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은 눈을 꼭 감은 채로, 당신이 긴 새벽을 견딜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열여덟 살 겨울이었나, 몹시 추운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밤하늘에 하나둘 떠 있던 별빛과 눈이 부어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의심 없이 소주를 계산해주었던 편의점 직원의 얼굴이 기억에 남는다. 그 뒤로는 조금 흐릿하다. 그냥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사람이 참 무섭고, 그 무서움만큼이나 스스로가 싫어지던 밤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싶어서 조금 걷다 집으로 돌아오니 벌써 자정이 넘어 있었다. 술 마셨나? 아직 깨어있던 어머니가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네 아빠 마시는 거 한두 번 봤나. 어머니는 무던한 말투로 대답하고는 길게 하품을 하셨다. 안방 불은 꺼져있었다. 언젠가 아버지도 나처럼 술 냄새를 없애려 일없이 길을 걷다 들어온 날이 있었을까. 그때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기분 나쁠 때 술 먹는 거 아니다. 어머니는 그 말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돌아오지 않는 아들 걱정에 깨어계셨을 텐데,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는 어머니가 고마웠다. 혼자 남겨진 긴 새벽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소주의 취기보다는 그런 작은 배려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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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는 힘든 일이 있을 때 술이나 담배를 먼저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계속해서 무언가를 썼다. 학교 기숙사에서 쓰던 일기. 회사에 입사하고 만든 업무일지. 스무 살에 처음으로 노트북을 사고 쓰기 시작한 조각 글과 감상. 바탕 화면 한쪽 파일에 차곡차곡 쌓이던 소설과 수필.
글을 쓰다 보면 확신이 생겼다. 뭔가, 흩어져있던 감정이 조금은 올곧아지고, 내게 주어진 시간을 제대로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한 후에는 스스로가 전보다 더 견고하고 강해진 것 같았다.
그래도 울적한 기분이 계속되는 날에는 해야 할 일을 팽개쳐놓고 책을 읽었다.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돌려보기도 했다. 산책을 나와서 무작정 뛰거나, 음악을 틀어놓고 가만히 누워있기도 했다. 그러면 끈질기게 나를 붙잡고 있던 우울함도 반드시 지나갔다. 계절이 바뀌듯 감정의 기복은 사라지고,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날들로 돌아왔다.
나에게는 여행도 일탈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견고하고 일상적인 하루, 그것만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주말이면 도시의 거리를 헤매는 저 수많은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잠깐의 유흥과 즐거움은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좀 더 생산적인 일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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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가서도 나는 언제나 충고를 하는 입장이었다. 특히나 대학을 다니는 아이들에게는 더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고민, 이를테면 과제나 성적, 동아리나 학생회,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인간군상과 크고 작은 사건들이 나에게는 그저 과분한 이야기로 들릴 뿐이었다.
시간이 없다는 건 변명이라고 생각해. 나는 하루에 10시간 일해.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 공장에서 기계 돌리고 철 깎는다고. 그리고 퇴근하고 글 쓰는 거야. 돈? 벌지. 근데 내가 집에 보낸 돈이 얼만 줄은 알아? 삼천이야. 삼천만 원이라고. 네가 장학금 받았다고 열심히 산다고 생각할 때 나는 ATM 앞에서 그 돈을 보내고 있었어. 한 번에 육백까지밖에 안 보내지는데, 그렇게 몇 번씩 돈을 보내며 서 있으면 기분 진짜 별로야. 그래도 안 억울해. 어쩌겠어. 덕분에 더 당당하게 하고 싶은 거 해.
처음에는 친구들의 이야기로 시작한 대화가, 몇 잔 술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점점 나의 목소리로 채워져 갔다. 술이 더 들어가면 그건 더 이상 대화라고 부를 수 없었다. 공감이 없었고, 이해가 없었다. 주고받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상대방에게 의견을 떠넘기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왜 그리도 가혹했던 걸까. 씁쓸한 표정으로 점점 말을 잃어버리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스스로의 삶을 증명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삶이란 본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살아가야 한다고. 고독한 수행자가 되어 묵묵히 시간을 견뎌내야만 한다고. 나의 목소리는 하나의 믿음이자 전도였고, 동시에 우스울 정도로 허황된 우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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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자존감은 알아서 지키라니, 그런 건 잔인한 말이었는데. 세상은 아주 작은 흠집만 보여도 그곳으로 감정을 몰고 가서는 마음을 깨트리고 힘겹게 지켜오던 것들을 남김없이 빼앗아갔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아니, 그저 열심히 살아야 하는 상황에 던져진 것뿐이었다. 간신히 어려움을 이겨낼 만한 환경이 마련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곳에서 벗어나자 견고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믿음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지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불안한 미래를 마주해야만 했다. 돈이 없어 서울에 있는 여자친구 보러 가는 걸 망설였을 때는 자괴감까지 들었다. 수많은 기회가 찾아왔지만 머리를 짓누르는 부담감에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낼 수 없었다. 관심을 가져준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지 못하고 지나간 밤엔 책상 엎드려 한참을 소리 없이 울었다.
나는 매일 같이 무너졌다. 부서지고 깨지고 흩어졌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날카롭고 위험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건, 내가 최선을 다해서 살아낸 순간들이 결국엔 누군가를 아프게 했다는 사실이었다. 삶의 퇴적물 같은 것들이, 나도 모르는 새에 쌓여서, 내가 원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을 만들어 간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글을 쓰는 거였는데, 이제 그마저 제대로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확신을 잃어버린 글은 원망과 투정으로 가득했다. 문장 하나하나에 날이 서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헤치기 위해 준비된 물건처럼. 나는 그 모습을 차마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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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수록 약해진다. 점점 작아진다. 자신에 대한 믿음 따위는 어디에도 없고, 누군가 내게 남기고 간 상처만을 계속해서 되새기게 될 뿐이다. 그러다 자신이 타인에게 준 상처를 발견하게 될 뿐이다. 쓰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칠 수 있었을까. 그건 좋은 일일까. 적어도 15시간 동안 일을 하고 책상에서 잠이 드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동안 피곤한 표정을 짓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내가 쓰는 이유는, 어쩌면 글쓰기가 그들을 지켜줄지도 모른다고, 홀로 상처받는 이들에게 한 줌의 다정함을 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마저 착각일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결국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아픔만은 진실일 것이다. 나만큼이나 당신이 아프다는 것도 진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당신에게 상냥하고 싶다. 조금 더 친절하고 싶다. 나는 당신이 상처받지 않도록 글을 쓸 것이다. 글은 내가 당신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오해가 오해를 만들더라도, 그 속에서 영원히 아파한다고 해도, 우리가 마주 잡은 손은 따뜻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강해질 필요는 없다. 더 약해져도 괜찮다. 그저 부은 눈을 꼭 감은 채로, 당신이 긴 새벽을 견딜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