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고 있는 책은 김금희 작가의 단편 소설집과 한강 작가의 여러 작품을 묶어 놓은 <디에센셜>, 최인훈 작가의 전집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같은 거다. 몇 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 잠깐 멈추고 고개를 들어 생각해 본다. 10년 전이면 2015년이니까 그것보다 조금 더 가서 2008년에 도달해 본다. 그때부터 꽤 오랜 시간 나는 치유에 관련된 자기 계발서나 심리학 관련 도서를 찾아 읽었다. 힘든 삶에서 나를 구원해 줄 문장 같은 걸 자꾸 찾아야 했기에. 좋았던 문장들은 사진으로 찍어 카카오 스토리에 올리곤 했다. 잠깐 그중 몇 개를 가져와 본다.
그랬다. 그 시절 나는 왜 그렇게 힘들고 아팠을까? 이렇게 지나고 나면 잊힐 일들인데도 당시엔 삶이 팍팍하기만 했다. 오로지 내가 책임지고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 버거웠는데 그 일들을 잘 해내지 않으면 엉망이 될 것 같아 안간힘을 쓰며 하루하루 살았다. 그땐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생길 때마다 책을 읽었다. 더 많이라는 욕심 같은 거 없이. 더 잘 쓰고 싶다는 열망 같은 것 없이. 내 삶의 한 귀퉁이를 다른 것으로 채우고 싶은 마음에 읽고 썼는데 당시 읽었던 책이며 짧게 기록해 두었던 문장들을 다시 보니 아팠었구나 한다. 혼자 참 많이 애쓰며 견뎠구나 했다.
시간이 흘러 준 덕분에 이제 내가 읽는 책들은 그때와 달라졌다. 도서관 열람실에 들어가 만나는 새 책 코너에 가장 먼저 진열된 건 철학서나 심리학 관련 자기 계발서들이다. 매번 그곳을 서성이며 읽을 책을 골랐던 내가 한 발 두 발 움직여 다음번 그 다음번 칸으로 이동한다. 새로 나온 에세이나 인기가 조금 시들해진 유명작가의 산문집, 혹은 그들이 쓴 소설 같은 걸 찾아다닌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작가의 책을 기웃거리다 마음에 드는 제목을 골라 훌터보는 즐겨움을 누려보기도 하면서.
그림을 더 잘 보고 싶은 마음으로 빌려온 <마흔을 위한 치유의 미술관>을 읽으며 단단해진 나를 만났다. 고통 속에서도 자기만의 그림을 그리다간 화가들을 만나는 중에 감동하며 좋은 인생이란 자기만의 빛깔을 찾는 일이었구나 하는 깨달음도 챙겼다. 한데 그 안에 가득했던 상처를 치유해 주는 말에는 전처럼 마음이 동하진 않았다. ' 그래 맞아. 그렇지.'란 작은 속삭임으로 끝나는 담담한 마음에 나도 살짝 놀랐다. 어느새 이렇게 튼튼해 진건가? 참 많이 치유되었구나. 다행이다. 그리고 작은 미소.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지금이 나에게 가장 좋은 시간인 것 같다. 돈이 많아서도 아니고 아무 사건 사고 없이 평화로운 일상이 흘러가서도 아니다. 남편과는 자주 투탁거리고, 아이들과는 공부문제로 날이 서기도 하고, 사람에게 배신당하거나 상처받아 속상한 일도 여전하다. 남들 다 간다는 해외여행도 아직 못 가봤고, 여권도 없다. 빨간 날엔 더 바쁘고 여유롭게 이 삼일 쉬고 싶은 소망도 여전히 불가능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가장 좋은 이유는 나답게 살고 있는 것 같아서다. 4년 전부터 시작한 매일 읽기와 쓰기를 통해 내가 얻어낸 가장 큰 결과가 바로 이거다 싶다. 나다운 삶을 살게 된 것. 2년 전엔 방통대 국문학과 3학년 편입으로 학업도 진행 중이다. 나를 잃어버린 것 같았던 삶에서 나를 찾아내는 삶으로 돌아섰다는 게 행복의 가장 큰 이유라면 믿겠는가?
불우했던 화가 고흐와 뭉크의 삶이 우리 눈에는 불행 그 자체로 보일지라도 실상 그들은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자기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렸으니까. 자기 모습으로 살았으니까. 마냥 불행했다 여길 수 없지 않을까?
우리는 자신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너그럽게 대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모리조 역시 자신에게 너그러워야 했다. 나만이 아는 주관적인 약점과 결점을 타인이 알 수 없듯 내가 얼마나 애를 썼는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또한 나만 안다. 그러니 스스로 격려하고 자축하며, 나의 노력을 내가 기억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을 공정하게 대하는 방법이다.(마흔을 위한 치유의 미술관, 윤현희, 184페이지)
내가 원하는 나로 살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앞으로도 나는 순간순간 흔들릴게 분명하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사실 한 가지는 그동안 내가 애써왔다는 거다. 나의 약점과 결점을 모두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나를 위로하고 다시 일어서게 했다는 것. 모두가 인정할만한 어떤 것을 하나도 이루지 못했지만, 스스로를 격려하고 자축해 주고 싶었다. 4년간 읽고 쓰기 위해 내가 한 노력들을 기억해 주고 싶다. 그것을 나를 공정하게 대하는 방법이란 작가의 말에 힘을 얻으며.
잘했다. 애썼다. 그만하면 됐네. 더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를 담담하게 써본다. 쑥스러움 때문에 지우고 싶은 충동을 누르며.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격려해 본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역시 애썼고, 잘했고, 더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미 당신은 당신답게 사는 삶을 선택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