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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 Aug 27. 2020

아, 나는 들러리였구나

여기서 떨어지더라도 선생님의 자격이 모자라거나 미흡해서가 아닌...

   세 번째 시험을 쳤다. 이번 해 만큼은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새벽기도에 다녀온 후 간단하게 밥을 먹고 7시쯤 도서관으로 향했다. 열람실에 1등으로 도착해, 창문을 열고 사물함에서 책을 꺼내 착석하면 7시 30분. 그렇게 하루를 시작했다. 앞의 두 해보다 더 노력했고, 남자친구도 덜 만났고, 친구들도 거의 보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당연히 될 줄 알았다.      


   시험 결과는 0.2점 차로 1차 낙방. 내 눈앞에서 문이 닫혔다. 그렇지만 하늘은 아직 나를 버리지 않았는지, 공사립 동시지원을 했던 터라 사립의 한 재단에서 2차 수업실연과 3차 면접을 볼 기회가 생겼다. 공립 1차에서 떨어진 것에 좌절감을 느낄, 속상해할 시간이 없었다. 여전히 사립 2차라는 한 번의 기회는 있었고,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다. 물론 많이 공정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사학 재단은 내정자가 암암리에 있다고 했다. 그래도 공사립 동시지원인 만큼, 1차를 임용고시 점수로 뽑았으니 당연히 기회는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또 내정자가 있어도 공사립 동시지원에서는 1차 필기 성적이 반영되는 만큼 내정자가 떨어지고 초임교사나 다른 교사가 붙기도 한다는 기분 좋은 사례들도 있었다. 기간제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힘들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하는 시간도 아까웠다. 후회는 없다며 3:1 경쟁률이면, 해볼 만 하다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쉼 없이 달렸다.    


   *


   첫날은 수업실연, 두 번째 날이 면접 날이었다. 특성화고인 만큼 나의 경쟁자들은 남자 선생님이 많았다. 수업 지도안 작성을 앞두고 평가관을 기다리며 앉아있는데, 3명 중 나를 제외한 두 분의 남자 선생님도 들어오셨다. 연륜이 있어 보였다. 여기서 1차로 현실자각 타임. 연륜이 있어 보인다는 말은 기간제 경험이 많다는 뜻일 테고, 경험 없는 나는 한참 뒤진 채로 시작하는 것이었다. 불안감이 몰려왔지만 그래도 나는 신규로서 풋풋함과 열정이 있다고, 나는 누구보다 수업실연에 자신이 있다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런데 웬걸, 두 분이 아주 편하게 담소를 나누는 것이 아닌가. 이게 뭐지 싶었다. 여러 곳의 학교에서 교직 생활하시면서 알게 된 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설마 내가 생각하는 최악은 아니겠지 라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뽑기를 통해 수업 실연을 할 주제를 선택했다. 내가 고른 주제는 조선 전기의 사회 모습이었다. 많고 많은 주제 중에 조선 전기의 사회 모습이라니. 이렇게 재미도 없고 강의식 수업이 뻔한 주제라니. 순간적으로 갈피를 잃었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기간제(인력풀) 연수에서 배웠던 다양한 수업 기법들을 떠올렸다. 주셨던 유의사항 종이를 접어 보석맵을 만들고, 학생중심 수업으로 진행했다. 결과는 대만족. 퇴장을 도와주셨던 나이 지긋한 선생님께서 경험이 많냐고, 아주 잘한다고 칭찬도 해주셨다. 경력이 있으신 선생님들 사이에서 이 정도면 선방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콧방귀 뀌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


   1차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와 대기실에서 들었던 선생님 두 분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지원 학교 홈페이지에서 발견한 역사 선생님 두 분의 이름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 나는 들러리였구나.’ 


   내정자 1명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두 분의 기간제 선생님 중 한 분을 정교사로 뽑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기간제 교사 한 분이어도 그 분을 제치고 될까 말까 한 마당에 두 사람 모두 기간제 교사였다니. 티오 한 명이 내 자리 일리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런 조짐은 늘 있었지만, 내가 모른 척 못 본척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사립이라도 필기점수 최저 점수를 공개하는데, 지원학교는 점수를 공개하지 않았고, ‘수업 참 잘하시네요’라고 하셨던 그 선생님의 말씀은 위로의 의미였던 게 분명했다. 그래도 여전히 기회는 있을 거라고 나가면서 들었던 ‘수업 잘하시네요. 수업 많이 해보셨어요?’라는 말에 위안을 삼고 삼아 다음 날의 면접을 준비했다. 


   면접 당일, 자리에 앉은 내가 가장 먼저 들은 말은 어떠한 질문도 아닌, ‘여기서 떨어지더라도 선생님의 자격이 모자라거나 미흡해서가 아닌....’이었다. 순간 분노의 감정이 치솟았다. 결코 아니었으면 했던, 내가 들러리가 맞음을 확신한 순간이었다. 공정하고, 공평한 자리가 아니었다. 경험도 전혀 없는 초임교사지만 적어도 있는 그대로 봐주기를 바랐지만 그것은 헛된 망상이고, 꿈이었다. ‘경험 없어도 어디 학교에서 됐대’ 라고 하는 소식들은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었다. 이제야 맞이한 리얼 현실 자각 타임. 공립 1차에서 0.2점 차로 떨어진 사실에,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자리가 가능성이 1도 없었다는 사실에 그제야 뼈아프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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