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림을 보는 마음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그림은 자국을 남긴다.

by 쓰는 사람 효주

누구보다도 세상을 사랑하고 사람을 소중히 여겼던 빈 센트 반 고흐. 그러나 선한 그의 마음은 그를 구해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던 천재. 그의 삶을 불행으로 결론 내려야 할까? 찬란하게 피어오르다 무심히 꺼져버리는 불꽃이라 여겨야 할까? 인생은 결론이 없고, 결과도 없고, 마무리도 없다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지는 나이가 되고 보니 그의 삶이 달라 보인다. 불행한 삶이 아닌 온전한 삶으로, 자기 것을 다 꺼내서 쓴 열정적인 삶으로.


반 고흐는 애쓰고 노력한 흔적을 안고 사는 사람이 우월한 가치를 가진 사람이라고 믿었다. 또한 손으로 그린다는 의미에서 그림이라는 수작업보다 더 견실한 노동은 없으며,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들은 잘될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마흔을 위한 치유의 미술관, 윤현희>


자기 귀를 자른 화가로 알려진 고흐를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만났을 땐, 그냥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 혹은 지나치게 자기 생각에 빠져 있었던 화가로만 보였다. 교과서에 실린 그의 그림은 그저 노랗고 화려한 장식용 서양화였을 뿐이다. 그로부터 삼십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른 눈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그림 안의 그의 짙은 마음이 보인다. 아름다운 것을 선한 마음으로 그려 넣었다는 고흐의 열정적인 표정과 손놀림도 느껴진다. 진심을 담지 않고 그린 그림이 있었을까? 세상은 그의 그림을 자본의 가치로 샘 하려 들지만 그것들은 돈이 될 수 없는 어떤 것. 이를테면 고흐의 영혼, 사랑, 진실처럼 귀하디 귀한 것을 담고 있다.


며칠 전 도서관의 서가 안을 걸으며 찬찬히 책들과 눈을 마주쳐 봤다. 수백 그루의 나무들 속에 파묻힌 숲 속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 글을 썼던 작가들의 초롱초롱한 눈과 손이 도서관 서가라는 조용하고 빽빽한 장소에 모여있는 것 같아 조금 긴장이 되기도 했다. 한 사람 한 사람 책을 쓰며 들였던 노력과 그들이 쓰기를 멈추고 고통스럽게 다음번 문장을 떠올리기까지 걸린 시간들을 생각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책을 썼다는 것과 이렇게나 많은 책들이 서로의 손과 눈에 들어갔다가 나왔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수백 년 전의 사람이 쓴 책들은 또 어떠한가. 그들과 나를 갈라놓는 시간적 공간적 거리를 뚫고 기어이 우리가 만날 수 있다는 것. 독서를 통해 마련된 특별한 시공간 안에서 이뤄지는 만남은 기적이 된다.


그림이 글보다 더 기적인 이유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 만남이 성사되지 않기 때문이다. 30년 전 교과서에서 만났던 반 고흐의 그림은 나에게 아무런 이야기를 남겨주지 못했지만, 지금 그의 그림은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것을 자꾸만 마음 안에 쌓아둔다. 나는 마치 아름다운 장면, 눈물이 날 것 같은 풍경, 고요하게 빛나는 윤슬을 보는 마음으로 그의 그림을 본다. 그러면 그는 다시 내 마음에 새로운 그림들을 그려 놓는다. 그림을 본다는 건 아마도 그렇게 마음속에 남겨지는 그림을 쌓는 일이 아닐까 한다.


세상이 어제와 같고, 그제와도 비슷하고 일주일 전, 일 년 전과 다를 게 없이 흘러가는 것 같아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운 건 없어 보여도 그렇지 않구나 한다. 늙어가는 눈은 시력을 잃는 것이 아니라 없었던 새로운 시력을 얻는 일이기도 하다. 반 고흐의 그림이 보이고, 침묵하고 있는 남편의 마음이 보이고, 억울해서 울고 있는 둘째의 속 깊은 사정이 보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손과 발은 어떨까? 레시피 없이는 김치찌개도 제대로 못 끓였던 손은 웬만한 요리에 능숙해지고, 그동안 한 번도 쓰지 못했던 문장을 써내기도 한다. 달고 짜고 매운 것만 맛있게 여겼던 입맛은 요리가 빚어내는 깊은 맛을 알게 되고, 재료들이 가진 본연의 맛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그러니 나이 들고 늙어 가는 것의 실제를 들여다보면 새로워지고 깊어지는 것과 닮았다.


고흐가 그린 <밤의 카페테라스>을 본다. 인간의 삶이 이토록 아름다웠나 싶다. 그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밤하늘의 아름다운 별을 오래도록 보고 싶다. 경이로운 풍경에 저절로 나오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 마음은 평화로워지고 고흐가 전하려고 했던 이야기들이 내 안에서 조용히 자리를 잡는 것 같다. 그게 뭔지 잘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그건 그가 그림에 넣어둔 선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이었다. 그의 말처럼 그는 잘된 사람이다. 모두에게 사랑을 주자 했던 소망을 이뤘으니까. 진심을 다해서 사는 사람은 죽어도 죽지 않는 거구나 한다. 극한의 가난 속에서도 사랑과 선의 가치를 잃고 싶지 않았던 그의 마음이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이젠 보인다. 그런 고흐를 사랑하고 싶다.



keyword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