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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 May 11. 2020

우리 모두 언젠가는 노동자 혹은 실업자가 될 것이다

공감의 수준을 넘어 언제나 사건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너 대학 가는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그래서 연락하기 좀 망설였어.’


    너는 그런 말을 했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서로의 근황을 나누던 중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너와 따로 만난 적은 없었다. 곧바로 취업해서 일을 하던 나와 달리 너는 졸업 후에도 개인적으로 공부를 계속했다. 다른 친구를 통해 너의 입대 소식을 들었는데,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너는 글 잘 읽고 있다며, 자신은 군대 제대 후 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수업을 듣는 틈틈이 직장 일도 하고,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혼자 산다 했다. 나는 노란 말풍선을 가만히 바라보다 답장을 보냈다. 대학생을 싫어하지 않아. 그리고 혼자 생각했다. 딱히, 누구도 싫어하지 않아.


   *


   네가 보았다는 글은 아마 1월부터 이어오던 연재였을 것이다.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글.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했던 경험을 토대로 청년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15편의 글이 세상에 나왔는데, 마감이 없었다면 이만큼 써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며칠이고, 몇 개월이고 붙잡고 있지 않았을까.


   글을 쓰기 시작하고 주변에서 많은 조언을 들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가 쓰는 글이 어떤 무게감을 가지고 있는지 가늠해보아야 했다. 당사자의 입장에서 책임감 있는 글을 써야 해요. 아프고 불편해도 더 깊이 들어가야 해요. 절제하고 정리된 감정도 좋지만, 가능하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내야 해요.


   외부적인 요구가 가진 색채. 저마다의 목적. 저마다의 방향. 그 다채로움 속에 나는 당황해버린다. 살아간다는 행위가 가지는 온기는 이런 것이구나.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글을 썼는데. 우리를 지나쳐 간 슬픔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알 수 없어서, 옳고 그름의 바깥에서 모든 걸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는데. 고개 돌리지 않음으로 생긴 얼룩이 언어와 닮았을 뿐인데.


   *


   너의 말이 인상 깊었던 건, 사람들이 내 글을 어떻게 읽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어서였다. 누군가에게 내 글은, 자신을 탓하는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겠다. 너희가 누리는 권리는 잘못됐다. 이건 불공평하다. 나는 너희가 싫다. 그렇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비교하고, 평가하며, 잣대를 들이미는 거로 보일지 모르겠다. 어쩌면 평소 내 안에 눈치채지 못한 억울함이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 나는 그 모든 판단을 끊임없이 보류했다. 목적과 방향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여전히 쓰다 보면, 그저 투명해지고 싶다고 바라고는 했다. 나를 지워버리고, 나를 잊어버리고, 나를 지나쳐간 어떤 순간들만이 그곳에 남기를. 그건 이기적인 마음이었을까. 나는 담아둬야 하는 것들의 무게가 버거워 자꾸만 자신을 비워내려 했던 걸까.


   애써 거짓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정말로 나는, 누구도 싫어하지 않는다. 적어도 글을 쓰는 동안,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은근히 나를 따돌리던 아이들도, 술에 취해 내 멱살을 잡던 회사 선배도, 좋지 않은 기억으로 지나친 사람들도, 오래 연락하지 못한 친구도, 그리고 너도. 오히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모두가 된다. 경계가 사라지고 천천히 흘러 들어간다. 그런 기분이 든다.


   *


   너는 자신을 분리해서 보았는지 모르겠다. 이제 대학생이 되었으니까. 내 글은 타인의 이야기라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다. 걱정과 불안, 미래에 대한 공포를 공유했다. 그 이야기는 누구를 위한 걸까. 나는 직장을 그만뒀지만 여전히 회사에 다녔던 이야기를 쓰고 있다. 그 이야기는 누구를 위한 걸까. '현장실습생' '산업기능요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지만, 결국 그들은 모두 노동자이고 언젠가는 실업자가 될 것이다. 그 이야기는 누구를 위한 걸까.


   누군가는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시간이라는 간격을 두고, 우리는 '진짜' 서로가 될 수 있다. 공감의 수준을 넘어 언제나 사건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지나왔던 시절이, 간절했던 마음이, 나누었고 사랑했던 온기가, 어느 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그건 아픈 일이니까, 모두가 잊어가는 거겠지. 그래도 누군가는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다고 변하는 건 없겠지만, 아픔도 시간을 넘어왔으니까, 이 글도 언젠가 누군가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회색빛으로 보이던 출근길 지하철에서, 힘없이 흔들리던 인파 사이로 마주친 마음을 닫아버린 사람의 표정. 그건 나였을지도 모른다. 그건, 너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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