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따뜻한 척 하기
말싸움의 상대 중 가장 강적은 논리가 통하지 않는 감정에 가득 찬 상대이다. 전략과 기술도 어느 정도 대화를 들을 용의가 있을 때 적용이 되기에 이들과 마주한다면 일단은 상대의 감정을 어느 정도 눌러줄 필요가 있다.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나는 1년에 두어 번 정도 엄마와 말싸움을 한다. 나의 엄마는 상당히 고집이 세고 감정에 치우치는 분이기에 나에겐 참 쉽지 않다. 이 과정들을 통해 나는 하나의 기술을 연마할 수 있었다. 바로 ‘따뜻한 척 하기’이다.
나의 말을 엄마가 귀담아들을 마음이 없는 것 같으면 대뜸 “엄마 밥은 먹었어?”, “요즘 아픈 데는 없고?” 등의 온기 가득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 기술을 통해 나는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왔다. 자신을 걱정해주는 말에 더 이상 성을 내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말싸움의 목적은 감정 소모를 최소화하고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는 것이기에 상대가 나에 대한 분노를 거둘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A : 야. 너는 항상 너 바쁜 척하면서 내가 하는 말 귓등으로 듣는 것 같아!
B : 음.. 그랬구나. 일단 너 밥은 먹었어? 요즘 석사 논문 준비하느라고 끼니도 제 때 못 챙기는 것 같아서. 우리 밥이라도 먹으면서 더 얘기해볼까?
A : 갑자기?
B : 응.. 너 요즘 얼굴이 까칠해진 것 같아서 좀 신경 쓰이더라고..
A : ...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이라는 저서에서 설득을 위해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에토스는 화자의 성격, 파토스는 감정적 요소, 로고스는 논리를 뜻하는데 때론 이 파토스가 다른 모든 것을 뛰어넘을 때가 있다. 감정이 성마른 상태에서는 모든 말이 거슬리게 들리지만 마음이 누그러진 상태에선 모든 말이 부드럽게 들리는 법이다. 사실 감정에 쉽게 휘둘리는 사람일수록 그 내성이 강하지 않기에 감정을 누르는 것도 어렵지 않다. 상황이 거북스러울수록 커피 한 잔, 밥 한 끼를 제안하며 감정이 누그러질 때를 기다려보자. 본격적인 얘기는 그때 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