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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 Nov 06. 2020

선생님이라 불렸지만, 퇴근하면 여전히 수험생이었다

일과 공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기간제 면접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합격 연락을 받았다. 다시 학교로 와줄 수 있겠냐는 말씀에 당연히 버스를 바꾸어탔다. 가는 동안 설렘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제야말로 꿈꾸던 그 자리에 가는 것이었지만 단 한 번도 그런 경험이 없는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공부와 일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면접관으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셨던 한 선생님께서 다시 맞아주셨고, 짧은 이야기를 나누며 인수인계를 받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노트를 펼쳤다. 사람 인생 한 치 앞을 모른다고, 1년 동안 공부만 할 것 같던 예상과 다르게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걷게 되었다. 수많은 생각과 걱정을 누르고 앞으로의 공부 계획과 4개월 동안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일과 공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모든 게 처음인 나는 자연스러워질 시간과 준비과정이 필요했다. 또 공부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든 만큼 효과적인 공부 방법을 세워야 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노트에 쓴 문장은 ‘욕심부리지 말자’였다. 일과 공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로다 다 놓칠 수는 없었다. 이렇게 4개월간의 시험대에 올랐다. 


   이 시간은 내 인생과 미래의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딱 두 가지를 목표로 삼았다. 첫 번재, 진정으로 교사가 되고 싶은지 생각해보기. 두 번째,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여전히 나는 교사를 꿈꾸는 수헝생이었고 계속된 임용 실패로 단순히 목표가 되어버린 교사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맞는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반면 이 시간을 통해 어떠한 결론이 나더라도 서른을 앞두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앞으로의 실패를 줄여나가야만 했다.


   진정으로 교사가 되고 싶은지 생각하고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아이들과 내가 만족할만한 수업을 하고 아이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돌아보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전부였다. 조금이라도 기억에 오래 남는 수업이 되길 바라며 이런저런 수업을 준비하고, 수업 종 치기 2분 전에 교실로 들어가 아이들에게 한 마디라도 더 걸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겨우 4개월이지만 기존 선생님의 업무에 폐를 끼칠 수 없었고, 초짜인 나를 뽑아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교무부장님과 동부서 선생님들께 이것저것 물어보며 하나씩 맡은 일을 해나갔다. 어느새 조금은 더 선생님다워졌고, 선생님이라고 불릴 때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퇴근하면 나는 여전히 수험생이었다. 아니, 사실 학교에서도 마음만은 수험생에 더 가까웠다. 때로 교무실이 어색하기도 했다. 공강 시간에 업무와 수업 준비를 모두 끝낸 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책 한 장이라도 더 보려고 전공 서적을 펼치기도 했다. 야자 감독을 할 때는 제일 소란스러운 반에 들어가 함께 책을 보기도 했다. 근무 학교가 집에서 한 시간 남짓 걸렸기 때문에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퇴근 후 학교 근처 스터디카페에서 공부하고 밤늦게 집으로 향하기도 했다, 간혹 아이들 시험 기간과 겹쳐 스터디카페에서 학생들을 만날 때도 있었다. ‘선생님 저 어제 공부하면서 선생님 봤어요’라는 말에 ‘약속 시각이 남아서 수업 준비하고 있었어’라고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나의 출퇴근 1001번 좌석버스는 나의 제3의 독서실이자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학교에서는 선생님으로 학교 밖에서는 수험생으로 4개월을 보냈다.   


   그렇게 처음 선생님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지만 나에게는 단연 특별한 순간들이었다. 아이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찾아올 때, 수업 중 아이들과 교감이 이루어진 그 찰나의 순간 소름이 돋을 때, 맡겨진 일들을 무사히 잘 처리했을 때 그 순간순간이 더욱이 이 길을 확신하게 했다. 다른 이들보다는 조금 늦게 찾아온 이 소중한 기억을 감사히 간직한 채 8월. 드디어 계약 기간이 끝났다. 이제야말로 온전히 다시 임용 수험생으로 컴백했다. 값진 4개월이었지만 공부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이제야말로 마음이 조급해지고 걱정과 두려움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래도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느끼지 못할 나의 선택에 대한 확신을 공부한 지 4년 만에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이야말로 시험까지 남은 4개월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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