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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 May 18. 2020

매년 산업 현장에서 꺼져가는 2000여 명의 이름에게

사회는 당연하다는 듯 우리를 회사, 직업, 집단으로 뭉그러트렸다.

꿈에서도 그리운 목소리는
이름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아
글썽이는 그 메아리만 돌아와
그 소리를 나 혼자서 들어

깨어질 듯이 차가워도
이번에는 결코 놓지 않을게
아득히 멀어진 그날의 두 손을

아이유 - <이름에게> 中

  가수 아이유의 노래를 자주 듣게 된 건, 친구의 추천으로 보게 된 영상 때문이었다. 시상식 무대에서 불렀다는 <이름에게> 라이브. 잔잔한 피아노 반주로 시작되는 무대는 처음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아이유만 눈에 들어왔지만, 이윽고 신인 가수, 전문 코러스, 버스킹 가수 등 무명 음악인들이 노래를 이어받았다. 그들이 화면에 잡힐 때마다 잠시 무(無)에서 벗어난 이름이 세상으로 떠올랐다 사라졌다.


  노래가 절정으로 다가서자 무대가 순간 밝아지고, 60여 명의 일반인 합창단이 웅장한 하모니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름이 쏟아졌다. 마치 은하수가 흘러가듯, 화면을 가득 채우는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 빛 가운데로 개개인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서였을까, 영상이 끝날 즈음 나는 이미 그의 팬이 되어 있었다.


  *


  <이름에게>를 듣다 보면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신발과 나무 바닥이 마찰하며 내는 끼익-하는 소리. 희미한 먼지 냄새. 농구공이 튈 때마다 느껴지던 떨림과 내뱉은 숨의 열기. 그리고 밝은 표정으로 뛰어다니던 A. 체육관에서 다른 운동을 하던 아이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왜인지 별로 기억이 나지 않고, 코트를 가득 채우며 농구를 하던 모습만 유독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마 실내에서 여럿이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이 많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일요일 저녁은 주말 동안 집에 있던 아이들이 기숙사로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복도 너머로 들리는 인기척은 때때로 거칠게 방문을 두드렸다. 두 개의 기숙사 건물에서 천 명 가까이 되는 고등학생 남자아이들이 함께 살았으니, 각자의 생활이 넘치다 못해 폭발할 지경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학교는 체육관을 개방해두었는지도 모르겠다. 높은 천장 끝에 달린 조명들이 켜지면 일찍 기숙사로 들어온 아이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골대 하나에서 몸을 풀다 사람이 늘어나면 5:5로 시합을 했다. 나중에는 옆 코트도 가득 차서 7:7이나 8:8로 사람을 맞추기도 했다. 무작위로 모이는 아이들 중에는 눈에 익은 얼굴도 있었지만, 학년이나 과가 달라 처음 보는 아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팀을 나누고 뛰다 보면 어색함은 금세 사라졌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가득 찬 체육관은 용광로 같았다. 서로를 가로막던 벽이 허물어지고, 의사소통에 필요한 모든 게 단순한 형태로 변하는 기분이었다. 농구를 할 때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보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가 더 중요했다. 그래야 패스를 주고 득점을 할 수 있으니까.


  *


  A는 그런 와중에도 꼭 뛰어다니는 한 명 한 명에게 이름을 묻고는 했다. 농구 실력도 수준급이었던 그는 긴 팔다리로 재빠르게 상대를 지나치고, 슛이 들어가지 않을 때면 짜증 대신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이 있으면 어김없이 이름을 물었다. 일요일 저녁에 체육관으로 나오는 아이들은 학년과 학과에 관계없이 모두 A의 친구가 되는 것 같았다.


  한 번은 샤워실에서 마주친 그에게 장난삼아 물어본 적이 있다. 애들 이름을 너무 열심히 외우는 거 아니냐고. A는 웃으며 열심히 외우는 게 맞다고 했다. 졸업 전까지 전교생 이름 절반 외우는 게 목표야. 이름을? 응,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서로 이름도 모르고 지나치면 아깝잖아. 나는 그 표현이 재미있으면서도 조금 어이없다고 생각했다. 아깝다니, 오히려 너무 가까워서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인데.


