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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이 있는 일상 May 20. 2023

보고 싶은 아몽에게

20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글을 쓴다.

아몽. 오랜만이야. 잘 지내고 있니? 우리 서로 못 본 지 20년이 넘었구나. 너와 마지막 통화를 했던 날, 그날이 진짜 마지막이 될 줄 우리는 서로 알고 있었을까? 4인방 모임에 나와서 네가 더 이상 이 모임에 나오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을 때, 나는 왜 너를 이해하려고 들지 않고 나에게 먼저 말해주지 않았다는 생각에 배심감에 휩싸여 너를 미워만 했을까? 왜 그토록 나는 어렸고, 너는 무심했을까? 그날 이후로 공기의 흐름이 바뀌고 구름의 움직임도 달라졌지. 내 삶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너란 사람이 사라져 버렸으니깐. 처음 몇달은 나는 계속 씩씩 거렸어.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 하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던 거야.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기만 했어. 도대체 왜 그런 거냐며 따지고 싶고 납득이 갈만한 이유가 설명이 되는 이유가 나는 너무나 필요했지. 너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그 결정을 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나에게 먼저 말하지 못한 마음은 또 어땠을지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하고 시간만 그렇게 흘러가고 말았어. 20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글을 쓴다.


모두가 대학에 합격하고 기뻐할 때, 너는 재수를 결정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잖아. 나는 네가 속상하지 않았으며 하는 마음에 꽤 신경을 썼던 것 같아. 그런데 그것조차도 내 이기심이 아니었을 까 싶다. 나는 너에게 잘해주면서 '나 이 정도야'하는 마음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 같아. 재수 이후 삼수까지 해야 했을 때 너는 무척 힘들어했잖아. 그래서 너를 위로한답시고 언니에게 생긴 자연농원(지금의 에버랜드) 자유이용권을 이용해 거기를 갔었지. 놀이 기구도 타고, 사진도 찍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사실 그건 다 언니가 해준 일이고 나는 고작 니 친구역할만 했을 뿐인데, 너를 위해 대단한 선심을 썼듯이 스스로 뿌듯해했었으니 도대체 내가 얼마나 어리숙했던 건지 모르겠다.


마지막 통화 이후로 육칠 년이 지난 후 너가 나 말고 다른 친구에게 연락을 해 만나자고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안도하기보다는 또다시 과거의 그 배심감을 데려와 마음속에 꼭꼭 눌러 넣었어. 어떻게 내가 아닌 다른 친구에게 연락할 수 있었던 건지. 내가 너에게 얼마나 잘했는데, 내가 너에게 얼마나 진실했는데 하면서, 나는 너를 만났다고 연락해 온 그 친구에게 울면서 화를 냈어.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나보다는 그 친구가 훨씬 연락하기 편했겠다 싶어. 그 친구는 어떤 일이든 소소하게 받아들이고 차분하게 표현하는 아이니깐 당연히 울며 불며 화를 냈던 나보다는 먼저 연락이 갔겠지. 그런데 나는 몰랐어. 어쩌면 내가 너에게 잘해줬다는 생각도 오만이었던 것 같아. 너가 원하지 않았던 친절까지 베풀었던 건 아닐까. 너는 바라지 않았는데 나 혼자 오지랖을 떨어댔던 건 아닐까. 그래서 너에게 남겨진 건 나의 친절과 위로가 아니라 지나친 간섭과 조언이 아니었을까. 20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글을 쓴다.


가끔 너를 생각해. 그 순하게 웃었던 웃음 아직도 기억한다. 몽실이처럼 짧게 자른 단발머리에 검은 피부, 너의 집에 놀러 간 날 너희 어머니가 손수 차려주셨던 돈가스 정식, 우리 둘이 팔짱 끼고 걸었던 교정, 영어의 벽을 허물자고 함께 다녔던 원어민 회화학원까지도 모두 다 기억하고 있어. 비록 지금까지도 너에게 연락할 방법은 없지만, 또 앞으로도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서로 진실했던 시간들은 여전히 나를 찾아오거든. 그래서 때때로 나는 행복해진다. 너란 친구가 내 곁에 있었다는 사실이 좋아서 말이야.


내 부족함 때문에 너를 놓친 것 같아 속상하고 괴로웠던 시간이 있었어. 너에게 화가 나고 서운해서 엉엉 울었던 시간도 있었고, 그런데 그 모든 감정들은 지나가고 남아 있는 건 그리움뿐이구나. 너가 무척이나 보고 싶다.


신이 단 한 번 너와의 만남을 다시 허락해 준다면 꼭 말하고 싶다.


" 아몽, 너무 보고 싶었어." 


그리고 꼭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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