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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이 쇠약해질수록 사람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품고 있는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양자역학에서 모든 물질은 파동인 동시에 입자다. 이를 '파동-입자 이중성'이라고 한다. 빛이 그렇듯 탁자나 키보드도, 그리고 나와 당신도 물질(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다.
사람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라디오나 와이파이처럼 파장을 내뿜는다.
좋건 나쁘건 특출난 사람을 볼 때 우리는 '아우라가 느껴진다’고 말한다.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특별한' 사람이 내뿜는 아우라를 느낀 적, 있을 것이다.
특별한 사람 아니어도 다들 각자의 기운을 내뿜으며 산다.
정상적인 사람이 얼마나 많은 기운을 뿜어내는지 정상인은 알 수 없다. 코끼리가 얼마나 큰지 코끼리는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주변을 둘러보면 다 코끼리인데 느낄 수 있을리가. 코끼리가 큰 존재라는 것은 고양이가 알 수 있다.
기운을 잃은 사람들 사이에서, 정상인이 얼마나 높은 에너지로 사는지 알려면 병원에 가면 된다. 요양원에 가면 된다. 그곳에서 일하는 간호사, 요양보호사는 다른 곳에서 만나면 보통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일하는 곳, 기운이 쇠약해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빛나는 존재가 된다. 거기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도움 없이 일상을 살아내기 어렵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잃을수록 사람이 내뿜는 기운, 파장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것은 나쁜 에너지뿐 아니라 좋은 에너지도 마찬가지였다.
사회생활의 시작은 인사다. 기가 센 사람일수록 밝은 에너지가 가득한 인사를 건넨다. 그런 인사를 받으면 왠지 모르게 기운이 난다. 내가 흐물흐물해진 상태에서는 기분 좋은 인사를 받는 것도 버거웠다.
그런 인사를 받으면 화답하고 싶은 것이 정상인데, 내 안에 그럴만한 에너지가 없어서 반응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의 삶을 돌아본다. 너무 많은 사람과 너무 많은 상호작용을 하며 너무 많은 기운을 내뿜으며 살았다. 인생에 한 번도 쉼표를 준 적 없다. 제대로 번아웃이 온 것이다.
‘갭이어(Gap Year)’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기본교육과정을 마치고 사회로 나가기 전, 1년 정도 쉬며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한국형 갭이어는 아마 '휴학' 아닐까? 대학을 스트레이트로 졸업하는 사람도 많지만, 휴학을 찬스처럼 쓰기도 한다. 인생 중간에 쉼표 한번 걸어주는 것이다. 퇴사하고 몇 개월 동안 고향에 가서 지내거나,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나는 그런 시기가 없었다. 입대 목적 말고는 휴학 한 번 하지 않고 졸업했다. 전역한 다음 날부터 일했다. 20대 내내 주말에는 교회일 하느라 바빴다. 교회를 떠나고 나서야, 주말에 쉰다는 게 뭔지 알게 됐다.
돌아보니, 번아웃이 오는게 당연한 삶이었다.
타고난 체력을 넘어 에너지를 대출해서 쓰면 안 된다. 무리하면 몸은 고장 난다. 대출로 당겨쓴 대가를 철저히 요구한다. 이쪽도 오래될수록 복리의 마법이 작동한다.
스마트폰 배터리를 생각해보자. 2년 정도 쓰면 배터리를 완충해도 처음 샀을 때처럼 오래가지 못한다. 고장 난 배터리를 완충해봤자 지속시간은 이미 짧아져 있다. 내 최대 용량도 작아진 것이었다.
배터리를 최대로 충전해도 항상 빨간불인 상태까지 갔다. 정상적인 배터리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버거웠다.
가끔 일어나는 정서적 갈등 상황은 심히 견디기 어려웠다. 작은 스트레스도 배터리를 많이 소모시켰다. 배터리 상태 안좋은데 화질 좋은 고용량 게임을 실행하면 어떻게 될까. 10분만에 15%를 소모하는 상황에 부딪히고 나면, 상대방은 남은 85%로 하루를 살아갈 자원이 있겠지만, 나는 서 있는 것도 힘든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모든 마찰을 피했다.
이때의 나는 빛이 싫었다. 어둠이 좋았다. 밝은 대낮에 눈을 뜨고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웠다. 가끔 갑갑하면 외출을 했다. 사람을 마주치지 않으려 심야에 나갔다.
모든 게 고요해지는 시간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새벽 2시는 넘어야 집 밖을 나서곤 했다. 그 시간대에도 서울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돌아다녔다.
아직도 기억나는 순간이 있는데, 건너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의 존재가 갑자기 너무 크게 느껴졌다. 누군지도 모르고, 내게 위협을 끼칠 기색도 복장도 아니었다.
단지 '사람의 존재감'이 크게 느껴졌을 뿐이다. 지구를 향해 돌진해오는 행성처럼 느껴졌을 뿐이다. 사람의 에너지가 버거웠다. 길 반대편으로 최대한 떨어져 지나쳤다.
망상 장애가 있는 사람은 나를 도청한다거나, 암살하러 온다거나 하는 걱정에 시달린다고 한다. 내 경우 그런 것은 아니었다. '건너편에서 오는 사람이 나를 해칠 것이다.' 라는 종류의 망상에 빠진 적은 없다. 다만 그저, 사람이 버거웠을 뿐이다.
그래서 사람이 힘들고 무서웠다.
지금까지 내용을 심각한 단어로 적으면 '대인기피'가 된다.
사람은 타인의 얼굴을 보며 근육의 움직임으로 표정을 읽는다. 이때 거울 뉴런이 작동하며 공감의 길이 열린다. 마음을 걸어 닫은 사람은 타인의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다. 편의점에서 계산할 때도 눈과 얼굴을 마주치지 않는다. 사무적인 거래 행위만 오가게 된다. 거울 뉴런은 작동할 일이 없어지며 쇠퇴한다. 거울 뉴런이 죽어가는만큼 사람을 마주할 능력을 잃는다. 지독한 악순환이다.
끝없는 하강이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을 마주하기 싫고, 할 일 없는 사람은 뭘 할까?
돈이 있으면 쇼핑 중독 같은 것에 빠지기 쉽다. 구매하는 순간, 배송이 오고 택배를 뜯는 순간마다 느껴지는 도파민에 취한다. 그렇게 공허함을 달랜다.
소비로만 자기 존재를 확인할 수 있으니 그렇게 한다.
술은 또 어떤가. 인류 역사 내내 선조들로부터 내려오는 도피처다. 잠자고 깨어 있는 시간을 맨 정신으로 버티기 힘들 떄, 술을 마시면 맨 정신이 아니게 되니 버틸 수 있다.
단, 술이 깨면 현실은 그대로다.
빌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이래 최근 30년간 급속도로 확산된 신흥 도피처가 있다. 바로 게임이다.
나는 그곳으로, 게임 속 세계로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