  전교생이 900명이었으니까, A가 목표를 달성하려면 450명의 이름을 외워야 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이름만 외우는 게 다가 아니라고 했다. 당연히 얘기도 나누고 친하게 지내야지!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듣고 관계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A의 목표는 훨씬 더 달성하기 어려워지는 셈이었다.


  나는 혀를 내두르면서도, 한편으로 나라면 몇 명의 이름을 외울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A처럼 붙임성이 좋은 건 아니었지만, 동아리나 학생회 활동을 하고 있으니 마주치는 사람이 많았다. 학년의 절반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면 졸업 전까지 150명의 이름을 외워야겠다고, 나는 샤워실을 나오면 혼자 생각했다.


  *


  하지만 단순히 150, 450, 900이라는 숫자와 그 숫자가 뜻하는 사람의 질량은 전혀 달랐다. 가끔 학교 행사를 위해 전교생이 체육관에 모여 있을 때면 그런 차이를 더 실감 나게 느끼고는 했다. 농구공을 따라 쉴 틈 없이 뛰어다니던 넓은 공간이, 빽빽하게 들어찬 아이들로 답답하게 보일 정도였다.


  나는 그런 단체 행사마다 유독 공허한 기분이 들고는 했는데, 행사 자체보다는 으레 듣게 되는 누군가의 일장 연설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주로 저명한 외부인사인 경우가 많았다. 내빈석에 앉아계신 어디 은행 지부장님, 어느 기업 대표님, 어떤 단체 이사장님이 연단 위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존경하는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 재학생 여러분. 미래의 마이스터 여러분. 이 시대의 산업역군 여러분. 여러분여러분여러분……. 연설이 시작되면 체육관은 용광로처럼 변했다. 실제로 더워지거나 열이 나는 건 아니었다. 단지 거기에는 구체성이 없었다. 형태가 허물어지고 단순하게 뭉쳐진 익명성만이 그곳에 남았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허공에 흩어진 말들은 개인에게 닿지 못한 채 금세 무(無)로 되돌아갔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누구라도 전교생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줄 수는 없을 테니까. 천 명에 가까운 인원이 기숙사에서 생활하거나 큰 행사를 치르기 위해선 통제가 필요하고, 때로는 개개인의 사정이 지워지는 경우도 있었다. 모두의 이야기를 듣고, 모두와 관계하며 살아가는 일은 불가능 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억의 한 편이 공허한 이유는 아마, 시간이 지나면서 개인으로 남아있는 게 점점 힘들어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사회에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보다, 어디에 있는지가 더 중요했다. 회사, 직위, 직업, 또는 속해있는 집단으로 구분되어야 했다.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우리를 뭉그러트렸다. 누구도 A처럼 절반의 이름이라도 외우기 위해 노력해주지 않았다.


수없이 잃었던 춥고 모진 날 사이로
조용히 잊혀진 네 이름을 알아
멈추지 않을게 몇 번이라도 외칠게
믿을 수 없도록 멀어도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으로

아이유 - <이름에게> 中

  사람들이 <이름에게>를 들으면서 위로를 받는 건, 그 노래가 모든 익명의 존재에게 다가가는 큰 이야기인 동시에 보이지 않던 작은 개인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깨어질 듯이 차가워도’, ‘에어질 듯이 아파와도’, 결코 잊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그들에게 손을 뻗는다. A도 그런 마음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물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을까. 450명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친구가 되었을까. 나는 150명의 이름을 외웠었나. 결국 확인하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가 버렸다. 일상이라는 파도 속에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이야기가 금세 형태를 잃어버리고 무(無)에 잠겼다. 몇몇 기억만이 밤하늘에 떠오른 드문 별빛처럼 그 자리에서 반짝이고 있을 뿐이다.


  그 희미한 빛에 의지해서 나는 가끔, ‘사건’이란 용광로에 빠진 이름을 비춰보고는 한다. 매년 산업 현장에서 꺼져가는 2000여 명의 이름.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명의 이름. 때로는 별자리가 되어 누군가의 미래를 밝히는 이름.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가까웠던, 숫자가 표현하지 못한 삶의 질량을 생각한다. 어쩌면 그래서 매일같이 마음이 무거워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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