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5/8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8,000보 걸었니?”
하루에 8,000보는 걸어야 한다. 만보를 걸어야 한다는 말은 만보기를 팔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한다.
한창 뛰면서 살 뺄때 두 시간씩 걷고 뛰었다. 그래서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했다. 최대한 많이 걷는게 좋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도수치료 받던 중, 치료사님이 너무 많이 걷지 말라고 했다. 한 시간 정도만 걸으라고 했다.
전문가의 말을 무시했다. 말 안 듣고 족적근막염에 걸려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무조건 많이 걷고 뛴다고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발을 이루는 뼈와 근육, 관절도 소모품인데 너무 혹사시키면 안 된다. 뒤늦게 아치 깔창을 선물해주며 발한테 잘해주는 중이다. 만보까지 안 걸어도 좋다. 8,000보면 충분하다.
8,000보 걷는 건 1시간~ 1시간 15분 정도 걸린다. 주로 퇴근길을 활용한다. 퇴근 한두 시간 전 든든하게 간식을 먹어준다. 그렇지 않으면 가는 도중 허기져서 힘들다. 간식만큼 중요한 건 최대한 가벼운 가방. 가능하면 가방이 없는 것이 좋다. 한시간 코스를 만들어 지하철에서 일찍 내리거나 해서 걷는다.
홀가분한 몸으로 한시간 정도 걷다 보면 몸에 기름칠하는 느낌이 든다.
자전거를 사놓고 안 굴려주면 녹슨다. 기름칠하고 굴려줘야 자전거 상태가 건강하게 유지된다. 몸에도 기름칠이 필요하다. 몸을 혹사시키면 안되지만, 무조건 아낀다고 건강이 보존되는 것도 아니다. 관절도 혈관도 근육도 걷는 활동을 통해 튼튼해진다.
피곤하고 무기력하고 컨디션 안 좋다는 사람을 만나면 항상 '걷고 있는지' 물어본다. 8,000보 이하는 걷는게 아니라는 기준이다. 대부분 걷지 않는다. 하루에 얼마나 걷냐고, 8,000보는 걸어야 한다고, 그렇게 걷다 보면 몸이 펴지는게 느껴질 거라고, 개운해지고 활력이 돌아오고 사는 맛이 생길 거라고 말해준다.
듣는 순간 삶에서 무엇이 부족했는지 깨닫는 사람의 눈빛은 다르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오지랖일 뿐이기에 얼른 입을 다문다.
일단 몸을 너무 안 움직이던 사람이 걷기 시작하면 밥맛부터 달라진다.
출퇴근 동선이 아름답게 깔끔해서 의식적으로 걷지 않으면 하루에 500보만 걷는 시기가 있었다. 화장실 갈때, 점심 먹으러 갈때만 걸으면 500보 정도 나왔다.
여기에 책상에서 모니터만 보는 삶을 끼얹자 몸이 점점 굽었다. 불판 위 오징어처럼 굽었다. 목이 뻣뻣해지고 어깨가 안 올라가기 시작한다.
몸 상태가 이러면 소화도 잘 안 된다. 밥이 맛있을 리 없다. 9km를 뛰던 나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이키 광고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안 뛰어도 좋으니, 어떻게든 8,000보를 채우기 시작했다. 곧 컨디션이 좋아졌다.
인간 몸의 설계는 걷기 위함이다. 기사님이 운전해주는 것도 필요없다. 페라리, 포르쉐, 람보르기니 등의 슈퍼카도 줄 수 없는 선물이 있다. 직접 자기 발로 걷는 즐거움이다.
사람이 죽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결국 걷지 못하는 게 죽는 거다. 걷지 못하고 서있지 못하고 앉아있지 못하다 누워 죽게 된다. 병원이나 호스피스 속의 삶을 생각해보자. 누워있는 삶이다. 걷는 게 사는 거고, 걷지 못하는 게 죽는 거다.
힘들게 스쿼트 천개는 못해도 누구나 걸을 수는 있다. 배울 필요도 없다.
