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앉아 글을 쓴다.
읽어주는 이가 적은 글이라서 더 좋다.
설거지를 하며 이런저런 글감을 떠올려 봤다. 음식물 거름망을 수세미로 깨끗이 닦아냈다. 주방 세제를 가득 묻힌 수세미로 개수대 여기저기를 꼼꼼하게 청소했다. 여름이라 그런지 금방 곰팡이가 끼었다. 매일 닦고 문지르는데도 곰팡이는 어김없이 자기가 기거할 공간을 만들어 낸다. 항균력 99.9%로의 세제로 곧 제거될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죽음이 예견된 삶으로 자꾸만 찾아드는 생명처럼.
큰애가 한 번쯤 가보고 싶다고 해서 서둘러 일을 마무리하고 충남대를 다녀왔다. 여느 때처럼 하늘은 맑았고 구름은 희고 투명했지만, 창문을 열면 덥고 텁텁한 바람이 불었다. 햇살은 따가워 몇 분이라도 걸으면 목에 땀이 고이고 숨이 거칠어졌다. 그래도 대학은 넓었다. 어디가 끝이고 어디가 시작인지 모를 공간들이 가득했다. 경상대학과 대학 본부를 구경하고 도서관에 들어셨을 때, 이곳 학생이 아니라면 들어갈 수 없는 막이 쳐져 있었고 아쉬운 대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카페처럼 예쁘게 꾸며진 도서관 내부를 구경했다.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무언가를 읽고 쓰는 학생들. 그 모습을 컴퓨터 화면의 이미지처럼 저장해 두고 자리를 떴다. 큰애는 "엄마, 업적 하나 남겼네" 한다. "뭐? 업적? 무슨 업적? 도서관 구경한 거?" "아니, 여기 와서 내 흔적을 남겼잖아. 아까 화장실 들린 것." "아... 왜 더 큰걸 좀 싸지 그랬어?" "그것까진..." "그럼 그건 너가 여기 합격하고 나서 남기면 되겠네." 실없는 농담 따먹기를 하며 차로 돌아왔고, 우리는 짧은 여행이라도 다녀온 것처럼 집으로 차를 몰았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하늘은 여전히 맑고 투명했다.
큰애에게 줄 해독 주스를 만들고 있다. 두 달이 조금 넘었는데 아이에게 큰 변화가 느껴지진 않는다. '이렇게 해서 나았어요'하는 모든 경우들이 무색하게도 아이의 아토피는 끈질기게 아이를 괴롭힌다. 아침이면 소파 밑으로 우수수 떨어진 각질가루를 청소기로 빨아들인다. 아이 몸은 하루에도 수십 번 열을 올렸다 내렸다 하니 피부는 쉴 틈 없이 각질을 쏟아낸다. 적절한 운동과 물 마시기 그리고 해독주스 두 잔. 우리가 이번 방학 때 빠지지 않고 하는 일들이다. 이제 곧 대학생이 될 아들이 자신이 가진 이 병을 어떻게 이겨낼지 걱정이다. 나의 깊고 진한 한숨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건만 나는 그것을 자꾸만 내뱉는다.
아침에 눈을 뜨기가 쉽지 않았다. 잠든 나를 깨우는 신랑의 손길 때문에 억지로 일어나지만, 아직도 더 자야 할 잠이 남아 있는 것 같아 몸은 괴로웠다. 영원히 잠들 날이 온다면, 더 이상 깨워줄 남편도 각질이 우수수 떨어지는 큰애도, 우리 집 막내도 나를 깨우지 못하겠지. 오십이 되니 자꾸만 죽음이 떠오른다. 오직 삶만 생각했던 시간들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다. 아직 남아 있는 나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