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쓰고 싶은 밤.

by 쓰는 사람 효주

글이 쓰고 싶은 밤.


어떤 걸 써야 할지 모르지만, 그냥 뭐라도 쓰고 싶어 시작한 문장. 이 문장을 시작으로 마지막 문장은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다. 모르는 곳으로 떠나는 여행처럼 글쓰기는 낯선 것들을 혹은 익숙한 것들을 가져와 이 빈 화면을 빽빽하게 채운다. 브런치에 올라오는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잘 읽는 편은 아닌데, 가끔 스치는 인연으로 만나는 글을 보면 친절하게 다듬어진 문장과 읽기 쉽게 짜인 구성이 보인다. '이렇게 써야 인기 있는 글이 되는 건가'싶어 따라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도, 이상하게 나는 여백을 너무 많이 주는 게 탐탁지 않다. 긴 문장을 빽빽하게 채워야지만 개운한 맛이 난다. 어릴 적 숙제로 그려가야 했던 그림엔 언제나 해와 구름 하늘을 넣어 두었고, 조금 쓸쓸해 보이는 전원주택과 그 앞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꽃과 나무 그리고 이름 모를 풀들을 전부 초록색으로 채워 넣곤 했다. 텅 빈 곳이 있다면 새라도 그려 넣거나 그것도 부족해 보인다면 바탕색을 푸르게 칠해 스케치북의 여백을 지워나갔다. 그런 습관은 글쓰기에서도 이어진다. 인간이란 이토록 무언가를 바꾸지 못한다.


방송대 공부가 끝난 지 2개월째, 다른 배움의 열정이 나를 재촉한다. 이렇게 허비할 시간이 없다고 말이다. 숭례문학당에서 오는 메일을 꼼꼼히 확인해 보고 참여할만한 강좌를 찾아봤다. 그중 20분간 외국인과 프리토킹하기를 목표로 하는 영어공부 모임이 눈에 띄었다. 국문과 졸업을 마치면 다음으론 영어를 공부해야겠어 다짐했던 일도 있었고, 영어야 평생의 숙제 같은 공부이고. 미루고 미뤘던 공부를 다시 한번 도전해 보고픈 열망은 언제나 마음 한 곳에 남아 있었으니까. 그런데 방법을 찾지 못했다.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망막하고,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영어영문과로 편입해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 하나? 잠시 고민도 했지만 그건 겁이 났고 자신도 없다. 그렇다면 이 모임이 가장 최적의 선택이 아닐까? 그런데 저기 못난 게으름이란 녀석이 말을 걸어온다. ' 거 해서 뭐 하게? 밥이 나와 쌀이 나와. 게다가 뭐 써먹을 대도 없는데'라고 자꾸만 내 의지를 꺾어 논다. ' 그렇담 오십이라는 새로운 시간을 그냥 미디어나 보고 책만 읽다가 보내란 말이냐?'라는 반박을 내놓기도 하지만, 왠지 힘이 없어 보인다. 설득력도 떨어지고 말이다. 아마 이 여름이 끝나고 나면 난 뭐든 하고 있을 거다. 이 글을 완성한 후 냉큼 그 모임에 참가신청서를 내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열심히 문장을 외우고 녹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나란 인간은 뭔가를 결정하는 것도 빠르고 결심하는 것도 빠르고 그걸 실천하는 것도 빠른 편이니까. 다만 지속력이 약하다는 거. 최악의 단점이다.


오늘 아침엔 자기감정을 언제나 두리뭉실하게 표현하는 큰애에게 한 마디 했다. "00아, 넌 왜 늘 ~인 것 같다. 약간 그래, 좋은 것 같기도 하고, 괜찮은 것 같아.라고 말해? 니 감정을 조금 명확하게 표현할 순 없니?라고. 그랬더니 뒷좌석에 앉아 있던 녀석이 " 난 남자다." 한다. 명확한 표현이랍시고 한 거다. " 그런 거 말고 감정표현말이야~~" 아이가 이럴 때마다 나를 탓한다. 내가 너무 강압적이었어. 통제적이었던 거야. 애를 너무 잡았어. 하면서. 그렇지만 그건 큰애의 성격일 뿐이란 확실한 증거가 존재한다. 바로 둘째 녀석. 고 녀석은 싫다 좋다가 얼마나 분명한지. 그래서 사실 둘째에게 휘둘릴 때가 많은데 특히 주문할 메뉴를 정할 때 그렇다. " 오늘 난 육개장이 땡겨. 짜장면이나 먹을까?, 돈가스가 너무 먹고 싶었어"라고. 먹성이 좋은 큰애는 대부분 메뉴에 오케이다. 녀석이 자기 의견을 명확하게 표현할 때는 피시방 가서 게임할 때뿐이 아닐까. " 엄마 2시까지만 게임하다가 공부하러 갈게~'. 그런 건 시키지 않아도 참 잘해. 고3인데도 말이다.


더워야 여름답다 여겼다. 이쯤이야 여름이니까. 암. 그랬더니 여름이란 녀석이 너무 오랜 시간 고온다습한 공기를 내뿜고 떠날 생각을 안 한다. 지난주엔 아침마다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에 드뎌 가을이 오려나 기대했는데,.... 여름은 아마도 진을 빼고 또 빼고 더 이상 뺄 게 없을 때야 비로소 여길 뜰 것 같다. 그래 네가 만족할 때까지 한번 해봐. 기다려 줄게. 대신 내년엔 조금 더 늦게 와. 우리가 열심히 지구를 보호해 볼게. 쓰레기도 덜 버리고 고기도 덜 먹고. 똥도 덜 싸고, 여행도 덜 가고, 아휴 써보니 다 불가능한 일이네. 여름아! 미안해! 그냥 너가 하고 싶은 대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