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은 목적은 무엇인가
오늘은 독자를 미리 상정하고 글을 써보려 한다. “만약 당신이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면.”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행위보다 앞서 해야 할 건 전략과 고민이라는 점을 잊지 마시라.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커뮤니티의 설계도를 그리기 위한 밑그림에 대해 말하려 한다.
커뮤니티는 아래와 같이 세 가지로 단순화시킬 수 있다. 내가 무엇을 목적하느냐에 따라 혹은 내게 가장 잘 맞는 옷이 무엇인지에 따라 당신이 선택할 커뮤니티의 형태가 달라진다. 형태를 정하면 범위가 나오고, 범위가 설정되면 단기적인 실행과제를 다듬을 수 있다. 커뮤니티의 대표적인 형태를 살펴보자.
① 기획자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프로그램
② 동일한 컨셉을 유지한 채 내부 콘텐츠는 참여자가 채워가는 프로그램
③ 기획자는 플랫폼을 만들고 참여자가 또 다른 기획자로 새로운 하위 커뮤니티를 엮어가는 프로그램
풀어쓴 문장이라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지만 내용은 단순하다. 커뮤니티는 대화를 이끌 ‘주체’를 누구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
먼저 ‘기획자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프로그램’의 경우 커뮤니티가 이루어지는 장소와 환경, 분위기, 대화 주제, 참가자 선정, 프로그램 진행 방식과 마치는 시간까지 모든 것을 사전에 세팅할 수 있다. 동시에 이런 커뮤니티는 참여자가 프로그램의 진행에 개입할 수 없기에 보통 참여와 경험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미식회’, ‘음악 감상회’, ‘영화 감상회’, ‘토론 모임’과 같이 주제가 사전에 마련되고 참여자는 각자의 경험과 느낌을 나눈다. 기획자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커뮤니티는 주제의 일관성을 지킬 수 있고, 최적의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다. 참여자의 개입 가능성이 적은 만큼 유동적인 커뮤니티는 어렵지만 이 또한 참여자의 사후 피드백을 받으며 보완할 수 있다.
기획자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완벽한 시나리오를 짤 수 있다. 이는 나의 상상을 현실화시키는 것이다. 의도가 명확하다면 실험하고픈 주제가 확실하다면 내용은 더 명징해진다. 참여자 또한 사전에 기대했던 경험을 실현할 수 있다. 조금의 설계가 더 들어간다면 단기적인 커뮤니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획부터 이후 단계까지 하나의 흐름을 두고 실험을 해볼 수도 있다. 사례가 되는 커뮤니티는 촘촘한 기획이 수반되었을 때 가능하다.
*
‘동일한 컨셉을 유지한 채 내부 콘텐츠는 참여자가 채워가는 프로그램’ 은 기획자의 의도에 따라 개입 정도를 임의적으로 결정한다. 철학반찬으로 예를 들면 프로그램 진행 방식과 시간, 규칙과 컨셉은 동일하지만 오직 참여자만이 다음 철학반찬의 음식 메뉴와 토론 주제를 정할 수 있었다. 최대 5개의 의견을 받고 참여한 분들의 다수결을 통해 다음 주제가 정해지는 방식. 심지어 가능한 요리의 범위도 정해두지 않았다. 제일 어려웠던 요리가 한 여름에 했던 ‘초계국수’였다. (닭고기를 위해 프로그램 4시간 전부터 닭을 삶고 하나하나 살코기를 다듬었던 기억이..)
철학반찬은 기획자와 참여자의 경계가 모호한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만큼 다음 프로그램에 대한 가능성과 미지. 설렘과 불안을 동시에 남긴 커뮤니티다. 기획자가 정한 틀에 맞춰 참여자가 움직이듯 참여자가 정한 흐름에 기획자가 올라타는 것이다. 직접 프로그램을 조정했던 경험이 참여자로 하여금 커뮤니티와의 결속을 단단하게 만든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다. 내 자리가 공고하다는 믿음은 ‘선택에 대한 권한’에서 발동된다. 내 자리가 확실히 있는 커뮤니티. 이 작은 기대가 연속적인 참여를 유발한다.
만약 커뮤니티의 특성이 ‘창작’에 가깝다면 커뮤니티의 진행 방식은 고정해두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자작곡워크숍 Make.My.Music은 상호적인 대화와 관계 내에서 각자의 자작곡을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다. 자작곡워크숍은 프로그램의 형식에 있어 개방성은 떨어졌지만 참여자가 직접 능동적으로 자신의 결과물을 만들었다. 결과를 유도할 수도 없었고 강제할 수도 없었다. 커뮤니티가 당도할 ‘결과’의 영역을 참여자에게 무한정 열어둔 것이다. 어느 정도의 각오와 용기가 필요하지만 참여자를 주체로 세운다면 커뮤니티는 언제든 보조적 역할을 취할 수 있다. 아! 미리 말하지 못해 미안하다. 내게 커뮤니티는 도구이지 목적이 아니다. 많은 커뮤니티가 참여자의 충성심을 요구하지만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 주인의식은 주인이 되었을 때에만 발현되는 것이다. 커뮤니티는 ‘형식’과 ‘결과’로 참여자를 초대할 수 있다.
*
마지막으로 참여자가 또 다른 기획자로 새로운 하위 커뮤니티를 엮어가는 플랫폼형 커뮤니티가 있다. 제일 확장성이 좋은 방식이다. 그만큼 외부가 아닌 플랫폼이 된 커뮤니티 내에서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 최근 커뮤니티 영역에서 가장 많은 분들이 참여하고 있는 ‘독서 모임’이 이런 방식이다. 여기엔 커뮤니티 매니저의 개성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커뮤니티 매니저에 따라 진행 방식도, 온도도 달라진다. 플랫폼형 커뮤니티는 참여자와 기획자의 전환이 자유롭다. 모임의 퀄리티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기준이 있을 뿐 참여자가 기획자가 되는 것을 막는 본질적인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시에 커뮤니티 간의 전환도 자유롭다. 참여자는 특별한 심리적 속박 없이 자유롭게 커뮤니티를 오갈 수 있다.
플랫폼형 커뮤니티는 개인과 개인보단 커뮤니티와 커뮤니티 간의 연결에 집중해 하나의 작은 생태계를 구축한다. 생태계의 형성은 장기적인 생존을 담보한다. 커뮤니티가 뿌리 내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담대하고 긴 시선이 필요하다. 건축과 같다. 함께 시작을 다질 동료를 찾아 지반을 잘 다지는 작업이 선행된다. 어쩌면 플랫폼형 커뮤니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참여자보다 같은 길을 걸어갈 동료일 수 있다. 플랫폼형 커뮤니티는 수익과 활동의 지속가능을 고민한다. 그만큼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직접적이고 묵직한 선택지이기도 하다.
*
당신이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은 목적은 무엇인가. 어느 날 나에게 찾아온 특정한 욕망의 실현인가, 관계를 통한 성장 그것도 아니라면 새로운 시스템을 짜고 싶은 것인가,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것인가. 나의 목적에 따라 커뮤니티의 형태를 설정하면 이후 작업 또한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다. 이번 글은 커뮤니티의 형태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결국 당신이 커뮤니티를 하고 싶은 본질적 이유에 대해 묻는 글이기도 하다. ‘왜 하는지’에 대한 끝없는 물음이 출발 총소리가 들렸을 때 힘차게 땅을 박차고 뛸 수 있는 자신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