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이 업이 되자 놓쳐 버린 것들

우리가 봐왔던 재미없는 어른의 모습을 이제 서로에게서 발견하고 있었다

by 호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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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체성을 ‘커뮤니티 매니저’로 표할 때마다 직업과 활동의 모호한 경계에 마음이 개운치 않다. 이건 어느 정도 마음가짐에 따라 달리 보일 문제일 텐데 업무적 능력을 키우고 싶을 땐 혹여 활동의 감각을 놓치지 않을까 노파심이 들고, 활동의 신념으로 접근할 땐 내가 너무 이상적이진 않은지 현실의 불안에 휩싸인다. 눈에 보이는 상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니 불안하고, 투입된 노력이 데이터로 표현되지도 않아 늘 모호하고 애매한 것이다.


같은 영역에 있는 동료와 대화를 나눌 때 역시 비슷한 고민이 이어지지만 우리가 누구이고 이 사회에서 우리의 역할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 아무도 명쾌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서로를 통해 확인하려 하지만 고민의 교차점만 찾을 뿐, 길고 긴 대화의 끝은 언제나 ‘처음의 마음’으로 되돌아가고 만다. 우리가 왜 여기까지 왔고, 무엇을 지키고 싶어 이렇게 고민하는지 되짚어보는 것이다. 혹자는 여전히 과거를 산다고 평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걸어가는 궤적의 시작을 쫓으면 이 길의 끝이 대강 어딜 향할지 짐작해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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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연말이 되면 매년 반복되는 작은 의식이 있다. 문화 영역에서 5년간 마주한 친구들과 벌이는 우리만의 작은 씻김굿이자 연말 파티인 셈이다. 한 친구는 5년간 문화영역에서 청년 단체의 대표이기도 했고 전국 각지에서 자신만의 활동을 하는 청년을 모아 몽상가들의 올림픽을 열기도 했던 놈이다. 다른 이는 나와 같이 인터뷰를 하며 세상과 사람의 뒤를 쫓던 친구다. 좋아하는 책의 영역도,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도 나와 무척 닮은 놈이다. 하고 싶다는 의지만으로 대책 없이 일을 벌이고 어떻게든 되겠지란 나이브한 마음으로 끝까지 뒷풀이를 신나게 즐긴 우리들.


내가 머무는 공간에서 두 친구와 각기 다른 스타일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는 나이트클럽 컨셉의 파티를 준비했고, 책과 글을 좋아하는 친구는 에세이와 기타 공연이 버무려진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 연말, 의지만으로 준비한 프로그램이었지만 기획부터 진행까지 모두 벅차기만 했고 결국 클럽 분위기 연출도, 일주일 빠짝 연습한 기타 공연도 모두 불안하고 엉성하게 마무리되고 말았다. 하지만 엉성한 커뮤니티가 끝나자 파도처럼 밀려오는 서툰 즐거움이 우리가 맨 처음 무엇에 매료되어 커뮤니티를 꿈꿨고, 무엇을 향해 이 길을 걷게 했는지 다시 떠올리게 했다.


이건 일종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주변의 기대를 적당히 붕괴시키는 것과 보기 좋게 포장된 이미지를 망가트리는 것 모두 큰 위험부담을 안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큰 위험은 포장과 기대에 둘러싸여 가벼움을 잃어버린 태도일 것이다. 능숙은 경외를 낳지만 어설픈 솔직함만큼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진 않는다. 커뮤니티에서 보이는 누군가의 앞선 망가짐은 타인의 경계심을 허물게 한다. 그럴듯해 보이고 대단해 보이지 않으려는 노력이 동기가 되고 계기가 되어 삶의 다른 고백을 이끌어 내기도 하는 것이다. 혹 서로의 내면까지 나누진 못한다 하더라도 커뮤니티 운영자에게 부여된 보이지 않은 위계만큼은 확실히 지워낼 수 있다. 저 사람도 대단치 않다는 확인이 비로소 우리를 같은 눈높이에서 마주 보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친구들과 평소처럼 촘촘하게 프로그램을 기획하지도, 대상을 정해 효과 있는 홍보 전략도 짜지 않은 채 그저 우리들의 하고 싶다는 작은 마음 하나만으로 축제를 준비했다. 우리가 처음 커뮤니티를 만들 때처럼 그냥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대책 없이 일을 벌이는 서툰 경험인 것이다. 반복된 일상은 고된 어려움을 무디게 하지만, 신선함을 앗아가기도 한다. 반복된 기획 또한 어려움을 잊게 하고 창의적인 신선함을 앗아간다. 우린 대책 없이 틀렸지만 이 통쾌한 실패가 새로운 공기를 불어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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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만하게 기획하고 무엇이든 마주한 결과를 책임졌지만 어느새 시간의 때가 묻어 걸어왔던 방식으로 나아가고 해왔던 방식으로 상상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저 관성에 의지해 걸어가는 것이다. 꿈을 꿨던 이십 대의 새벽보다 바람은 더 차가워 춥기만 하고, 배는 또 왜 이렇게 자주 고픈지 쉽게 성이 차지 않는다. 우리가 봐왔던 재미없는 어른의 모습을 이제 서로에게서 발견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린 서로에게서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음을 느낀 것이다.


되돌아보면 성과와 관계없이 회복을 위한 커뮤니티가 필요했다. 이건 나의 내면에서 커뮤니티가 일이 되지 않기 위해 발휘된 앞선 경계다. 커뮤니티가 업무가 되면 표정이 경직되고 유연함이 사라진다. 지켜야 할 건 놀이처럼 발휘되는 유연함이다. 어쩌면 커뮤니티 매니저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빠른 업무처리보다 놀이처럼 가벼운 즐거움을 잃지 않고 업을 대하는 태도일지 모른다. 분명히 ‘일’이지만 일이 되어선 안 된다는 위기의식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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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고민과 번민이 많은 연말이다. 지루한 연말에 이런 친구들과 함께 망가질 수 있어 조금이나마 웃을 수 있던 시간이었다. 완벽하지 않은 채 시도해보는 노력이 우리의 어깨와 무릎을 가볍게 만든다. 물론 모든 프로그램을 가볍게 대할 순 없겠지만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시작했고 어떤 태도로 직업을 대해야 할지 재정립하는 경험은 필요하다. 올해도 진지하고 의미 있게 시도하고 다시 연말이 되면 첫 마음처럼 어설프게 시도하고 보기 좋게 망가질 것이다. 의미에 경도되어 경직되지 않도록. 부단히 애써야만 한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한 당신만의 방법. 당신은 무엇을 어떻게 시도하고 실패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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