학교가 위탁급식에서 직영급식으로 바뀌면서 영양사 공무원에서 영양 교사직으로 전환되었다. 기존의 영양사공무원들은 나라에서 지정한 추가시험을 치른 후 영양교사 자격을 취득했다. B 씨는 그즈음 발맞추어 영양교육대학원에 들어가 교원자격증을 땄다. 현재는 학부에서 교직 이수가 가능하고 교원자격증까지 취득할 수 있지만 B 씨가 대학을 다닐 때는 그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돈과 시간을 추가로 들여야만 했다. 석사졸업을 하고 정식 영양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고시를 준비해야 했지만 결혼과 출산 육아를 겪었다. 아이 둘을 키우며 5년간 육아에만 전념했다. 둘째 아이가 3살이 되던 해 한 초등학교에 병가휴직을 낸 자리에 계약직 영양교사로 복귀하게 되었다. 1년짜리 자리였다.       


“함께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능력 있다’, ‘일복이 많다’, ‘전문직 여성이다’라며 부러워해요. 육아로 몇 년간 경력이 단절되어도 보란 듯이 일자리를 얻었고 방학은 아이들과 함께 보낼 수 있으면서 월급도 나오니까. 일반 회사보다 퇴근이 빨라 아이들 돌보기도 좋다고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제 마음은 또 그렇지 않아요. 계약이 종료된 후에 거처에 대해 걱정합니다. 늘 불안하죠. 또 임용시험에 집중할 수도 없고 아예 단념할 수 없어요. 시간적으로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낍니다. 늘 무언가 자책이 따릅니다.”      


 밤 11시. 시작한 페이지에서 진도는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 시계는 무심히 흘러 12시. 피로가 밀려오고 눈이 감긴다. 12시를 조금 더 넘기려고 버티다가 쓰린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내일의 컨디션을 고려하지 않으면 더 큰 후회가 찾아올 것을 알기에. 계획과 진도 사이의 격차를 확인하고 한숨을 내 쉰다. 그녀의 9시에서 12시는 오늘도 답답함으로 얼룩졌다.     


“10년 먼저 태어났다면, 10년을 뒤에 태어났다면. 이런 상상해 보신 적 있으세요? 저는 하루를 마감할 때 자주 합니다. 10년만 일찍 태어났다면 9급 공무원이 되어 안정적으로 일하고 있었을까? 10년만 늦게 태어났다면 따로 대학원에 투자할 필요 없이 대학교에서 교원자격증을 따고, 티오가 몇 명이 되었든 온몸을 다해 임용하나만 바라보고 공부 할 수 있었을까 하고요. 물론 전제는 대학을 갓 졸업한 미혼의 나로 둡니다. 육아, 집안일, 생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시험 하나에만 매달리는 나요.”     


 B 씨는 돌봄의 의무를 지닌 보호자이고, 조직을 구성하는 직장인이며, 발전을 위해 목표를 잃지 않는 한 개인이다. 중첩된 역할들에 충실하면서도 자신의 것을 놓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하는 B 씨에게 응원이 필요하다. 그녀의 각기 다른 역할마다 각각의 응원을 보내고 싶다. 그중에 특별히 응원이 필요한 시간 9 to 12에 대해 오래오래 생각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