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산에도 꽃은 핀다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린다고 해도, 반드시 피어날 것이다

by 호밀밭
메인 이미지.jpg

악산이라고 했다. 전문 산악인들도 힘들어하는 길이니 조심하라고 했다. 우리가 올라갈 지리산에 대한 교관의 설명 중 하나였다. 단상 위에서 힘주어 말하는 그의 목소리를 나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다른 이야기도 많았던 것 같은데, 유독 저 ‘악산’이라는 단어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아마도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체육복 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경사진 바위산을 오를 것이고, 그 모습이 앳된 얼굴로 어색한 출근을 해야 할 각자의 앞날과 조금은 닮아서였는지도 모른다.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의 학사 일정에는 매년 등산이 포함되어 있었다. 1학년 가을소풍은 장산, 2학년 수학여행은 한라산, 그리고 3학년 수련회에는 기어이 지리산으로 떠났다. 언젠가 동문 출신의 나이 지긋한 선생님께 여쭈어보니 예전부터 그랬다고 했다. 전통 같은 거였다. 선배들의 대부분도 체육복 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저 산을 올랐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이 모든 게 강요된 시련처럼 느껴졌다. 자, 이제 어른이 되어야지. 투정 부려도 소용없어.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잖아. 산을 오르는 내내 누군가 그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


2015년의 봄은 유독 추위가 길었고, 열아홉 살이 된 친구들은 설렘보다는 걱정이 더 많았다. 일찌감치 대기업 입사에 성공한 친구들은 온전히 학교생활을 누릴 수 있었지만, 중소기업에 취업한 학생들은 9월이면 현장실습을 나가야 했다. P와 나도 그중 하나였다. 학교를 떠난다는 건 우리에게 해방이 아니라 한 시절에 대한 영원한 작별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인사는 누구에게 해야 하는 걸까. 모두가 붕 떠 있는 마음으로 각자의 미래를 더듬어보는 계절이었다.


그래서 4월의 끝자락에 떠났던 수련회는 우리에게 분명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여름방학이 지나면 사실상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야 했고, 그들은 졸업식까지 학교에 올 일이 없었다. 이번 수련회가 3학년에게는 마지막 여행이네. 관광버스에 오르며 P가 중얼거렸다. 낡은 수련원 건물과 큰소리치는 교관, 어디서 본 듯한 뻔한 프로그램이었지만 크게 불만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쩌면 그건 적당한 만족이나 타협이 아니라, 모두의 마음속에 P의 중얼거림과 같은 생각이 자리 잡고 있어서였는지도 몰랐다.


밴드부 보컬이었던 P는 그날 장기자랑에서 자신이 부를 수 있는 최고의 노래를 선물해주었다. 박효신의 ‘야생화’였다. 음정이 올라갈 때마다 우리는 박수와 환호로 보답했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왠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어쩌면 우리의 마음속엔 제때 싹을 피우지 못한 씨앗들이 비쩍 마른 화석처럼 몸을 움츠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아주 가끔 물기를 머금으면 어딘가의 들판에서 꽃을 피운다. 혹시나 험한 산중에 피어나면 그 꽃은 어떻게 되는 걸까. 세상의 풍파에 금방 시들어버리는 걸까. ‘야생화’의 후렴이 끝날 때까지, 나는 척박한 땅에 피어난 작은 꽃에 대해 생각했다.


*


다음날은 지리산에 올라갈 준비를 했다. 날씨는 화창했지만 아침 공기 속에서 희미하게 겨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심호흡을 할 때마다 얼음물을 마시는 것처럼 찬 공기가 폐를 찔렀다. 하지만 불쾌한 기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는 상쾌한 차가움이었다.


너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뒤따라오던 P에게 물었다. 190cm는 족히 되는 그의 큰 키 덕분에 오르막길을 걸으면서도 우리는 시선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글쎄, 직장에 다니면서 공연이나 계속할까. 대학 갈 생각은 없고? 글쎄. 대답이 왜 그렇게 시원치 않냐? 하지만 상상이 잘 안 되는걸.


확신 없는 문답을 반복하며 우리는 중산리 주차장에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걸었다. 말과 말 사이에 빈 공간이 생길 때마다 나는 조금 먼 미래를 그려보았다. 출근한다. 일을 한다. 돈을 번다. 단순한 문장이었지만 P의 말처럼 그것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는 건 쉽지 않았다. 나에게도 직장을 다니며 해야 할 다른 ‘무언가’가 있을까. 고민해보아도 대답은 글쎄. 미래는 여전히 윤곽을 가지지 못한 희미한 형상으로 그곳에 남아있었다.


