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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 May 25. 2020

멈춘 기계의 맞은편, 업무의 뒤편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책임’은 귀찮음을 무릅쓰고 한 번 더 확인해보는 일에 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딱 한 번, 같이 일하는 공무팀 후배에게 큰소리로 화를 낸 적이 있다. cnc기계로 밸브를 가공하던 자동반에는 6m 길이의 황동 재료가 지름 크기별로 정리되어 있었는데, 기계가 더 들어오면서 재료를 적재하는 이동대차도 추가로 제작해야 했다. 다른 업무로 바빴던 나는 후배에게 작업 지시를 내리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급한 작업이 아니니까 천천히 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저녁 시간이 지나고, 노후 된 전등을 교체하고 있는 나에게 후배가 다가왔다. 다 만들었어요. 어, 고생했어. 나는 대충 대답하고 하고 있던 일을 마무리하려다, 괜히 찝찝한 기분이 들어 그에게 기다려보라고 했다. 이동대차는 작업장에 있어? 자동반에 가져다줬어요. 잠깐만 있어 봐, 같이 가보자.


  노란 테이프로 구분해둔 자리에 새로 제작된 이동대차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겉모습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크기도 틀리지 않고, 구조도 지시해준 대로 잘 만들어져 있었다. 나는 역시 괜한 생각이었나 싶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동대차를 전부 뒤집어보았다. 거기에는 용접으로 접합해야 하는 바퀴가 달려있었다. 야. 네? 망치 가져와봐.


  나는 건네받은 망치의 무게를 가늠해보았다. 손잡이가 나무가 아닌 철로 되어 있어 묵직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곧바로 망치를 휘둘렀다. 방금 확인했던 부분을 집중적으로 힘껏. 쾅! 쾅! 콰앙……. 제대로 접합되어 있지 않았던 바퀴는 두세 번 만에 금방 떨어져 나갔다. 이게 다 한 거야? 후배의 낯빛이 금세 어두워졌다. 그는 어물거리다 하면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열심히 했는데 잘 안 됐네요…….     


  *


  나는 참지 못하고 후배에게 큰소리를 쳤다. 열심히 했다는 게 변명이 되냐? 저기 쌓여있는 원자재들이 얼마나 무거운 줄은 알아? 만약에 그대로 쓰다가 바퀴가 떨어졌으면? 넌 지금 실수 하나 한 게 아니라, 네 친구랑 선배들 전부 위험하게 한 거야. 진짜 누가 다쳤으면 어쩔 뻔했어? 그때 가서 미안합니다, 실수였습니다 이럴 거야? 너 책임질 수 있어? 어?!


  결국 이동대차를 전부 회수해서 다시 작업하기로 하고, 후배는 잔뜩 풀이 죽은 얼굴로 공무팀 작업장으로 돌아갔다.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자동반 동기는 슬며시 다가와 물었다. 쟤 또 실수했나? 아니, 실수도 실순데…….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려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생각보다 오래 혼을 냈는지, 벌써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평소라면 그렇게까지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잘못된 부분을 알려주고 다시 작업을 시키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후배가 실수를 했다는 사실보다, 그 실수를 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한 건지도 몰랐다. 본인 스스로 놀라 풀이 죽어야 할 만큼 중요한 이유라고, 그렇게 느꼈던 게 아닐까.


  나도 지금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차장님에게 혼이 났다. 도면을 잘못 보고 전혀 다른 형태의 부품을 만들거나, 지시사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우왕좌왕할 때면 어김없이 지적을 받았다. 한 번은 자동기계의 안전커버를 제작하는 업무를 맡았는데, 가공 부위에 닿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철판을 대강 잘라서 붙여뒀다. 그런데 마무리된 작업을 확인하는 차장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나를 불러 전부 원상복구 시켜 놓으라고 했다.


  태준아, 작업을 할 때 생각을 좀 하고 해라. 이 기계 어떻게 움직이는지 생각해봤나? 작업하는 애들이 어떻게 쓰는데? 공구 바꾸거나 청소를 할 때는 어떻게 하데? 니 알고 작업했나? 모르면 물어봐야지 그냥 달아놓으면 그만이가? 책임은 누가 지는데? 한 번 일할 때 제대로 해야 할 거 아니가, 어?


  별생각 없이 작업을 했던 나는 차장님의 지적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우습게 여기고 넘겨버린 문제가 더 커져 버릴 수도 있었는데. 해결하지 못한 고장이 작업자들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었는데. 내가 하는 일은 그들의 편의와 안전을 책임지는 일이었는데.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


  ‘공무팀’의 업무라는 건 일반적으로 제품을 만드는 작업과는 달랐다. 공장에는 정말 수많은 기계가 있고, 그 기계들은 필연적으로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이었다. 기계가 멈춘다는 건 작업이 멈춘다는 이야기고, 그러면 생산성과 매출에 지장이 생긴다. 공무팀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며 공장이 계속 돌아갈 수 있도록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해야 했다.


  하지만 어떤 기계든 미리 신호를 보내고 고장 나는 경우는 없었기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당 부서에서 공무팀으로 달려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과 마주하게 됐다. 부서별 반장님과 연구소 직원들, 부모님 나이대의 여성 사원님들과 cnc기계를 돌리던 친구와 선배, 멈춘 기계의 맞은편, 업무의 뒤편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다.


  후배에게도 그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물론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부족함도 있을 것이다. 3년 동안 회사에 다닌 나조차 모르는 것이 많으니까. 작업에 익숙하지 않은 신입사원이라면 자신이 끝낸 업무에 문제가 있는지 찾아내기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 욕먹을 각오로 한 번 더 물어보고, 부끄럽고 쪽팔리더라도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막연히 괜찮을 거라고 넘겨버린 일들은 반드시 더 큰 문제가 되어 돌아오고는 했다. 잔인한 말일지 모르지만, 사고가 일어났을 때 ‘열심히 했다’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 말은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았다. ‘책임’은 귀찮음을 무릅쓰고 한 번 더 확인해보는 일에 있었다.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이동대차를 전부 뒤집어 보는 일에 있었다.     


  *


  퇴근 후 복도에서 후배를 마주쳤다. 나는 괜히 멋쩍어져 먼저 사과를 건넸다. 큰소리쳐서 미안하다고. 그래도 이해해달라고. 나도 놀라서 그랬다고. 진짜로 사고가 나면 곤란해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다치는 사람이 생길지 모른다고. 그런 일이 없도록 너는 내가, 나는 차장님이 챙기게 되는 거라고.


  후배는 손을 내저으며 오히려 자기가 죄송하다고, 괜한 변명하지 말고 인정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에는 꼭 한 번 더 물어보고 확인하겠다고 했다. 그래, 물어보면 짜증 안 내고 알려줄게. 나는 웃으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후배의 마음이 아프지 않았기를, 함께 일하는 누구도 다치지 않기를 바라며 생각했다. 업무의 뒤편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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