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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꼭 그렇게 힘들어야 해?

by 쓰는 사람 효주


사실 식구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아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도 아니며, 모든 기억을 공유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식구가 주는 애틋함을 말하려 할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은, 이 모든 삶의 국면들을 함께 매만지며, 상처를 공유하며 나아갔던 순간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가 지금, 책상 앞에 앉아 계신다, 한강>


작가님의 아버지는 매일 새벽 4시부터 8시까지 글을 썼다고 한다. 잠이 부족했던 아버지를 볼 때마다 작가님은 피곤해 보이신다 생각했고, " 인생이 꼭 저렇게 힘들어야 하는 건가?라는 막연한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작가님은 아마도 그 막연한 의문을 해소했을 테다. 고통의 끝, 인생의 벼랑, 삶의 끝자락에 놓인 주인공들이 그녀의 소설 속에 숱하게 등장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나 역시 아버지가 있었다. 그분의 삶이 끝나가던 시간을 함께 했고 극한의 고통으로 몸부림쳤던 모습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진 못했다. 죽음의 고통이 무엇인지 알기엔 일곱 살은 너무 어린 나이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아픈 몸으로 1년 가까이 살았다. 날이 갈수록 커지는 암덩어리에 아버지는 속수무책이었다. 죽음을 기다리던 아버지의 1년은 어땠을까? 삐쩍 마른 몸으로 안방에 누워 힘겹게 잠이 들고, 갑자기 막히는 숨구멍을 뚫기 위해 거친 기침을 온 힘으로 내뱉었겠지. 어느 날엔 하루 종일 나를 옆에 두고 싶어 했다. 죽음의 순간 혼자 남겨질까 봐 두려우셨을지도 모른다. 철없던 나는 햇살이 가득한 마당으로 들판으로 나가 친구들과 마음껏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 아버지를 아픔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야속하기만 했다. 매일 아프기만 한 아버지가 귀찮았지도 모르겠다. 마침내 아버지의 숨이 끊어지자 아버지의 고통도 끝이 났다. 꼭 그렇게 힘들어야 했던 삶이, 생명이 사라져 버린 거다.


하루 종일 작은 상다리 앞에 앉아 노란 형광등 조명을 켜고 납땜부업을 하던 큰언니의 뒷모습.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쉴 틈 없이 납을 녹여 코드를 선과 연결 시킨다. 몇 시간이고 등을 구부린 채, 하루 정해진 물량을 처리했다. 선 하나당 10원이었나 50원이었나? 아마 그것보다 더 낮았을 거다. 학교가 끝나면 언니집을 자주 찾아갔지만, 언니는 일하느라 나를 볼 틈이 없었다. 끝도 없는 납땜을 몇 년이나 했던 언니는 작년에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서울 아가씨 같았던 큰언니.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둘째 언니가 울고 있었다.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하루 종일 울었던 게 분명해 보이는 표정과 자세.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더니 이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 표정을 짓고 삶을 한탄한다. 억장이 무너질 것 같은 얼굴과 몸짓 쏟아지는 눈물과 콧물에 나도 울컥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우주에 가득 찬 슬픔들이 죄다 언니에게 왔던 걸까? 무엇이 그렇게 억울하고 슬펐을까? 기대고 싶고 의지하고 싶은 어른은 없고 책임져야 할 동생들만 가득한 게 원망스러웠을지도 모른다. 끝까지 왜 울었는지 말해주지 않았던 언니, 얼마 전 다시 물으니 기억을 못 한다. 스무 살 중반이었으니 40년도 넘은 일이다. 나는 기억하지만 언니는 잊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던 깊은 울음과 슬픔이 궁금했던 나는 오래도록 그 울음의 답을 구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화가 난 오빠가 막내언니를 심하게 때렸던 일. 셋째 언니가 형부에게 맞았던 일. 등에 난 종기가 터져 피고름이 묻은 옷을 그대로 입고 다음번 학생집으로 향했던 나의 발걸음등. 그런데도 나는 인생이 꼭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 건가? 하는 물음을 던져보지 못했다. 사는 게 힘드네. 죽겠네. 란 혼잣말만 수없이 내뱉었을 뿐. 인생은 꼭 힘들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라 대답하겠다. 비가 내리면 땅이 질퍽거리듯이. 인생이 시작되었다면 꼭 그리 힘들 수밖에 없다. 선택의 여지도 없다. 도망가는 길도 없다. 그렇지 않고선 인생의 다른 것도 올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하다. 아프게 죽어갔던 아버지, 납땜으로 생계를 유지했던 큰언니의 굽은 등, 커다란 수건이 다 젖도록 하루 종일 울었던 둘째 언니까지. 내가 본 인생들은 그렇게 힘들었다. 그러고 나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여전히 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 같다.


힘들다는 걸 아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다. 살아있는 것에 감사할 수 있다면, 인생이 그렇게 꼭 힘들어야 하는 질문에 자기만의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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