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씬의 동료에게 전하는 호기로운 한 마디는 자극이 된다
태생적으로 체력도 약하고 감정도 예민한 편이라 하나의 커뮤니티가 끝나면 되도록 홀로 시간을 보낸다. 이래저래 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을 궁리해봤지만 커뮤니티는 마치 스위치를 켜고 끄듯 온전히 마음을 열거나 아예 닫는 것. 선택할 수 있는 태도는 오직 그 두 가지뿐이었다. 누군가와 감정을 공유할 때 가장 어려운 일은 대화의 길이도 밀도도 아닌 적당히 공감하는 것이었다. 가장 손쉽게 택할 수 있는 태도는 내 앞에 있는 사람과의 완전한 접속이었고 순간의 결합이 완전한 만큼 커뮤니티가 끝난 후의 허무함도 강렬했다. 아무리 많은 만남을 가져도 텅 빈 공간에서 홀로 느끼는 허무함은 좀처럼 익숙해지기 어렵다.
같은 영역에 있는 동료들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그들도 수많은 사람에 섞여 많은 걸 쏟아내고 큰 공간에 홀로 남아 고요히 충전한다. 서로에 대한 존중은 회복의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주는 것으로 확인된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업계와는 다르게 우리만의 방식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연대한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늦게 이어지는 뒷풀이가 아니라 그가 애써 준비한 프로그램의 적극적인 참여자로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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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머무는 공간 ‘생각하는 바다’에 여러 번 찾아준 동료 커뮤니티 매니저가 있다. 그는 이따금씩 들러 책을 사기도 하고, 내가 준비한 프로그램에 참여해 다른 참가자의 마음을 녹이기도 더 깊은 대화를 끌어내기도 했다. 따뜻한 연대에 늘 고마움을 느꼈던 나는 하루 시간을 비워 역으로 그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날은 때늦은 가을 태풍으로 엄청난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이었다.
꿈으로 다지는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우리가 도전할 꿈의 캔버스는 건물의 가장 높은 곳이거나 아니면 땅 아래에 있다. 생각하는 바다는 광안리 바다를 매립한 땅의 지하 공간이고, 그의 공간 <보이드>는 허름한 건물 가장 높은 층이었다. 화려한 부전동 간판 숲을 헤매다 한쪽 벽 아주 작게 붙어있는 공간 스티커를 보고 낡은 계단을 하나씩 올라갔다. 계단 하나마다 무척 턱이 높았는데 그가 이 많은 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어떤 꿈을 꾸었을지 짐작해본다. 기자재 하나의 무게보다 현실의 문턱보다 조금씩 자신의 색으로 채워가는 공간의 모습이 더 큰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오늘처럼 이유 없이 마음이 동할 때가 있다. 연대라는 단어가 순간적으로 가벼워지고 편해질 때가 있다. 애써 내어주는 느낌의 연대보단 그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명량한 마음의 연대다. 동질감은 경계를 허물고 나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현실은 꼬마 시절 처음 만난 동네 친구와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던 어린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공간은 짙은 검은색의 벨벳 커튼으로 꾸며졌고 낮은 조도의 핀 조명이 무대를 비추고 있었다. 내가 모임을 리드하는 곳이 아니면 펜과 종이를 들고 관찰되는 모든 것을 메모한다. 낯선 곳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의 대화엔 재밌는 요소가 많이 숨어있다. 공간 <보이드>는 실험 음악을 다룬다. 지역에서 만나기 힘든 수도권의 아티스트를 초대해 공연을 하기도 하고 실험 음악에 대한 담론을 나누기도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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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방문한 날도 수도권에서 활동하시는 분의 공연이었는데 그는 기존에 사용되던 악기가 아닌 하드 드라이브의 기계음, 자석과 코일에 의한 화이트 노이즈를 음악으로 재생산하여 들려주었다.
그날 태풍으로 많은 분이 취소했지만, 무관중 공연도 거뜬히 해냈다는 아티스트는 부드러운 미소로 본인의 세계를 들려주었다. 예술에 대한 철학과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며 나아갈 길을, 꿈꾸는 사람의 ‘굳은 심지’와 현실에 부딪혀 검게 그을린 서로의 심지를 응원하며 힘주어 가자 말한다. 오늘의 뜨거운 연대가 얼큰한 술자리로 이어지고 내일 아침 숙취와 함께 거품처럼 나아갈 수 있지만 그럼에도. 같은 씬의 동료에게 전하는 호기로운 한 마디는 자극이 된다. 나의 호기가 누군가에겐 용기가 되고 동기가 된다. 타인의 용기가 내 용기의 근거가 된다. 그러니 우린 더 많이, 더 자주 서로를 응원하는 것이 옳다.
그가 했던 많은 말 중 내게 걸린 문장은 ‘음악과 현상의 차이’다. 관객은 이 모든 과정을 하나의 기계적 현상으로 인식하지만 이것은 분명 음악이다. 정의되지 않던 자극을 음악으로 정의하는 것이 아티스트의 숙명이다. 정의되지 않는 가치 또한 구체적인 삶과 목표로 정의하는 것이 커뮤니티를 통해 관계를 통해 다름을 고민하는 사람의 숙명이다.
작고 어두운 공간에서 꿈이 자란다. 어두운 곳에서 시작된 상상이기에 거침이 없다. 언제나처럼 내일도 공간 <보이드>의 음악적 지평이 넓어지길, 소음이라 평가된 세상의 모든 진동이 그로 인해 음악이 되길, 우리의 연결로 더 많은 삶과 관계의 가능성이 증폭되길 그려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