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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존철학자 Sep 23. 2022

말싸움의 기술

2. 침묵 

침묵이라는 표현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수많은 빌런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들 중 가장 많이 보이는 유형 중의 하나는 상대의 신경을 자극하는 농담을 던진 다음 그 당황하는 반응을 조롱하며 즐기는 유형이다. 이런 반응에 대응하려 해 봤자 구차해지고 감정에 휩쓸린 자신을 마주할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상황을 주도하고 지배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데에 있다. 이 행동에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은 바로 침묵이다. 그들이 던진 미끼를 유유히 피해 가는 우아함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행동 지향적 성향을 지니기에 대게 이런 미끼에 걸려들지만 발끈함을 감추고 이를 사뿐히 지르밟음으로써 유연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나의 침묵에 상대는 당황하게 된다. 상대가 이런 말을 던지는 이유는 나의 사회성을 얕게 보기 때문이고 그 가설이 전복될 때 상대는 잠시간 할 말을 잃게 된다. 그리고 연이어 시답잖은 질문을 건네며 내가 못 들은 것인지 진짜 자신의 말이 무시당한 것인지를 증명하려 든다. 이때 우리는 이 시답잖은 질문에 성의껏 답하며 어쭙잖은 말을 더 이상 던지지 말라는 무언의 표식을 전할 수 있다. 그때 상대는 나의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알아차리며 나의 사회성을 재평가할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친한 척하며 앞선 자신의 말을 무마하기 위해 애를 쓸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간편히 심판자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     



 A : 철수 씨는 술을 왜 이렇게 못 마셔? 막 어렸을 때 술 먹고 진상 피워서 트라우마 있는 거 아니야?       


 B : (침묵)      


 A : 술을 최대한 마시면 얼마까지 마실 수 있어? 궁금해서 그래?      


 B : 반 병 정도 마실 수 있어요. (단호하게)     


 A : 아 그렇구나.. 아 난 철수 씨랑 술도 자주 마시면서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러지.      


 B : 술이야 제가 천천히 마시면 되고. 밥도 있고 커피도 있으니까요. 


 A : 그래 그건 그렇지..           

                    


 여기서 상사의 짓궂은 말에 발끈해 자신은 술 먹고 실수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식의 말을 했다가는 “철수 씨 당황했네. 역시 귀엽다니까.” 혹은 “농담한 것 가지고 왜 이리 진지하게 반응해.” 등의 답을 듣기 십상이다. 이럴 때는 그저 그 말을 흘려보내면 족하다. 나는 터무니없는 말에 반응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앞선 말에 “00 씨는 술 잘 드셔서 자랑스러우시겠어요.”, “요즘 그런 말 하면 사람들이 싫어할 텐데..”등의 날 선 반응을 던진다면 상대는 잠시 움츠러든 다음 상처 입은 자존심을 달래기 위해 더 날 선 공격을 퍼부을 가능성이 있기에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막기 위해 그저 침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존재함으로 그저 이들도 그중 하나구나 생각하고 감정을 아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에게 이런 유형의 무례한 말을 자주 던지는 사람들은 삶의 경험 속에서 필히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람에 패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도 그런 유형의 사람들 중 하나라는 점을 알리며 출혈 없이 상대에게 경각심만 불러일으킨다면 그들은 앞으로 무례한 언행을 거둘 가능성이 높다. 대화에 있어 침묵도 하나의 효과적인 의사 표현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예전에 직장 생활할 때 후배 직원이 “선배님은 가끔 말씀하실 때 컴퓨터 같아요. 어떻게 그렇게 할 말을 빨리빨리 해치우세요?” 후배 직원이 그 말을 한 이유는 내가 편했기 때문이지만 나는 이에 대해 조금은 무례하게 느껴졌다. 왜 나면 내가 후배의 입장일 때 선배는 어렵고 배워야 할 부분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런 후배의 말을 일삼지 않으며 그저 웃으며 침묵했을 뿐이다. 다음은 예상하다시피 후배가 나의 눈치를 보며 갑작스럽게 과하게 공손해졌다는 사실이다. 상대가 평소 행실이 바르나 잠깐 말실수를 했을 때도 그저 이를 못 본 척 눈감아준다면 그는 자정능력이 있기에 앞으로 더욱 조심하게 될 것이다. 따끔하게 혼내는 것도 좋지만 상황이 불편해질 수가 있기에 한 번의 실수쯤은 눈감아줄 필요도 있다. 그들에게도 일종의 퇴로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춘추 전국 시대의 사상가로 도가의 창시자로 전해지는 노자가 쓴 <도덕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누군가 너에게 해악을 끼치거든 앙갚음하려 들지 말고 강가에 고요히 앉아 강물을 바라보아라. 그럼 멀지 않아 그의 시체가 떠내려 올 것이다.’ 이는 누군가의 공격에 반응하지 않고 차분히 기다리면 내가 해야 할 몫을 응당히 세상이 해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인성 나쁜 누군가의 기운이 자신에게 끼친다면 이에 대한 방어막만 설치하면 되지 구태여 우리가 나서 이들의 인성을 교화하고 철저하게 몰락시킬 필요가 있겠는가. 우리의 인생은 짧고, 우리의 감정은 귀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많다. 내가 그러지 않더라도 그들의 잘못된 행동이 누적된다면 세상이 응당히 그에게 벌을 내릴 것이다. 불필요한 출혈은 피하고, 출혈이 필요하다면 그것이 내 피가 아닌 상대의 피가 되게 할 것. 그것이 바로 논쟁의 대원칙이다.     


 우리가 태어나서 말을 배우는 데 2년이라는 시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는 데 6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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