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빅 웨이브
스타트업은 우리가 사는 현실의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가꾸고자 하는 미래를 부서질 듯한 몸으로 끌어안고 오롯이 현재를 태운다. 스타트업이 가꾸는 비즈니스는 현시점에서 우리가 가고자 하는 미래를 상징한다. 대다수는 거대한 미래를 품으려다 본인이 부서지고 만다. 어떤 이들은 그 상처를 봉합하지 못하고 무너져가고, 또 어떤 이는 붕대를 동여매고 다시금 그 큰 미래를 부서져라 끌어안는다. 그들은 현재를 산다. 실패조차도 미래의 일일 뿐이다. 그러다 기적처럼 자신의 품에 쏙 안길 미래를 끝끝내 품어내고야 만다. 그들을 우리는 혁신가라 부른다.
스타트업은 외면의 나약함과 내면의 강인함을 상징한다. 스타트업에 대해 전 세계 합의한 구체화된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한 가지 요건에 대해서는 합의했다. 바로 ‘나약함’이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교본 ‘린 스타트업’의 저자 에릭 리스는 스타트업을 이렇게 정의 내렸다. ‘극도로 불확실한 환경에서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기관’. 스타트업은 극도로 불확실해야 한다. 그래서 현재를 가꾸는 신설 법인들을 우리는 스타트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극도로 불확실하기 위해서는 허황된 미래를 품어야 한다. 존재하는 미래가 아닌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품어야 한다.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품기 위해서는, 아무도 걸어보지 못한 길을 걷기 위해서는 창업가의 확신과 신념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래서 스타트업은 새로움, 나약함, 강인함의 조화인 것이다.
스타트업은 나약하기에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벤처투자자들로부터 투자자금을 수혈받아야 하고, 정부의 지원과 출자금이 필요하다. 창업자들의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욕망, 정치인들의 포퓰리즘, 벤처투자자들의 수익에 대한 갈망이 버무려져 스타트업은 시대를 바꾼다. 스타트업은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바꾸어야 한다.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기업은 스타트업이 아니다. 2010년까지만 해도 국내 산업계는 전통 제조업이 주도하고 있었다. 나약한 욕망이 무언가를 바꾸기에는 세상이 너무 단단하고 컸다. 그러던 2009년 아이폰이 처음 출시되면서 세상이 바뀌었다. 2010년부터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앱 비즈니스라는 새로운 사업 영역이 등장했다. 전통 대기업들에게도 나약한 청년들에도 모두가 처음 가본 시장이었다. 모두가 처음 본 시장이었기에 해볼 만했다. 그렇게 쿠팡이 나왔고, 배달의 민족이 나왔고, 야놀자가 나왔고, 직방이 나왔다. 그들은 세상을 바꿨다. 세상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스타트업도 세상을 바꿀 수 있구나 인식이 바뀌고 투자가 쏟아졌다. 이들의 평가 가치는 1조 원을 넘겼고 2010년대 후반부터 ‘유니콘’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새 스타트업은 산업의 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며 비주류에서 주류가 되었다. 내면에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그들은 어느새 강인한 외면을 갖춰 또 다른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선순환의 고리를 구축하게 되었다.
출처 :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연구 과제 보고서
위 자료는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가 국내 언론의 트래픽을 분석한 자료로 2010년을 기점으로 ‘스타트업’이라는 용어가 번져가는 양태를 보여준다. 2018년 후 이미 대중화된 뒤로 관련 트래픽은 점진적 하향 추세에 접어들었다. 2013년 창업한 쿠팡은 2014년 5월 10조 4400억 원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국내 첫 유니콘에 등극했고, 2018년에는 우아한 형제들(배달의 민족), 비라리퍼블리카(토스)가 각 5조 8,000억 원, 2조 5500억 원으로 연달아 유니콘에 등극하며 ‘유니콘’이라는 단어 자체도 빠른 속도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다음 해 연이어 위메프와 야놀자, 무신사도 유니콘에 등극하게 된다. 이들 모두는 모바일을 기반으로 성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뒤 시대의 변화는 스타트업들에게 또 다른 전장을 마련해주었다. 메타버스와 블록체인이 그것이다. 그리고 핑크퐁과 아기 상어 IP를 전 세계에 전파시킨 스마트 스터디는 콘텐츠 기업 최초로 유니콘에 등극했다. 더 나아가 쿠팡, 토스, 야놀자 또한 평가금액 10조 원을 넘기며 데카콘에 올랐고, 뒤이어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 나무 또한 이에 등극하게 되었다. 특히 주목할만한 점은 두나무의 2021년 영업이익은 약 3조 2000원으로 네이버와 카카오 두 회사의 영업이익(1조 9224억 원)을 합한 것보다 많았다는 점이다. 영업이익 창출 능력의 영속성에 관해서는 이견이 갈리지만 1990년대 웹을 기반으로 성장한 스타트업의 효시 격인 네이버와 모바일의 최강자 카카오의 합산 영업이익보다 많은 돈은 벌어들인 것은 분명 시대가 변했고, 새로운 거대한 전장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같은 맥락으로 모바일 게임사 컴투스의 공동창업자 이영일 대표가 이끄는 해긴은 2021년 4월 플라이 투게더라는 메타버스 게임을 출시했고, 출시 1년이 되지 않아 글로벌 이용자 1억 명을 넘기며 최단기간 유니콘의 반열에 올라섰다.
유약하지만 강한 심장으로 빚어낸 스타트업들은 마침내 산업계의 주류가 되었다. 다만 고무적인 것은 커머스, 모빌리티, 클라우드 등 기존 영역에서도 아직 혁신의 여지가 무궁무진하게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 혁신의 공백은 시대의 젊은 지성들의 가슴을 뛰게 할 만큼 또 그들을 무모하게 만들 만큼 풍족하다. 2018년부터 ‘유니콘’이라는 단어가 대중화되었던 것처럼 혁신과 유동성을 먹이 삼아 곧 ‘데카콘’이라는 단어 또한 스며들 듯 친숙하게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스타트업의 시대적 역할은 헤게모니를 파괴하는 것이다. 스타트업이 기존 헤게모니를 파괴하며 새로운 헤게모니를 형성하고, 수 년뒤 또 다른 스타트업이 그 헤게모니를 비트는 식에 과정은 우리의 숨이 다할 때까지 영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어느새 스타트업이 산업계의 상위 포식자가 되었지만 또 다른 누군가를 이를 먹이 삼으며 산업 생태계 전체가 더욱 역동적으로 발전해나갈 것이다. 현 인류가 갈망하는 미래의 이상은 불만족을 좀먹고 끊임없이 펼쳐져 마침내는 우주까지 닿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