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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존철학자 Sep 26. 2022

말싸움의 기술

7. 유치하게 만들기 

 많은 말싸움의 패턴들이 있지만 그중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패턴은 바로 이른바 “네가 먼저 했잖아” 유형이다. 선후 관계를 면밀히 따지며 상대가 갈등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패턴으로 접어들게 되면 서로가 고고학자가 되어 말싸움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게 된다. 말싸움이 이 패턴으로 접어들 조짐이 보이면 자진해서 패턴을 부수는 역할을 맡아보자. 그 역할 수행을 통해 우리는 상대를 유치한 사람으로 손쉽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유치해 보이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 ‘유치함’에 대한 방어기제는 생각보다 강력하다. 상대가 자신이 유치했다고 인지하는 순간 뜻 모를 수치심에 공격 의지는 곧 열기를 잃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상대를 유치함을 부각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논점 전환’이다. “그게 중요해?”, “이렇게 목소리 높일 필요가 있어?”라는 식으로 선후관계를 따지는 것의 무용성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A : 네가 먼저 세게 얘기하니까 나도 언성이 높아진 거잖아! 


 B : 내가내가 그랬어? (의아함을 드러내며)


 A : 그래! 내가 공모전 응모한다니까. 안 좋게 얘기했잖아! 


 B : 음.. 정말 그 이유 때문이야?


 A :....


 B : 그것뿐만 아니라 나도 계속 쌓인 거야! 


 A : 내가 어떤 의도로 말을 했든 간에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야.. 근데 난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어여하튼 지금이라도 나도 알게 되었으니 전후 관계 이야기해야 뭐 하겠어앞으로 서로 배려해보자


 B : 그래... 

  

 위의 대화를 상상해보면 누가 과연 유치해 보일까. 이처럼 전후관계를 다투는 와중에 갑작스럽게 논점을 전환시켜 순식간에 상대에 우위에 설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보이길 원하고 유치해 보이기를 꺼림으로. 사실 말싸움에 중요한 것은 명분이다. 그 명분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설계하는 기술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별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감정이 상해 언성이 높아지고 있을 때 “그게 정말 중요해? 나는 ‘앞으로’ 너랑 더 잘 지내기 위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라고 말하게 되면 상대는 어쩔 수 없이 나의 프레임에 이끌릴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이 역할을 ‘선점’하는 것에 달렸다. GPS처럼 유치함의 농도를 파악해 그 임계점을 넘어서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같은 현자로 빙의해 차분하게 논점을 재조정해보자. 그는 어쩔 수 없이 나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하튼"이라는 무기 하나를 가슴에 간직하며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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