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꼭 하늘이 맑았으면 좋겠다

그것만으로 다시 낯선 땅에서 살아갈 힘을 얻을 테니까

by 호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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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이네. K가 베트남에서 사 왔다는 그림을 바라보며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두 팔을 뻗으면 간신히 양 끝을 잡을 수 있을 정도의 캔버스 속에 노랑, 빨강, 주황 등의 색채가 화려하게 물들어 있었다. 멋지지 않아? K는 하노이 길거리에서 그림을 샀다고 했다. 사진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머물렀던 도시가 주는 ‘느낌’이 그림에는 담겨있다고 했다.


느낌이라. 듣고 보니 확실히 활기가 넘치는 그림이었다. 거칠게 뿌려진 물감은 조밀하게 사물을 묘사하기보다는, 하나의 형상으로 전체를 표현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물건을 파는 상인도, 커다란 양동이를 지고 걸어가는 일꾼도, 한여름의 아지랑이처럼 표정이나 윤곽이 뚜렷하지 않았다. 그림 속 인물 모두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도시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K는 베트남 여행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려주었다. 나는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지도상 어디쯤 있다는 사실만 어렴풋이 기억날 뿐, 그들의 삶에 대해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다만 뚜렷한 윤곽을 가진 얼굴이 떠오를 뿐이었다. 부넉 펑.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베트남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의 이름이었다.


*


펑이 들어오기 전에도 다양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회사에 다녔다. 대부분 동남아 국가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그들과 회사 기숙사 건물에서 함께 생활했기 때문에 다른 직원들보다 교류가 많았다. 처음엔 짙은 갈색 피부의 외국인들이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자주 얼굴을 마주하니 금세 친근해졌다. 어눌한 한국어로 유쾌하게 인사를 건네는 그들이 싫지 않았다.


동기들이 통근버스를 타기 위해 정신없이 짐을 싸던 금요일에도 나는 기숙사에 남아있는 날이 많았는데, 그럴 때면 공장에서는 알지 못했던 외국인 노동자들의 일상을 발견하기도 했다. 청소를 하고, 이불을 널고, 장을 보고, 조리실에서 직접 음식을 해 먹고, 때로는 술도 마시는 평범한 주말. 눈에 띄지 않았을 뿐 그곳에는 분명 그들의 삶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 길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없었다. 관심이 없었다기보다는 언어의 벽이 높았던 탓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잘 지냈다. 무언가 고장 났다던가, 필요하다던가, 고생했다던가 하는 간단한 표현들로도 대략적인 느낌을 공유할 수 있었다. 함께 일하는 모두가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부넉 펑은 확실히 지금까지 만났던 외국인 노동자들과는 달랐다.


*


펑은 우선 체격이 좋았다.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어깨가 넓게 벌어져 있어 건장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다른 외국인들이 겉모습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에 비해 펑은 이목구비를 항상 단정하게 유지했다. ‘외국인 같지 않다’가 아니라 ‘잘생긴 외국인’이라는 생각이 드는 외모였다.


무엇보다 펑은 한국어에 능숙했다. 긴 문장으로 대화할 때도 어려움이 없었고, 복잡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었다. 덕분에 펑과는 사적인 대화도 많이 나눴다. 그가 스물여덟 살이라는 것도, 사진 찍는 게 취미라는 것도, 베트남에 약혼자가 있다는 것도 모두 펑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의 한국어 실력이 함께 일하는 친구들에게 마냥 좋은 일은 아니었다. 일을 시작하고 끝마치며 기본적으로 챙겨야 할 부분들을 가르쳐줄 때도 펑은 그 일이 자신이 해야 하는 게 맞는지, 왜 해야 하는지 납득하길 원했다. 아무리 한국어에 익숙하다고 해도 세세한 설명을 이해하는 건 어려웠기 때문에, 펑을 설득하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직접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펑은 좀 싸가지가 없는 것 같아요. 한 번은 후배 한 명이 그렇게 성토했다. 그 정도야?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펑과는 다른 부서에 있었기 때문에 회사에서 만나는 일이 드물었다. 뒷정리도 안 하겠다면 어쩌자는 건지, 결국엔 다른 사람이 다 해야 되는 일인데. 후배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뭐 나쁜 일 시키는 것도 아닌데 괜히 피해의식 느낀다니까요.


으음. 나는 선뜻 대답하지 않은 채 잠시 고민했다. 후배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피해의식’이란 단어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커다란 그림에 잘못 덧칠된 물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당연한 게 아닐까? 네? 외국인 노동자들은 나쁜 조건에 일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자연스레 의심하고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되는 거 아닐까 싶어서. 그건…… 으음.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후배는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곳에서 홀로 살아가는 건 어떤 기분일까. 옆에 있는 누군가가, 하고 있는 일이, 혹시라도 자신에게 해가 될까 봐 항상 경계해야 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언젠가 펑이 나에게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기계 소리가 들리지 않는 조용한 주말 저녁이었다.


기숙사 복도에서 마주친 펑의 오른손에 커다란 카메라가 들려있었다. 외형이 세련되지 않은 구형 DSLR. 사진을 찍고 왔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카메라에 담아둔 앨범을 보여주었다. 광안리 바닷가. 진해 벚꽃길. 남포동과 서면의 거리. 한 장 한 장 정성 들여 찍었을 것이 분명한 사진들이었다.


자주 지나다니는 장소들이었는데 사각형 프레임 안 풍경은 무척이나 색다르게 다가왔다. 특히나 사람들의 얼굴이 그랬다. 마치 풍경의 일부가 되어 각자의 개성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펑은 이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그에게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비췄을까. 나는 자신의 표정과 형태가 흐물거리며 무너지는 모습을 상상하다, 흠칫 놀라고 말았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고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했지만, 펑에게 우리는 친구가 아니었을 것이다. 머나먼 타국에서 홀로 살아가야 하는 그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곁을 긴 시간 떠나야만 했던 그에게, 우리는 그저 풍경이었다. 거친 물감으로 그려진 그림처럼 뚜렷한 윤곽이나 표정이 없는 이국적인 ‘느낌’일 뿐이었다.


*


나는 K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곳에 펑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고향의 소식을 듣는다면 무척이나 반가워할 것 같았다. 베트남 거리도, 사람들의 모습도, 그에게는 결코 흐릿하지 않을 테니까. 사각형 프레임도, 커다란 캔버스도 필요 없이 사랑하는 사람의 웃음을 떠올 수 있을 테니까. 그것만으로 다시 낯선 땅에서 살아갈 힘을 얻을 테니까.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날은 꼭 하늘이 맑았으면 좋겠다. 혼잡한 공항을 바쁜 걸음으로 나오면, 그리웠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과 끌어안고 함께 웃으며 깊어가는 밤을 이야기로 가득 채울 것이다. 그 이야기 속에 우리가 흐릿하더라도, 부디 나쁜 느낌으로 기억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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