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대하는 마음가짐
최근 브런치에 북유럽 여행기를 올리면서 많은 사람과 생각을 공유하고 글을 쓰는 기쁨이 부쩍 늘었다. 사실 브런치 작가로 등록된 건 꽤 오래전이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엔 책을 출간하고 나서야 뒤늦게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모양새가 되었다(그 때문에 저자 프로필에도 브런치 주소가 빠졌다).
아쉽지만 뭐, 괜찮다. ‘진작에 쓸걸. 왜 이제야 시작했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루하루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게 그저 재밌을 따름이다. 브런치는 글을 쓰고 읽는 행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라는 게 무엇보다 매력적인 데다, 고료도 없고 광고도 붙지 않는다는 점이 내겐 오히려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을 떨치게 만든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버킷 리스트였던 북유럽 장기 여행을 떠나게 된 과정을 쓴 <우리 가족이 왜 북유럽으로 떠났느냐면>에 이어서 그 동안 줄곧 여행 가이드북만 만들던 내가 첫 에세이를 출간하며 가졌던 소회를 담담하게 이야기해보려 한다.
대부분 책이 그렇지만 가이드북은 글을 ‘잘 써야 한다’라는 고민을 넘어서 ‘잘 팔려야 한다’는 목적성이 뒤따른다. 잘 팔리는 가이드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내가 아닌 대중이 어떤 정보를 가장 필요로 하는지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저마다 다른 여행의 목적과 취향도 놓치지 않고 고려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오지 여행을 좋아한다고 해도 오지 여행 가이드북을 쓰기보다는 유럽 여행 가이드북을 쓰는 게 더 현실적인 선택이 될 것이고, 지하철이나 버스만 타도 되는 지역이라도 택시나 렌터카 정보까지 넣어야 하며, 숙소는 호스텔부터 고급 리조트 호텔까지 골고루 소개하는 것이 일반적인 가이드북의 성질이다. 내가 파리에서 루브르 박물관이 별로였다고 ‘비추. 가지마셈.’이라고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물론 루브르 박물관은 멋진 곳이죠.)
과거의 나는 타인의 요구를 잘 살피고 내 의견을 배제하는 데 선수였던 덕분에 가이드북을 꽤 능숙하게 잘 만들어왔다. 반면에 내 이야기를 쓰는 데는 ‘써야 할 이유’보다는 ‘쓰지 않아도 될, 혹은 쓰면 안 될 이유’만 머릿속에서 끝없이 생산했다. 나는 유명하지 않으니까, 글을 잘못 써서 누군가에게 비난받기 싫으니까 등등 내 이야기를 쓰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만들려면 얼마든지 있었다.
북유럽 여행을 다녀와서 처음으로 가이드북 대신 에세이를 썼다. 일적인 부담을 떨치고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여행, 꼭 지키고 싶은 소중한 몇 가지를 가슴에 간직하고 떠난 가족과의 북유럽 여행은 취재를 겸해 다녀왔던 여행들과 달랐다. 복잡하고 정형화된 관광지를 벗어나 북유럽의 자연, 카페, 마트, 도서관, 놀이터, 소도시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현지인 틈에 섞여 다녔던 두 달 간의 여행은 유쾌한 일(때론 곤란한 일)도 예전보다 몇 배로 많았다. 북유럽 사람들은 무뚝뚝하고 정이 없다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혹독한 기후 속에서 작은 것에 만족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소중히 생각하는 북유럽 사람들은 사랑스러운 나의 딸처럼 무척 따뜻하고 다정했다.
마음을 비우고 떠난 길 위에서 나는 비로소 하고 싶은 말이 많아졌다. 에세이를 쓰는 작업은 대중의 요구에 일일이 응답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떨쳐버리고 솔직한 나를 표현하는 과정이었다. 누군가에게 굳이 어떤 장소를 추천하거나 강요하지도, 내 감정을 감추는 일을 할 필요도 없이, 스스로 ‘진심에 다가가는’ 일이었다.
출간 후에 몇몇 독자들에게서 ‘소설보다 재밌었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다음 장 넘기기가 설렜다’ 같은 평을 들었을 때 나는 가이드북으로 여행 베스트셀러 1위를 했을 때보다 뛸 뜻이 기뻤다. 내가 처음으로 오롯이 내 감정을 표현한 이야기가 독자에게도 통했다는 걸 알게된 것은 무엇보다 값진 경험이었다.
모든 나쁜 일에는 좋은 면도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당연히 이 나이에 암 따위 걸리지 않았더라면 좋았겠지만, 아픈 뒤에 얻게 된 것이 참 많다. 아직 창창하게 남은 인생(그렇다고 믿는다)을 어떻게 사는 게 좋을까.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미리하는 걱정은 그만 내려놓고, 내가 진정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그 일이 내게 끼칠 '긍정적인 영향'을 찾아보는 데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이러쿵저러쿵 단점 찾기에만 몰두했던 예전의 나와 이별하고 나니, 요즘엔 가이드북을 만드는 일도 장점이 훨씬 크게보여서 예전보다 일하는 게 즐겁다. 꼭 비행기를 타고 떠나지 않더라도, 모니터 앞에 앉아 세계 곳곳의 여행지 정보를 조사하고 예쁜 사진과 그림들을 책에 담는 과정은 역시 언제라도 여행하는 듯 설렌다. 인터넷엔 여행 정보가 넘쳐나고 스마트폰만 갖고 떠나면 책 없이도 쉽게 여행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이 한 권에 여행지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며 떠나는 설렘으로 가득 찬 가슴팍에 꼭 끌어안을 수 있는 건 오직 책뿐이라고 믿는다.
결국에 문제는 가이드북를 쓰는 게 좋으냐, 에세이를 쓰는 게 좋으냐(혹은 종이책이냐, 전자책이냐, 브런치냐...)가 아니다. 모든 건 내 마음가짐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마지막으로 출간된 책 내용과는 별도로, 브런치에 북유럽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글을 번외로 펼쳐놓는 것도 재미있다. 얼마전에 북유럽 호텔 이야기인 북유럽 호텔에는 ‘이게’ 있다 vs 없다를 썼는데, 앞으론 이밖에도 북유럽 관련 추천 소설이나 영화 등 다양한 정보도 올릴 계획이다.
두근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