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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 Oct 08. 2020

꿈을 찾는 아이들에게 해줄 단골 이야기 소재가 생겼다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이들은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공부를 시작하고 이런저런 생각과 고민이 많아지는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친구나 동기들의 취업 소식이 들릴 때였다. 한명 한명의 취업 소식이나 합격 소식들로 제 갈 길로 떠나가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축하만큼이나 나의 불확실한 현재와 미래와 명확히 대비되어 두 배 세 배의 고민과 생각으로 돌아왔다. 누군가의 합격 소식과 취업 소식은 나의 현실을 온전히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내가 바른길로 가고 있는 건지, 잘 살고 있는건건지, 이 길이 내 길이 맞는지. 수도 없는 물음이 내 머릿속을 뒤덮었다.      


   이런 생각들이 나를 잡아먹기 시작할 때 나는 자연히 두 친구를 떠올렸다. 친구 A는 딱 십 년 된 같은 과 친구이다. 스무 살 때부터 A는 예사롭지 않았다. 캘리그라피가 유행하기 전이었음에도 멋스러운 글씨체와 명곡 ‘다시 사랑한다면’을 A만큼 잘 부르는 사람도 없었다. 학보에 실린 A의 글은 아직도 기억날 만큼 뛰어났다. 전공이 역사인 만큼 공무원을 지망하는 동기들이 많았지만 이 친구만큼은 다른 길을 갈 것이라고 예상했던 터라 누구보다 미래가 궁금한 친구였다. 다재다능한 만큼 후에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어떤 진로로 나아갈지 지켜보게 되었다. 기자가 되어도 좋을 것 같았고, 글을 써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A는 대학을 졸업하고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기 시작하더니 영화 아카데미를 통해 영화의 길을 들어섰다. 그렇게 첫 영화를 찍고 우리를 상영회에 초대했다. 친구가 찍은 영화를 보다니. 나에게 이렇게 멋있는 친구가 있다니. 짧은 단편 영화였지만 친구 A를 닮은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이렇게 찍은 영화는 충주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이렇게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나아가는 이 친구를 떠올리면 힘이 났다. 자주 보지는 못하더라도 매번 만날 때마다 A만의 방법으로, A만의 스타일대로 업그레이드를 하는 친구가 멋있고 자랑스러웠다.


   대외활동 동아리를 하면서 만난 친구 B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친구였다. 대학생이었던 B는 부산의 한 대학에서 대기업 취업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잘나가는 전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고등학생 때부터 했던 것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었다. 대학에 와서도 토익책을 펼쳐 영어를 공부하기보다, 전공 학점을 따는 것보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블로그를 운영했다. 이공계열 전공자가 매일 하는 것이 글쓰기라니. 이미 고등학생 때 인터넷 소설을 써 e-book을 낸 작가님이기도 했다. 결국 그는 작가라는 꿈과 대기업 취업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편집자의 길로 들어섰다. 출판사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되지 못했다. 자신을 받아줄 수 있는 출판사에서 배우고 배워나가며 그릇을 더 키우더니 마침내 첫 책을 편집하고, 편집자 일을 시작한 지 2년째 되던 해 자신이 쓴 책까지 출판했다. 정말 꿈꾸는 대로 흘러가는 친구였다.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는 전공을 두고도 대기업과 비교도 안 되는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술 한잔에 글 소재 하나를 찾는 친구였다.      


   친구들이 공무원으로 대기업 입사로, 각자의 방향과 속도로 한 명씩 자기 자리를 찾아갈 때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이 두 친구의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마음속으로 친구 A와 B를 응원하는 것이 나 역시 내가 걷는 이 길이 잘못된 방향이 아닌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이들은 여느 청춘들만큼이나 불확실한 현재와 미래를 살면서도 현실과 삶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끝이 없는 ‘준비’와 ‘과정’ 속에 있었다. 연출자로서 글을 쓰고 영화 한 편을 만들어내기까지의 과정과 주어진 책을 편집하고 출판하고 자신의 글을 써 내려가는 과정들이 적어도 폄하되어서도 무시되어서도 안 될 ‘준비’와 ‘과정’ 그 자체였다. 1년에 한 번밖에 없는 이 시험을 준비하면서 쉼 없이 공부했던 과정들은 불합격이라는 결과로 나 스스로에게 폄하되었고, 무시되기도 했다. 이렇게 합격, 불합격이라는 결과밖에 남지 않은 나에게 두 친구가 살아가는 길은 결과보다 공부하는 ‘과정’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게 했고, 다른 쓸데없는 생각과 고민을 지워버릴 수 있게 했다. 더 나아가 내가 교사가 되더라도 합격이라는 결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합격 이후의 내 삶도 그런 과정들의 연속으로 대하겠다고 생각하게 했다. 공부만 한 지 4년 6개월 끝이 안 보이는 수험생활을 끝내고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 과정들을 살아내며 열심히 업그레이드 중인 이 두 친구를 응원한다.       


   이들은 지금까지도 그랬듯이 앞으로의 교사 생활에서 꿈을 찾는 아이들에게 해줄 단골 이야기 소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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