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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 Sep 11. 2020

"나는 생일을 잃어버렸어"

그래도 견딜 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유독 생일 만큼은 쓸쓸했다

   요즘 자가격리라는 단어가 유행인듯하다. 나 역시 바이러스와 관련 없이, 종종 자가격리라는 단어를 쓴다. 생각해보면 나의 수험기간이 곧 자가격리 기간이었다. 어찌 되었던 자발적으로 타인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고립되어 격리되었던 슬프고도 암울했던 기간이었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 2015년은 최고 바쁘게 보냈던 한 해였다. 모교의 한 연구소에서 보조 연구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교회 청년부 임원이자 대외활동 동아리 부대표이기도 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던 때였다. 게다가 대학 졸업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슬슬 임용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여러 역할을 맡으면서 챙겨야 할 사람들도 많았고, 해야 할 일도 많았다. 그것을 반증해준 것이 바로 생일이었다. 나서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더더욱 인싸가 아니었음에도 살면서 그렇게 많은 축하를 받아본 적이 없었고, 그렇게 많은 기프티콘들도 받아본 적 없었다. 참 생각해보면 요즘 인싸의 기준은 생일 기프티콘 개수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라던데. 그때 그 시절에는 인싸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모든 역할로부터 해방된 2016년, 드디어 진짜로 정말로 임고생이되었다. 여러 개의 단톡방에서 대화가 줄기 시작했고, 더 이상 내가 있을 곳도 아니었다. 나는 백수이자 임고생이었고, 변한 환경에 하루라도 빨리 적응해야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독서실에 틀어박혀 휴대폰 전원을 꺼 사물함에 넣어두고 자물쇠를 채워버렸다. 이렇게 노력해도 공부 이외 일들은 왜 그렇게 다 재미있는지, 여전히 내가 속했던 세상에, 친구들에게,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관심이 가는 임용에 반쯤 걸친 임고생이었다. 공부한 지 1년이 될 무렵 임고생으로서 첫 생일을 맞이했다. 여전히 내 생일을 기억해주는 친구들과 지인들로부터 축하 메시지와 기프티콘을 받았다. 그간 나도 베풀었던 것들이 있었기에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연한 것들이었다. 내가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하고, 내가 축하받는 것은 당연한 것들이니 말이다. 초수생의 얄팍한 자신감으로 시험이 겨우 한 달밖에 남지 않았지만, 가족과 남자친구와 시간을 보낼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첫 시험에서 떨어지고 두 번째 시험을 준비하면서 현실을 직시했다. 서서히 세상에 관심을 멀리하고, 가까운 사이가 아닌 지인들과의 연락도 뜸해지기 시작했다. 아마 이때쯤 카톡을 지웠던 것 같다. 이 해 나는 SNS 생일 알림을 꺼두었다. 나에게 생일은 사치였다. 이때부터 나는 내 생일을 잃어버렸다. 나 역시 이전만큼이나 지인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없었고, 지인들의 생일을 축하해줄 수 없었다. 이렇게 내가 먼저 생일을 축하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질수록 나 역시 누군가에게 생일 축하를 받을 생각은 일찌감치 지워버렸다.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공부 해야 하니까, 임고생이라서, 이런저런 핑계로 SNS 알림에 뜨는 지인들의 생일을 못 본 척 하기도 했다.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으로 공부하는 입장에서 내가 마실 커피값도 아까워 안 마시는데, 누군가에게 기프티콘을 보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생일 축하한다고 메시지만 남기기에도 찝찝해질 나이가 되었다. 


  그렇게 2017년, 2018년, 2019년. 점차 내 생일을 아는 이도, 축하해주는 이도 없어졌다. 가족과 남자친구, 친한 친구들 몇몇. 숫자를 세어보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열 손가락은 무슨 한 손가락으로도 충분해졌다. 어떤 해에는 가족조차 깜빡하고 지나칠 뻔도 했다. 차라리 잊으셨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생일에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는데, 감사한 마음조차 사치였던 그때는 죄송한 마음뿐이라 차라리 잊혀졌으면, 눈 뜨면 다음 날이었으면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생일이 시험 코 앞두고 있었던지라 밥 한 끼 먹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점심과 저녁 사이 한 끼만 먹던 때라 점심과 저녁 사이의 애매한 시간에 겨우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갔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생일 기분은 느끼지도 못한 채 남자친구와 먹는 식사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이렇게 매번 내 생일에는 꼭 밥을 함께 먹어주었던 남자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생일을 잃어버렸어."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들과 멀어질수록, 그래도 다 견딜 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유독 생일 만큼은 쓸쓸했다. 생각해보면 생일 파티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선물을 받고 싶은 것도 아니고, 축하를 많이 받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계속된 좌절로 더 이상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을 때, 그냥 내가 태어났다는 것을 온전히 감사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아무 생각 없이,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밥을 먹고 싶었다. 나도 친구들에게 마음 편히 축하를 해주고, 기프티콘을 쏴주고, 또 때로는 축하를 받고 싶었다. 그냥 그렇게 평범하게 생일을 맞이하고 싶었다.            


   p.s

   물론 축하해주는 몇 없는 사람들 속에서 친구들의, 지인들의 축하 메시지와 선물들은 지금도 선명히 기억할 정도로 열 배, 백 배 더 고마웠다. 11시에 집에 돌아와 동생이 준비한 케이크에 겨우 촛불 불고 와인 한잔 마시며 찍은 가족사진도 너무나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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