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채우는 생각

by 쓰는 사람 효주

책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활자들이 눈으로 다가와 금세 사라져 버린다.

이번 문장 그리고 다음번 문장이 쉼 없이 다가오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한다.

그동안 오백 권에 근접하는 책을 읽어왔다. 천권을 향한 여정인데, 누구는 삼 년 만에 천권을 읽고 책을 쓰기도 했더라. 나도 그의 속도를 따라하고 싶어 야심차게 도전했는데, 오백 권을 다 채우려면 오 년을 꽉 채워야 하는 상황이다. 일 년에 백 권씩 읽어도 천권을 채우려면 십 년이 걸린다. 그 십 년을 목표로 삼았다. 나의 속도가 그렇다면 그 속도로 가는 게 맞는 거니까. 누구를 따라 하다가는 가다가 포기하기 쉽겠지.



날씨

이곳에 200년 만에 내릴까 말까 하는 물폭탄이 쏟아졌다. 지난밤 번개는 쉬지 않고 만들어져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꽂았다. 번쩍이는 불빛이 계속되고 창문을 아무리 꽉 닫아도 번개소리는 작아지지 않았다. 결국 새벽 두 시가 넘어 깼고 실시간 뉴스를 확인해 보았다.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고, 하천이 범람 위기에 있다고, 산사태 위험이 있다고.. 경고성 멘트들이 난무했다. 고요하길 바라는 이 밤. 멀리서 천둥이 달려오고 있는 듯하다. 쿵쿵 울리는 거인의 발자국처럼 무언가 다가오고 있다.



며느리

오십이 되니, 며느리 역할에서 졸업하고 싶다는 욕심이 커진다. 결혼 후 십구 년간 "네. 알겠어요"란 말을 훨씬 많이 하고 살았는데. 이젠 "아니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져 혹시 내가 나쁜 며느리인가 하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나 아들을 독립시키지 않고 손안에 두고 함께하고 싶어 하는 두 분에게서 나라도 떨어져 나오지 않는다면? 나는 끝끝내 "내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아이들

휴교령 때문에 아이들이 쉬었다. 소식을 전했던 아침엔 둘이서 손을 맞잡고 환호성을 질렀다. 고3이나 중2나 정신연령에선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어떨 때는 둘이 친구 사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큰애가 모나지 않고 선한 성격이라 그런 줄 알았는데, 동생과 죽이 잘 맞으니 큰애는 형 역할보다는 친구 자리에 서게 되는 것 같다. 서로에게 평생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준다면, 아이들에겐 소중한 삶의 선물이겠지.



사마귀

왼쪽 네 번째 손가락 위에 난 사마귀가 보기 흉하다. 몇 년 전부터 생기더니 없어지질 않는다. 그 때문인가 손톱 모양도 조금 휘었다. 약국에 들러 사마귀약을 사 온다는 걸 자꾸만 잊어버린다. 감기약은 잘도 사 오면서 정작 사마귀약을 잊다니, 아마도 나는 이 사마귀를 오래도록 내 손가락 위에 살게 내 벼려두고 싶나 보다. "네가 원하는 만큼 살다가렴.."



사주

사주 관련 영상을 보며 공부 중인데 보면 볼수록 사주가 자연과학의 원리란 생각이 든다. 봄이 되어야 태어나는 개나리처럼. 여름의 장미처럼, 자기 삶이 꽃피는 시기가 언제인지 알려주는 사주. 어느 계절 무엇으로 태어났는지가 중요하고, 내가 잘 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오행을 갖추었는가가 성공의 열쇠였다. 봄을 맞아야 피어나는 새싹처럼. 우리도 우리가 빛날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다만 누구는 그것을 많이 가지고 태어나고 누구는 혹독한 바위 위에서 싹을 틔워야 하는 소나무처럼 어려움을 안고 태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예쁘고 화려한 개나리, 장미라고 해도 한 시절이 지나면 지고 말듯이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태어나도 누구나 어려운 시절을 만났다. 사주가 미신이 아니라 자연과학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태아난 년과 월과 일과 시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