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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존철학자 Sep 24. 2022

말싸움의 기술

5. 룰을 만들기 

 <손자병법>에 따르면 명장들의 싸움은 티가 잘 나지 않으며 자연스럽다고 말한다. 치열한 전투 끝에 얻은 승리는 진정한 승리가 아니며 진정한 명장은 유리한 전장에서 이미 이길 조건을 다 갖추어놓고 싸우기에 그 공적이 두드러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사실 말싸움에서도 그렇다. 진정한 승리자는 촘촘한 논리로 상대를 박살 내는 사람이 아니라 유리한 전장에서 싸움을 벌여 별 힘을 들이지 않고 이기는 사람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로의 이기심 탓에 의견 조정이 필요할 때 일종의 룰을 제시하는 역할을 재빨리 선점하게 된다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주제를 제시하고 토론의 목적을 명확히 한다거나, 금기시되는 사항을 나열하는 식이다. 내가 원하는 사항이 좀 더 다수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고 판단되면 다수결의 방식을 제안해볼 수도 있다. 다수결에는 상대로 하여금 거부하기 힘들게 만드는 에너지가 있으니 말이다. 또한 토론의 내용을 정리하는 척 선택지를 제시해볼 수도 있다. 친구들과 여행지를 골라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산이 아닌 바다로 가고 싶다면 강릉과 양양이라는 선택지를 제시해놓고 투표를 진행해볼 수 있다.     

 

 사람들은 급작스럽게 선택지가 다가오면 그 선택지들 안에서만 고심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이 기술을 심리학 용어로 ‘더블 바인드(Double-Bind)’라 한다. 내가 호감 있는 상대에게 맥주를 한 잔 할지 커피를 한 잔 할지를 물으면 상대는 맥주와 커피 사이에서 고민할 것이다. 여기서 함정은 어쨌거나 선택을 한다면 자리를 갖는다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언가 해결책을 도출하기 위해 언쟁이 이어진다면 토론을 정리하는 척 세 가지 정도의 해결책을 나열하고, 그 속에는 내가 선호하는 해결책가 두 가지가 되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별 힘을 들이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결론에 도달할 확률을 높일 수 있게 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A :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목적이 이번 프로젝트에 어떤 업체를 선정하는 가잖아. 


 B/C : 그렇지. 


 A : 쟁점은 그간 프로젝트 성공 경험이 많은 업체를 선정하냐 아니면 축적된 레코드는 부족하지만 기획력 있는 참신한 신생 업체를 선정하냐인데 둘 다 장점이 뚜렷해서. 기획력이 뛰어난 업체는 ㄱ ㄴ ㄷ (선호정도가 있을 것 같고 안정적인 업체는 (비선호이 있는데 우리 투표로 한 번 정해볼까?


 위의 예에서 화자는 의도적으로 선호 업체의 개수를 늘려 놓아 자신이 선호하는 업체로 결론을 유도하고 있다. 텍스트로 읽어보았을 때 그 의도가 투명하게 보일지 몰라도 직접 말을 듣는 입장에서는 이에 대한 숨은 의도를 간파하기가 쉽지 않다. 다시 말해 기획력이 있는 업체의 개수가 더 많다고 따질 가능성이 적은 것이다. ‘ㄹ’ 업체가 명백히 선택지에 제시되어 있기에 반대 측의 의견도 반영되어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상대가 정말 눈치가 빠르다면 각 업체에 대해 브리핑하며 의도를 더 알기 어렵게 숨길 수도 있다. 


 이처럼 내가 선호하는 결론의 범위 안에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하게 되면 다수는 이 방식이 합리적이고, 민주적이라고 착각하기 쉽고 이러한 제안을 통해 좀 더 유리한 토론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당신이 정말 친구들과 여행을 가고 싶은 상황에서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유도하며 여행지의 장단점에 대해 언급한다면 친구들은 어쨌거나 여행을 가는 것에 동의한 상황에서 이야기를 이어가게 된다. 만약 논점 자체가 여행지 선정에 대한 토론으로 바뀌게 된다면 당신은 편히 그들의 이야기를 공감하며 들어주기만 하면 그만이다. 당신은 이미 여행에 갈 확률이 너무나도 높기 때문에. 언쟁에 앞서 룰을 정하고, 선택지를 제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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