아기가 아이가 되는 것은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우리 모두 그 시기를 거치며 이미 학습을 마쳤다. 거창한 허벅지 근육 유지는 못해도, 하루 한시간 걸을 근육은 잃으면 안된다. 잃었다 싶으면 기를 쓰고 회복해야 한다. 걷는 일과를 챙겨야 한다.
인생이 맛없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밥맛만 없는게 아니다. 세상 재밌는 거 다 모아놨다는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봐도 감흥이 없어진다. 드라마도 게임도 스포츠도 다 밋밋해진다. 인생이 맛없고 재미없다는 사람의 생활 패턴은 대부분 신체활동이 멍게 수준이다. 움직이지 않는다.
멍게 이야기. 12장에서 말했지만 중요하니까 다시 한 번 반복한다. 멍게는 원래 뇌가 있다. 움직이는 동물인 멍게는 정착하고 나면 뇌를 먹어 치운다. 움직일 필요가 없어 뇌가 필요없어졌기 때문이다. 뇌는 생각을 위해 있지 않다. 움직임을 위해 있다.
인간의 뇌도 움직임을 위해 있다. 달리는 말 위에서 허벅지로 안장을 컨트롤하며 손가락으로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이런 동작이 가능하려면 엄청난 수의 신경과 관절, 근육을 총체적으로 컨트롤하는 커다란 뇌가 필요하다.
인공지능은 이미 인간보다 바둑을 잘 둔다. 바둑은 인간 중에서도 천재만 하는 종목인데도 그렇다. 알파고는 이세돌을 이겼지만 이런 효율적인 운동능력을 구사하지는 못한다.
공중제비 돌면서 춤추는 로봇 영상을 본 적 있는 분은 반론을 제시하고 싶을 것 같다. 영상 속 로봇이 그렇게 움직이고 난 후 몇시간 동안 충전해야 한다는 사실은 홍보용 영상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기계장치의 에너지효율은 인간에 비하면 현저히 떨어진다.
아직 인간의 에너지 대사 효율을 따라잡을 기미도 안 보인다. 겸상도 못한다.
움직임이 없는 인간은 뭐랄까. 멍게처럼 멍해지는 것 같다. 소위 말하는 '활력'이 없어진다.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던 연어가 활력을 잃으면 어떻게 될까?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게 된다. 물살을 거스르지 못하고 둥둥 떠내려가는 물고기는? 죽은 물고기다.
그렇게 사는게 의미 없다는 건 아니다. 그런 시기도 필요한지도 모른다. 다만 인간은 그렇게 오래 살면 찾아오는 지루함과 권태감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존재다. '편하고 싶어. 난 편하고 싶어. 그러니까 움직이지 않을 거야.'라는 의지를 가지고 실행할수록, 행복과 거리가 멀어진다. 인생이 맛없어진다.
바디프로필을 찍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처럼 거창하고 원대한 식단 계획과 함께 혹독하게 운동할 필요까진 없다. 걷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나이를 먹어서 활력이 떨어지는게 아니라, 몸을 움직이지 않아 활력이 떨어지는 것임을 기억하자. 밥이 맛없는 삶이 좋다면 계속 누워 있으면 된다. 날마다 맛있는 밥을 먹고 싶으면 걷자. 아무 장비도, 아무 자격도 필요없다.
걷자.
팁을 하나 남긴다. 걸을 때 핸드폰은 두고 나서는게 좋다. 퇴근길이라면 전원을 꺼서 가방이나 주머니에 넣어 두자. 걷는 내내 시선을 모니터 화면에 고정시키면 목이 굽는다. 몸은 움직이면서 눈은 초점을 고정하니 눈도 훨씬 피로해진다.
바보짓이다.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짓이다. 기껏 걷는 시간을 마련했는데 망칠 필요는 없다.
정 지루하면 음악을 듣는 것도 좋겠지만, 디지털 기기와 완전히 접촉을 끊는 디톡스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걷는 동안 드는 생각은 보물과 같은 것들이다.
시시한 것들에 보석 발굴 기회를 빼앗기면, 아깝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