신발에 흙이 밟히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산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무성한 초록 잎들 사이로 잔잔한 냇물 소리가 들렸다. 남아있던 겨울의 흔적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햇볕에 달궈진 바람막이 안쪽부터 이마 위로 땀방울이 맺혔다. 복잡하게 이어지던 생각들도 금세 단조로워졌다. 한발 걷고, 숨을 쉬고, 땀을 닦는다. 조금씩 몸이 산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정상에 다가갈수록 산은 아래쪽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으로 변해갔다. 상냥하게 햇빛을 막아주던 녹음이 사라지고 황량한 바위만이 올라가야 할 자리에 덩그러니 남았다. 경사가 가팔라질수록 우리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중간중간 이어진 밧줄을 붙잡지 않으면 몸을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이곳을 ‘악산’이라 부르던 교관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 진짜 이건 좀 아니지 않냐? 말없이 한참을 걷던 우리는 결국 평탄한 바위에 앉아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올라갈수록 안개가 짙어져 정상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갑작스러운 날씨의 변화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어디까지 올라가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막막함이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뭐 하러 이런 데 까지 와서 사서 고생하는지 모르겠네. 통증이 느껴지는 부분을 중심으로 허벅지를 두드렸다. 혼자서는 절대 안 올 곳이지. 말이라고 하냐? P가 웃었다. 그러면 더 열심히 가야지. 뭔 소리야? 혼자서 안 올 곳이라면, 다른 사람과 같이 있을 때만 정상을 볼 수 있는 거잖아. 말은 좋네. 나도 웃었다.


*


우리는 다시 산을 올랐다. 길은 여전히 험하고, 안개도 옅어질 기미가 없었지만, P의 말을 생각하며 팔과 다리에 힘을 줬다. 혼자 오지 않을 곳이라면 오늘이 정상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한 번쯤은 괜찮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는 한걸음 한걸음에 집중했다. 하나, 둘, 셋. 몇 번을 마음속으로 세어보며 걸어가자 이내 밧줄의 끝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바위산 사이로 계단이 보였다. 밧줄을 잡고 올라올 때보다는 나았지만, 힘을 너무 많이 써버렸기 때문에 난간에 기대어 쉬다 다시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걷다 보니, 하늘이 열렸다. 정말로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느새 우리는 안개의 위쪽, 구름의 위쪽으로 올라와 있던 것이다. 천왕봉이었다.


정상에 대한 환희보다는 더 올라갈 곳이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햇살이 바위에 부딪히며 사방으로 흩어졌고, 구름은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중심으로 고요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절경이었다. 봉우리 끝자락에 앉아 한참을 그 모습을 바라봤다. 우리가 올라온 길로는 하나둘 다른 친구들이 정상의 기쁨을 맞이하며 걸어오고 있었다. 다들 열심히도 올라왔다. 체육복 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경사진 바위산을 더 오를 곳 없을 만큼 올라온 것이다.


고생했어. P와 남은 물을 나누어 마시며 숨을 돌리자 겨우 주변을 둘러볼 여력이 생겼다. 자세히 보니 바위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돌산 사이에 야생화 무리가 자라고 있었다. 갈라진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연분홍빛 진달래가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악산에도 꽃이 핀다. 그 사실을 왠지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


그해 9월, 우리는 현장실습을 나가면서 학교를 떠나왔다. 나는 직장을 계속 다녔지만, P는 이내 다니던 곳을 그만두고 수련회에서 모두에게 불러주었던 ‘야생화’를 거리에서 부르다 군대에 갔다. 그리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회사를 마치고 혼자 기숙사 방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서로가 생각하던 것과는 조금 다른 미래에 도착해있었다.


얼마 전 오랜만에 P와 단둘이 만난 적이 있다. 고등학교 선후배 모임이 끝나고 새벽 2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다. 피곤하긴 했지만 둘 다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근처 맥주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학에 가기로 했어. P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학교에서보다 군대에서 더 열심히 공부한 것 같아. 신기하네.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 우리는 같이 웃었다. 이제 공연은 하지 않는 거야? 응, 열정이 없어. 다른 이유는 없는 거야? 그는 잠시 고민했다. 용기가 없어.


그렇구나. 너는 무대 위에서 내려왔구나. 그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 나는 지리산 정상에서 보았던 진달래꽃을 떠올리고 있었다. 각자의 미래를 더듬어보던 계절, 함께였기에 올라설 수 있었던 천왕봉의 풍경을 되돌려보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뿌리에 의지한 채 하나의 시절을 버텨왔다. 방황도, 고민도, 걱정도, 불안도, 모두 마음 깊숙이 숨겨둔 씨앗을 지키기 위한 꽃잎이었다.


더 이상 네가 노래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도 너는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그 시절 P가 피워냈던 꽃은 어디선가 또 다른 씨앗이 되어 자랄 것이다.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린다고 해도, 새로운 무리를 만들고, 반드시 피어날 것이다. 술집의 인파 사이로 P와 나는 서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악산에도 꽃은 핀다. 나는 그 사실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당신이 상처받지 않도록 글을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