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더미를 쌓아두는 재미

by 쓰는 사람 효주

도서관에 다녀왔다. 2주 안에 다 읽을지 못 읽을지 모를 양을 데려왔다. 쇼핑하듯 데려온 책을 식탁 위에 쌓아두고 사진을 찍는 일이 즐겁다. 맛있는 음식을 잔뜩 쌓아둔 기분이랄까. 저걸 한꺼번에 다 먹다가는 분명 배탈이 날거란 사실을 알면서도 왠지 다 먹고 싶은 마음 때문에 설레는 순간. 그거다.

아침 일찍 큰애를 데려다주고 도서관에 갔다. 전부터 커피 맛집이라 불리는 " 빈 플러스"에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시고 싶었는데 언제나 애매하게 지나치기만 했었다. 오늘은 주차 눈치 볼 차도 없고 오래 기다리게 만드는 손님도 없는 여유로운 아침시간인만큼 비상 깜빡이를 켜두고 신속하게 커피숍으로 들어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아침 8시인데도 부지런한 두 젊은 친구들은 커피숍 둥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아침부터 30도를 찍고 있는 불볕더위 속에서 웬 뜨거운 아메리카노냐! 라며 핏대를 올려 세울 분도 있겠지만, 날씨에 관계없이 언제나 나의 선택은 뜨거운 아메리카노다. '더죽뜨'(더워 죽어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란 줄임말이 존재하지 않는 걸 보면 나와 같은 인구는 별로 없는 게 분명해 보인다. 나온 커피를 받아 들고 차 안으로 들어왔는데, 훅.. 코 안으로 퍼지는 진한 커피 향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 이 향기 뭐지? 빨리 한 모금 마셔야겠어! 뜨거움에 즉사할 수도 있는 내 입천장은 떨었겠지만, 나는 기어이 후루룩하며 커피를 입안으로 넣었다. 고소한 원두향이 맛을 더 풍부하게 해 줬다. 얼른 더 마시고 싶어 서둘러 도서관을 향했다. 텅 빈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사온 커피를 홀짝였다. 불덩이 같은 태양이 내 차량 앞 유리를 강렬하게 데우는 걸 느끼면서도 향에 취한 나는 커피를 입안으로 넣어야 했다. " 와... 너무 깊어. 너무 풍부해!! 만족도 최상~" 이란 말은 입도 뻥긋하지 않았지만, 뇌에서는 자동적으로 이런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리곤 며칠 만에 이곳을 찾아 한 잔 할 나를 상상했다. 여긴 또 와야 해!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 꽤 오랜 시간 도서관 죽순이로 살아 봤기에 도서관은 늘 편안하다. 그때는 독서를 위해서라기보다는 공부 때문에 다녔었는데, 실제로 시험점수가 늘 좋지 않았던 걸 보면, 공부는 핑계고 엎드려 부족한 잠을 더 자거나 친구와의 돈독한 우정을 쌓기 위해 수시로 휴게실에 나와 수다를 떨었던 게 분명하다. 인천 부평구의 부평도서관을 주로 다녔는데, 당시엔 학교보다 더 교도소 같은 인테리어로 냉랭함이 지나쳤었는데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다. 더 나이가 들어 일을 손에 놓게 되면, 아마도 나는 도서관 죽순이로 되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거기만큼 재밌는 곳도 없고, 편안하게 시간을 때울 수 있는 곳도 드물기에. 그날을 고대하고 있다.


식탁 위엔 여전히 오늘 빌려온 책이 쌓여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걸 보면, 확실히 나란 인간이 책을 좋아하긴 하는 것 같다. 아직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모를 책들의 겉표지가 꽤나 이뻐 보인다. 외향을 중요시하는 한국인답게 디자인이 이쁘고 깔끔하다. 가끔 어떤 책은 표지가 다했네. 하기도 한다. 언젠가 내가 책을 낸다면, 나는 유럽처럼 좀 작고 재생용 종이로 만든 책을 내고 싶다. 튀고 싶지 않기도 하지만, 내용에 비해 표지만 화려한 책을 내고 싶지 않으므로. 내용과 표지가 조화롭게 어울리는 그런 책. 그렇게 되면, 독자들은 내용이 좀 부실해도 표지와 어울리는 그럴만한 책이군 할 테니.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부터 읽으려고 한다. 독서대에 꽂아 둔 책이 나를 부른다. 남은 시간은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야지. 사는 게 참 버겁다가도 이런 시간을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있으니 버틸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