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는 개인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

높은 시선에서 해석하고 솔루션이 제공된다면 합의되지 않은 권력이 생긴다

by 호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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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네 종류의 일이 있다.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일’, ‘하기 어렵지만 해내야 할 일’과 ‘하기 어렵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이 네 분류의 일이 교차되며 세상이 이어진다. 언제나 행위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할 수 있다’는 가능의 담론보다 ‘해야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업무에 대한 판단과 의지여야 한다.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자기 개성의 표현이든, 성장 혹은 새로운 사람과의 교제이든 모든 커뮤니티는 기획의 단계부터 설정된 하나의 목적이 있다. 커뮤니티의 목적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영역과 사회적으로 ‘해야 할’ 영역에 대한 우선적인 고려로 다듬어지는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함께 고민되지 않는 두 주제. ‘할 수 없는’ 영역과 ‘하지 말아야 할’ 영역에 대한 고민의 부재가 또 다른 문제를 낳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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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수많은 커뮤니티가 생겨난다. 그중 눈에 띄는 건 개인의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커뮤니티다. 오늘의 불안이나 미래에 대한 궁금함, 꼬여만 가는 삶의 원인이 무엇인지 대신 쫓아주겠다는 내용이다. 콘텐츠는 좋을지 몰라도 형태가 문제다. 다수와 주목받는 한 사람으로 이루어진 관계. 상호적이고 유기적이지 않고 수직적-고정적으로 형성된 하달식 커뮤니티 관계. 겉은 커뮤니티의 조건을 갖췄지만 내부는 그렇지 않다. 이런 구조로 담은 내용이 특정 분야에 대한 교육이거나 컨설팅이면 괜찮겠지만 대부분 청년 개인의 삶을 꺼내고 민낯의 자아로 만나게 하는 고백의 자리다. 위험한 구조다. 같은 눈높이에서 함께 고민을 꺼내지 않고, 꺼내진 고민을 높은 시선에서 해석하고 솔루션이 제공된다면 합의되지 않은 권력이 생긴다. 미처 경계하지 못한 사이에 삶의 주도권이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엔 의도적으로, 이를 이용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할 수 있는 영역을 설정하기 위해선 ‘할 수 없는 영역’이 먼저 세워져야 한다. 개인의 문제는 개인의 몫이고 우리의 문제만이 우리의 몫이다.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당신이 할 수 없는 영역이라 고백하는 건 무엇인가. 커뮤니티는 접근 가능한 영역과 불가능의 경계를 확실히 알릴 필요가 있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이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커뮤니티는 지지와 회복의 경험을 담는 그릇이다. 도움이 될 순 있어도 개인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도구로는 적합하지 않다. 친절한 대화 속에 수많은 감정과 일상이 오가지만 커뮤니티 매니저는 타인을 위로해내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삶에 개입하는 일은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명확하게 영역 밖의 일이다. 따뜻한 위로는 순간이고 호의의 유효기간은 짧다. 그리고 최종의 공백을 메워내는 건 언제나 홀로 ‘일상’을 마주할 상대방이다. 깊은 상처는 딱딱한 주먹보다 선한 마음으로 내민 손에 베이는 법이다.


누군가는 이런 관계망에 사용료를 책정해 수익을 만들기도 하고, 문을 좁혀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의 새 세상을 창조하지만 나의 지향은 다르다. 지금까지, 또 앞으로 만들 커뮤니티의 목적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서로의 삶을 섞어내 공고해보였던 일상의 벽을 허무는 것에 있다. 하지 말아야 할 영역은 의도와 다른 기대를 심는 것이고, 할 수 없는 것은 타인의 삶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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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날서있지 않고, 모든 삶이 벅차지 않다는 확인이 나의 일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다양한 삶의 모델과 마주한 경험이 나의 감정을 일시적인 것으로 내려놓게 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빈틈이 생기는 것이다. 다른 가능성의 확인만으로도 숨을 돌릴 수 있다. 빈틈을 목격하게 하는 것이 내가 설정한 커뮤니티의 제 1목적이자 커뮤니티 매니저로서 타인의 삶에 개입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내가 생각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믿는다.


우리는 관계라는 망을 만든다. 촘촘하게 짜인 망 안에서 사람과 관계에 대한 가치판단이 재설정된다. 우리의 집중과 성과는 가치의 다양성을 확보해내는 일에 있다. 가능의 영역은 온전히 나의 몫이지만 의지와 방향은 상호 합의가 필요하다. 사람에 대한 지침이 혐오로 번지지 않도록, 다양한 주제로 살아가는 서로를 한 자리에 엮어내는 것이다. 되도록 재미있고 되도록 깔끔하게.


‘생각보다 당신의 잘못이 아닌 일이 많다. 오롯이 버텨내야 할 일상과 감정도 생각만큼 강하지 않다.’ 우리가 제공하고 만들어야 할 문장은 이것이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우리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우리가 이어야 할 일상은 이것이다. 답을 주고 거대한 집단을 형성하기보다 누군가에겐 용기가 되고 공고한 일상을 허물게 하는 커뮤니티를 함께 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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