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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끝날 무렵, 문자가 하나 왔다.
괜찮냐고, 날이 좀 따뜻해졌는데 햇볕이라도 쬐어 보라고.
나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해하려 할수록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 정도 인연이 아니었는데.
환대를 베푼 그분은, 내가 망가지도록 일한 그곳에서 두어번 본 사이였다. 업무적인 얘기 말고 밥, 술, 차 등을 함께하며 인간적인 얘기를 나눈 적도 없다. 아주 작은 무엇도, 하다 못해 사은품같은 이익을 드린 적도 없다. 오히려 미팅을 마치며 책을 선물받았다.
몸 상태를 깨닫고, 더이상 일할 수 없게 되었음을 말씀드린 적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의 소식을 전해 들으셨을 것이다. 마무리하던 마지막 주에 그분과 인사를 나눴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기억이 확실치 않다.
기억은 온전한 것이 아니다. 법정에서 증언한 증인의 기억이 잘못된 것으로 판별 나는 경우는 많다. 일부러 위증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애초에 인간의 기억력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공백을 메우려는 인간의 노력은 기억을 ‘생성’하게 된다.
다른 정보들을 조합해서 만들기 때문에, 파괴적인 생각으로 가득한 사람은 실제보다 나쁘게 기억하곤 한다. 건강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최악의 잿더미에서도 좋은 요소를 건져낸다. 디테일은 다를지라도, 따뜻한 톤으로 윤색되어 있는 당시 기억을 보니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 살아 있구나. 건강해졌구나.
민들레 씨 하나가 날아다니다 아스팔트 아래 심겨 꽃을 피우듯, 통신망을 타고 날아온 문자 하나에 담긴 작은 선의가 내 마음에 심겼다.
여전히 낮밤이 바뀐 상태였다. 밤을 꼴딱 새며 게임하다 날이 밝아 잠든다. 자리에 누웠다 일어나면 점심은 훌쩍 넘어 있다. 어떨 때는 오후 4시가 넘어 있었다.
아직 추운 봄 초입의 4시는 해가 끝물인 시간대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집 밖을 나서 햇볕을 쬐기 시작했다. 남아있는 햇볕에라도 가까이 가기 시작했다. 5분이라도. 1분이라도.
집 뒤편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공원 벤치엔 할머니들이 모여 계시곤 했다. 사람이 없는 벤치를 찾아 매일 그곳으로 갔다. 아주 조금이지만, 햇볕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는 비타민D에 대해 전혀 몰랐다. 몸에서 만들어낼 수 없는 영양소가 있는지도 몰랐다. 비타민D는 피부에 햇볕을 쬘 때 합성된다. 모자라면 여러 안 좋은 점이 있는데 무엇보다 수면 효율이 떨어진다.
햇볕을 쬠으로써 생체시계가 제 감각을 찾는 것은 물론, 비타민 D가 조금이나마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몸은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소화만 좀 안 되도 우리 성격은 많이 나빠지지 않는가? 햇볕을 쬐고 있노라면, 고장 난 무언가가 고쳐지는 감각이 일었다.
마음에도 곰팡이가 핀다. 정신에도 곰팡이가 핀다. 맑은 공기와 따스한 햇살 아래 물러나지 않을 곰팡이는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과 정신일지라도, 깃들어 거하는 곳은 몸이다.
인간이 영혼이라 부르는 것은 동물적 본질을 벗어날지 몰라도, 몸은 그 자체다. 몸은 물질적 존재, 유기체다.
그때까지의 나는 물리적인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관념의 세계, 형이상학적 세계에 살았다. 그런 내가 좋은 음식을 먹기 시작하고, 오랫동안 끊었던 햇볕을 쬐면서, 물리적 환경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이런 것들을 너무 오랫동안 무시하며 살았다.
햇볕은 비타민D에, 생체시계에, 호르몬에, 그리하여 내 몸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죽어가던 뇌에 심폐소생술을 가한 것은 햇볕이었다.
최근 넷플릭스 <D.P>에서 이런 대사를 들었다.
"사람이 죽을 때 제일 많이 보는게 천장이래요."
맞는 말이다. 하늘 보고 있으면 죽기 힘들다. 하늘은 바라만 봐도 살 힘을 준다. 죽음에 가까운 사람은 천장만 보게 마련이고, 생명에 가까운 사람은 하늘을 마주하게 마련이다. 예
상치 못한 문자 하나에 담겨 있던 온기가 햇볕까지 나아갈 마중물이 되었다. 햇살 맞으러 나가는게 일과가 되다 보니, 하늘의 얼굴을 피할 수 없어졌다.
잠깐이라도, 하늘이 내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로서는 나비효과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비를 보내주신, 그 시절의 은인이 되어주신 그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