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소외 받지 않는 세상은 없는 건지

어쩌면 그 거리의 누구도 우리를 축하해주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by 호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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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도시는 축제의 느낌이 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거리 곳곳이 밝은 조명과 장식으로 꾸며지고, 사람들의 표정도 평소보다 한껏 편안해 보인다. 아마도 준비하던 일들의 결과가 대부분 연말을 맞은 이 시기에 드러나기 때문일지 모른다. 모두가 어느 정도 후련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A도 자신이 준비하던 일을 끝까지 해냈다. 수능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던 그는 재수를 선택했고, 1년 동안 기숙학원에서 지내며 올해 입시를 준비했다. 나는 수능 다음 날 A에게 수고했다는 문자를 보냈다. 금방 전화가 왔고, 우리는 간단한 근황을 나눈 뒤 약속을 잡았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다는 사실에 기대가 되면서도, 결과에 대해 묻지 않았기에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내 서점 앞에서 만난 A의 표정은 밝아보였다. 살이 조금 찌고, 지친 기색이 남아있었지만,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으로 농담을 건넸다. 1년 갇혀 있었더니 완전 다른 세상 됐네. 그래도 수험생 할인 두 번 받을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니냐? 이거 수능 안 쳐본 거 티내네. 왜? 나이 제한 있어서 재수생은 안 해줘. 그러면 열아홉 살 할인을 하지 뭐 하러 수험생 할인을 한데?


나는 괜히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시내를 걷다보면 수험생들을 위한 할인이나 혜택을 제공한다는 광고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재수를 한 A도, 수능을 치루지 않고 곧바로 취업을 선택한 나도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수험생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광고 문구는 거리 가득한 축제 분위기에서 자꾸만 우리를 소외시키는 것 같았다.


*


입시를 준비하지 않았던 열아홉의 나는 수고하지 않았던 걸까. 선배들이 졸업하고,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 들어섰을 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아이들이 느꼈던 감정은 조바심이었다. 전국적으로 고졸 취업을 밀어주던 시기여서 정말 온갖 기업에서 채용 공고가 올라왔다. 학교마다 성적순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특별채용 덕분에 빠르면 1학년 겨울방학에 누구라도 알 법한 대기업에 취업이 확정된 친구들도 있었다.


모두가 한 번의 기회라도 잡아보려 악착같이 공부했다. 학교 성적 관리는 당연한 일이었고 전공 자격증, 한국사, 토익까지 준비했다. 새벽에 기숙사 독서실에 가면 시험기간이 아닌데도 졸린 눈을 비비며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기업. 높은 연봉을 주고 정년이 보장되는, 규모도 크고 경쟁력도 있어서 흔들리거나 무너질 걱정이 없는, 어른들이 칭찬하고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이 우리의 목표였다.


한정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노력은 치열했고, 담보할 수 없는 결과 때문에 계속해서 불안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열아홉을 조금 더 누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중소기업에 취업하면 9월에 현장실습생으로 학교를 떠나야 하니까. 그러면 더 이상 열아홉으로 남아있을 수 없었으니까. ‘어른’, ‘신입사원’, ‘현장실습생’ 등의 단어가 그 자리를 대신할 테니까. 나는 그렇게 대체되어 버릴 반년간의 시간이 무서웠다. 모든 게 너무 빠른 호흡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3학년 교실에는 조기취업자를 제외하고, 일찍이 중소기업 취업으로 방향을 선회한 친구들과 간절한 마음을 놓지 못해 공부를 계속하는 친구들로 부류가 나누어졌다. 둘 사이의 경계는 처음에는 비슷해보였지만, 파도에 쓸려가는 모래처럼 착실하게 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중상위권의 성적과 5개의 기능사 자격증, 다수의 입상 경력과 형편없는 토익점수를 손에 쥐고 버티던 나도 6월 초 중소기업 취업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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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고, 방학 동안 나는 한시도 집에 붙어있지 않았다. 가만히 있는 건 잘못된 것 같았다. 열아홉에 해야만 하는 일이, 놓쳐버리면 안 되는 순간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매일같이 산이며 바다며 워터파크로 떠났다. 하지만 내가 얻은 건 여름감기와 허탈한 기분뿐이었다. 조급한 마음으로 시작한 일은 무엇 하나 즐겁지 않았다.


처음 스무 살이 되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자정이 지나 술집에서 모인 학교 친구들은 과하다 싶을 만큼 술을 마셔댔다. 학교에 남아있어도, 일을 하고 있어도, 발령을 기다리고 있어도, 각자의 상황과 관계없이 모두가 수고했다며 잔을 부딪쳤다. 첫차를 타고 돌아가던 나는 결국 지하철 화장실에서 토를 했다. 머리가 아프고 기분도 최악이었다.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던 걸까. 어쩌면 그 거리의 누구도 우리를 축하해주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수험생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이 우리를 소외시켰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더 많이 수고했다고, 고생했다고, 너의 스물을 축하한다고 잔을 채운 건 아닐까. 내가 어른이 되기 위해 견뎠던 시간을, 불안했던 마음과 흘려보낸 새벽을, 너희는 가슴 아플 정도로 잘 알고 있었으니까.


*


A와 헤어지고 돌아가는 길에도 나는 제법 취해있었다. 오랜 시간을 어떻게 참았는지 모를 정도로 긴 이야기가 오갔고, 지난 추억과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함께 나누었다. A는 원하던 대학교에 합격해서 서울로 간다고 했다. 나는 동기들보다 일찍 산업기능요원에 편입할 수 있었기에 내년에는 방송대학교를 갈 예정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내가 너보다 늦네! 아니지, 군대 포함하면 결국 내가 늦지! 우리도 또 한참을 웃었다.


겨울의 공기가 뺨으로 바짝 다가와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야기의 여운이 남아서일까, 차가운 바람에도 몸이 떨리지 않았다. 축제의 분위기. 추억. 앞으로의 나날. 그런 것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불안해하다보니 열아홉이 지나고 정신차려보니 스물도 막바지에 닿았다. 해야만 하는 일이, 놓쳐선 안 될 순간이, 이 시간 사이에도 있었을까.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열아홉 할인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공장에서 일하던 나에게. 수능을 망치고 괴로워하던 A에게. 주량을 한참 넘어 술을 마시던 친구들에게. 어쩌면 학교를 다니지 않고 어른이 되어야 했던 누군가에게도 이 거리가 조금은 더 따뜻하고 위로가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무도 소외 받지 않는 세상은 없는 건지, 그게 그렇게 어려운건지 혼자 생각하며, 나는 불빛이 잦아드는 방향으로 한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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