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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 Apr 20. 2020

하루 12시간 공장에 있었지만, 나는 분명 자유로웠다

물리적인 한계가 나의 영혼을 억압할 수는 없었다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창밖으로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떨어지는 빗방울은 거리 속으로 섞여들어 금방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비가 그치면 조금 더 더워질 것이다. 바람은 물기를 머금고, 오후의 햇살은 다가오는 여름을 실감 나게 할 것이다. 봄비는 그렇게 하나의 시기를, 하나의 그림처럼 바꿔가며 거리의 풍경을 변화시킨다.


  회사를 그만두던 날에도 비가 내렸다. 공단의 가로수는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기 위해 연분홍 꽃잎을 떨어트렸고, 새잎이 돋아나듯 비어있는 시간 사이로 또 다른 일상이 침입해 들어왔다.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과 달리 감정은 점점 더 느긋한 속도로 가라앉고는 했다. 아주 오래된 기억인 것 같은데, 이제 겨우 1년이 지나갔을 뿐이다.


  *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한 나는 전역과 퇴사를 동시에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유독 많은 축하를 받았는데, 왠지 쉽게 기뻐할 수가 없어 어색한 미소를 짓고는 했다. 다짐이나 각오나 아쉬움이나 환희 등을 말하는 수많은 ‘퇴사’ 이야기들과는 달리, 나의 ‘퇴사’는 아무런 감정의 변화가 없었다. 마치 시간이 지나고 계절이 변하는 것처럼, 모든 게 ‘당연히 일어나야만 하는 일’로 여겨질 뿐이었다.


  전에도 비슷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 4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마치고 훈련소를 나오던 날이었다. 현역 장병이라면 자대 배치 이후에 본격적으로 군 생활이 시작되었지만, 대체복무자들로 이루어진 우리 소대는 한 달만 참으면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었다. 끝이 있다는 사실 덕분인지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날 훈련도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나가자마자 바로 삼겹살에 소주 한잔해야지. 나는 치킨. 족발 먹고 싶다. 훈련소 한쪽 구석에서는 늘 그런 이야기가 오갔다. 먹고 싶은 음식부터 보고 싶은 사람까지. 누군가는 겨우 한 달이라고 말할 시간 속에는 각자의 그리움과 기대가 있었다. 그들을 보며 나도 나가서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고민해보았는데,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나가기 전에 다 읽어야겠다며 훈련소에서 읽던 책들을 서둘러 본 게 다였다.


  수료식이 끝날 때는 무척 즐거웠다. 짧은 시간이지만 동고동락하던 이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감정은 금세 가라앉았다. 우울해지거나 외로워진 건 아니었다. 그저 모든 게 나에게 영향을 끼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와 무관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날 나는 아무에게도 연락하지도 않고 아무것도 먹지도 않은 채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잠이 들었다.


  왜 그랬을까. 훈련소를 나올 때도, 회사를 그만둘 때도, 나는 왜 그렇게 아무렇지 않았던 걸까. 몇 편의 글을 써보았지만 자신의 감정을 명확히 설명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신할 수 있었던 건, 나는 주변의 변화를 ‘당연히 일어나야 할 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축하할 필요도, 슬퍼할 필요도 없는. 비가 내리고, 공기가 더워지고, 그러면서 당연하게 여름이 오는 것처럼.


  *


  한동안 형태 없이 불분명하게 흘러가던 마음에 언어를 부여받은 건,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통해서였다. ‘선택받은 자이며 사랑받은 자’인 예언자 알무스타파가 자신을 본향으로 데리고 갈 배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오르팰리스 성의 사람들에게 전한 마지막 가르침. 삶의 지혜를 묻는 스물여섯 가지 질문에, 알무스타파는 ‘허기와 갈증에 젖은 심장’으로 대답한다. 

사랑할 때 그대는 ‘신이 내 가슴속에 있다’라고 말해선 안 된다. 그보다도 ‘나는 신의 가슴속에 있다’라고 말해야 한다. 또한 그대가 사랑이 나아가는 길을 지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대에게 자격이 있음을 알게 되면 사랑이 그대의 길을 지시할 것이기에. -칼릴 지브란 <예언자> 24p
‘나는 영혼의 길을 발견했다’라고 말하지 말라. 그보다는 이렇게 말하라. ‘나는 나의 길을 걸어가는 영혼을 만났다’라고. 왜냐하면 영혼은 모든 길을 다 걷기 때문이다. 영혼은 하나의 길만을 걷는 것도 아니고, 또 갈대처럼 자라는 것도 아니다. 영혼은 무한 잎새의 연꽃이 피어나듯이 저 자신을 안다. -칼릴 지브란 <예언자> 81p


  우리는 자신이 삶을 ‘살아간다’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삶이 우리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사랑도, 슬픔도, 기쁨도,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며 우리는 그저 삶이 지나가는 통로일 뿐이라는 인식. 자칫 수동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말은 다른 의미의 자유를 표현하는 말이었다. 우리는 '나'라는 자아를 다르게 인식하므로 자유로워질 수도 있다. 내가 느꼈던 불분명함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적어도 회사를 그만두면서 달라진 점은 없었다. 그 전부터 계속해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독서모임을 하고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나는, 한 번도 구속된 적이 없었다. 하루에 12시간을 공장에 있으면서도,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쓰면서도, 세 명이 지내는 여섯 평 남짓한 기숙사 방안에서도, 나는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낮에 근심이 없고 밤에는 욕망과 슬픔이 없을 때 그대가 진정으로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 모든 것이 그대의 삶에 휘감겨도 그것들을 벗어 던지고 얽매임 없이 일어설 때 그대는 진정으로 자유롭다. -칼릴 지브란 <예언자> 70p


  물리적인 한계가 나의 영혼을 억압할 수는 없었다. 그보다 더 가혹하고 힘겨운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하고자 하는 일을 했을 것이다. 적어도 그러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훈련소에서도 계속해서 책을 읽고, 끊임없이 뭔가를 썼던 것처럼. 사건과 대립하는 자아가 아니라, 사건이 지나가는 통로로써 자신을 인식하는 순간, '나'는 사건으로부터 독립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오늘도 삶이 나에게로 흘러들어온다. 봄의 여운처럼 행복하게, 때로는 겨울 냉기처럼 가혹하게. 하지만 어떤 삶 속에서든 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여름이 온다면 흩어지듯 내리는 봄비가, 새로이 햇살을 원하는 푸른 잎이, 멀리서 불어로는 젖은 바람이 지나는 통로가 되어 여름을 맞이할 것이다. 그런 태도는 결코 무언가를 손상시키거나 파괴하지 않고, '나'와 '삶'을 온전히 지켜내며 다시 어디론가 흘려보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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