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서 온다는 말이 있다. 진짜 그러한가는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는데 책을 통한 간접경험이 나에게는 더 많았던 것 같다. 어릴 적에 만났던 동화 속 주인공들은 시련 끝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란 결말에 이르렀지만, 조금 더 크고 나서 알게 된 다른 주인공들은 보잘것없는 인생에서 작은 행운을 손에 쥐다가 결국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곤 했다. 보봐리 부인의 엠마와 안나 카레니나의 안나, 이방인의 뫼르소 등이 그들이다. 얼마 전에 읽은 <이제야 보이네, 김창완>에서도 비슷한 일화가 나왔다. 마을의 소소한 일을 도맡았던 최 기사는 성실하고 순박한 청년이었다. 그런 청년이 동네 미용사와 눈이 맞아 결혼을 하고 알콩달콩 살림을 시작했을 무렵, 아이였던 김작가는 결혼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싸우지 않는 부부, 맞지 않는 아내, 화내지 않은 남편을 처음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일하는 중에 사고를 당한 최기사가 목숨을 잃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런 일화를 찾아보면 끝도 없다. 큰 애를 낳고 4년간 둘째 소식이 없었던 올케언니가 임신했을 때 모두가 기뻐했지만, 곧바로 찾아온 입덧이 출산일까지 계속되면서 언니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야 했다. 첫사랑을 다시 만나 결혼에 골인한 S언니는 남편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결혼 생활을 십수 년간 유지하는 중이다. 성실히 일한 댓가로 유명 백화점에 입점된 신사복 매장의 점장으로 발령받은 A는 갖은 스트레스와 압박으로 2년 만에 퇴사하고 말았다. 꿈꿔왔던 며느리를 얻어 그지없이 행복했던 B여사는 결혼 2년 만에 큰 사고로 입원한 아들을 마주해야 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 인생이 주는 커다란 행운에 마냥 행복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나? 간혹 샛별처럼 하루아침에 떠서 온 국민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았던 스타가 구설수에 휘말리거나 과거가 폭로되거나, 뜻하지 않은 사고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곤두박질치는 일도 여러 번 보아왔다. 달콤한 사과를 주면서 그 속에 독을 숨겨둔 마녀처럼 인생은 우리를 심하게 휘두르곤 한다. 해서, 가끔 너무 큰 행운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작고 소소한 행복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면 인생은 고통마저도 작고 소소하게 줄지 모르니까. 그러나 이 모든 생각은 무질서한 자연 속에 일정한 법칙이나 패턴을 찾아내고 싶은 인간의 본능일 뿐이다. 삶은 아무것도 주지 않을 때가 더 많으며, 충분히 불행 속에 있는데도 더 큰 불행을 연달아 주면서 이럴 다할 기쁨이나 행운 따위는 생각지도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반대로 누군가에겐 분에 넘치는 행운을 폭죽처럼 터트려 주고도 모자라 평생을 안락한 의자나 침대에 누워 편안한 여생을 보내도록 허락한다. 착하게 살았다거나 성실하게 일했다거나 마음이 관대하거나 정의롭거나와는 전혀 상관없이 공평하지 않은 상과 벌로 사람을 절망에 빠지게 하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가 하는 고민을 끝도 없이 하게 만든다.
그런 강력한 인생이란 놈에게 휘둘리지 않을 방법은 오직 자기만의 루틴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것만큼은 반드시 한다는 것 하나 정도는 끝까지 가지고 가는 신념 말이다. 무한도전 때부터 몇 십 년을 정상의 자리에 앉아 있는 유재석 씨를 생각해 본다. 그도 사람인데 어찌 매일 즐겁기만 하겠는가. 그라고 슬럼프가 없었을까? 인기에 가려 보이지 않는 그 사람만의 고군분투는 언제나 진행 중일 테다. 그가 지켜내는 그만의 루틴이 보인다. 과하지 않고 늘 겸손할 것! 그를 직접 만나보진 못했지만 시청자의 눈으로도 그것이 보인다. 책을 통해 만나보는 작가들 역시 그렇다. 자기만의 루틴을 가진 사람들은 오래간다. 혹은 자기만의 대피소가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는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일로 그러한 루틴의 벽을 세우는 중이다. 완벽하지도 단단하지도 않지만 가늘고 길게 그 루틴을 지켜내는 중이다. 그렇다고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된 건 아니지만, 인생이 나를 휘두르려고 할 때 전보다는 더 의연하게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책과 글이라는 피난처가 없을 때보다는 말이다.
하지만 끝까지 너무 큰 행운은 바라지 않을 테다. 그런 행운을 감당해 낼 자신이 없다. 그 이후로 찾아올 마음의 짐도 마주하고 싶지 않다. 한국인 평균신장에 한참 못 미치는 작은 키처럼 늘 작고 소소한 것을 구하며 살아야지. 해서, 부엌에서 사용하는 용품들은 작고 앙증맞은 것들이 많다. 남편은 손에 안 맞다고 투덜거리지만, 작은 뒤집게와 국자, 작은 컵들과 냄비, 작은 양념통들 작은 화분과 작은 소파 같은 것들이 내 눈을 채우고 있다. 작은 세상에서 작은 것들과 작고 단출한 것들을 품으며 살겠다.
당신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