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취향의 강화보다 취향의 붕괴를 선호한다
오웬 윌슨 주연의 ‘미드나잇 인 파리’는 포스터가 참 매력적인 영화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이 하늘을 채우고 생각에 잠긴 남성이 파리의 밤거리를 거닌다. 소환할 과거의 이야기가 무궁무진한 예술의 도시 ‘파리’. 할리우드에서 각본을 쓰는 한 남성이 우연한 시간 여행을 통해 1920년대의 파리로 넘어간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1920년대의 파리를 문화의 황금기라 여기고 동경한다.
주인공의 밤 산책은 작은 계기와 함께 1920년대로 향한다. 그 시절 파리 밤거리엔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달리, 피카소가 있다. 시대를 설명하는 거인들은 각자가 꿈꾸는 예술과 치밀하게 설계한 미래를 늘어놓는다. 뜨거운 역사의 현장에 2010년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합석한다. 자신이 창조한 소설을 공유하고 빛나는 눈으로 코멘트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에게 다리를 놓아주는 건 이름을 알린 예술가가 아닌 낯선 여성이다. 수많은 남성의 야망과 욕망이 뒤섞이는 1920년대에 상당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한 여성. 그녀의 이름은 거트루드 스타인이다. 영화 속 전개에서도 주인공의 작품에 흥미를 가지고 다른 소설가와의 연결을 도와주는 첫 매개자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파리로 건너온 부유한 미국인이다. 예술적 조예가 깊었던 스타인은 고갱을 비롯해 수많은 예술가의 작품을 구매했고 그녀가 꾸민 작은 갤러리는 현대 미술의 가치를 먼저 알아본 가능성의 공간으로 작동했다. 실제로 그녀가 만든 공간은 수많은 파리의 예술가들이 모이는 살롱이었고 자신의 작품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열린 공간이었다. 이곳에 자국 문화의 환멸을 느낀 미국인과 유럽의 문예사조를 쫓던 수많은 예술가가 모여든다. <위대한 개츠비>를 저술한 피츠제럴드, 음울하고 서늘한 소설 장르를 열었던 <검은 고양이> 의 에드가 엘런 포, 가장 미국적인 문체를 구사한 마크 트웨인, <노인과 바다>로 세계적 작가가 된 어니스트 헤밍웨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오 헨리와 이미지즘의 창시가 에즈라 파운드도 이곳 거트루드 스타인의 갤러리를 찾았다.
거트루드 스타인의 공간엔 미국 예술가만 모이지 않았다. 영화에선 피카소로 대표되지만 유럽 대륙의 수많은 작가와 음악인이 몰리는 공간이기도 했다. 스타인 살롱이 오늘까지 주목을 받는 건 다양한 출신 대륙과 이질적 특성이 관계 내에서 예술적 영감으로 승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스타인이 만든 살롱의 장점이 아니다. 영화가 담지 못한 혹은 영화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그 시대의 보편 다수가 살아가고 향유했던 문화에 대한 이야기다.
1920년대는 다양한 예술적 실험과 함께 공공장소에서 육체적 접촉이 금기됐던 뻣뻣한 시기이기도 했다. 1918년 온 유럽을 피바다로 만든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아직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설익은 피딱지가 가득한 사회가 1920년대의 유럽이었다. 주인공은 문화의 황금기로 여기고 동경했던 시간이지만 그 시대를 살던 수많은 시민의 삶도 황금기였을지 계속 질문이 남았던 것이다.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갖게 된 질문과도 결이 같다.
1920년대 예술가에게 살롱은 어떤 의미였을까. 아니 그보다 궁금한 건 당시를 살아가던 수많은 소시민에게 살롱은 어떤 의미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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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공간을 운영하며 취향에도 계급이 담긴 것을 느낀다. 같은 음악 프로그램이라도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3중주가 호흡을 맞춘 시간과 작은 통기타와 가수의 목소리로 채워진 시간은 정말 많은 것이 다르다. 공간을 찾아오는 사람도, 의상도, 아티스트에게서 꺼내진 메시지도, 담담히 삶을 살아내 행위를 펼치는 예술가의 표정도 다르다. 취향엔 각자가 머문 세상이 담겨있는 것이다. 그리고 취향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안에서 공유되고 강화된다.
문화회관의 노란 불빛과 지하 라이브홀의 노란 불빛은 다르다. 내가 머물지 못한 세상의 문화는 쉽게 상상하기 힘든 법이다. 쉽게 오갈 수 없는 문화적 장벽이 존재한다. 이것이 우리가 머물 사회를 가른다. 취향이 행위로 넘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취향을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누리고 있느냐에 따라 문화적 격차가 발생한다. 드보르작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과 연주회를 직접 보러 가는 것은 차이가 있고, 연주회를 보러 가는 것과 바이올린으로 내가 좋아하는 곡을 직접 연주해보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커뮤니티를 만들고 살롱을 만들고 취향 중심으로 사람과 관계를 엮어내려는 시도가 어쩌면 기존 커뮤니티의 단절을 유도하고 폐쇄적인 공간을 만들고 사람을 만날 때 취향이라는 새로운 관계 기준을 형성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이 시대에도 살롱을 다시 구현하려는 시도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리고 똑똑 두드린 살롱엔 그리 가볍지 않은 참가비와 낯선 문화 장르란 문턱이 존재한다. 우리가 지향한 목적은 낯선 타인과의 만남이지만 현실은 ‘같은 세계를 사는’ 낯선 타인과의 만남으로 재설정된다.
살롱을 쫓는 시도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구분과 계급을 부드럽게 강화하진 않을지 기획자는 앞서서 염려하고 예민할 정도로 민감해야 한다. 선한 목적이 언제나 선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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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향하는 커뮤니티는 다른 장르와의 열린 만남이다. 클래식을 쫓는 살롱이라면 참가 대상을 클래식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으로 명확히 설정해야 하고, 시사토론모임이라면 각자의 성향을 파악해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는 이들과 만날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 나는 취향의 강화보다 취향의 붕괴를 선호한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문화적 세계관이 붕괴되고 재설정되는 것이 커뮤니티 매니저로서 내가 지향하는 것이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자신의 공간을 찾아온 미국의 예술가를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라 정의했다. 한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고 오늘의 삶에 환멸을 느낀 세대를, 미래를 상실한 세대를 부드럽게 칭한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처럼 너희의 잘못이 아니라 그저 거센 불행이 너희 세대에 찾아왔다는 따뜻한 해석이다. 접속할 세계를 잃어버린 건 오늘날의 젊은이도 동일하다. 100년이 지나 우리도 다시 잃어버린 세대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살롱문화의 발현과 확산은 1920년대의 실험과 같은 맥락을 쫓는 것일 수도 있다.
다시 찾아온 잃어버린 세대와 다시 시작될 살롱 앞에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경계할지 면밀히 고민하는 밤이다. 커뮤니티 매니저로서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한 나의 가장 큰 과제일지도 모르겠다.
여담)
철학반찬을 준비하며 작은 팀을 꾸렸었다. 함께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뒷정리를 살뜰히 하는 청년 그룹이다. 우리 팀의 이름은 ‘플뢰뤼거리 27번지’. 앞으로도 이 이름으로 철학반찬과 같은 커뮤니티와 살롱을 앞으로도 여럿 시도할 것이다. 그리고 플뢰뤼거리 27번지는 거트루드 스타인 살롱의 주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