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렬보다는 혜자가 되고 싶어요
"보자... 뭐 시킬 만한 거 없나?"
두 달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내게는 처음 경험해보는 일인 데다, 하필 올해 직장 내에서 가장 큰 일이다. 해보다 일찍 출근해서 해보다 늦게 퇴근을 한다. 그렇게 일을 해도 준비할 것들은 태산이다. 시간을 아끼고 아껴본다. 결국 밥 먹는 시간까지 아끼기 위해 배달을 시키기로 한다.
"와, 가격이 뭐 이래? 선 씨게 넘네."
좋아하는 음식을 시키는 것도 한두 번이다. 새로운 메뉴가 필요했다. 배달 앱을 뒤지다 우연히 발견한 도시락 가게, 맛있어 보인다. 가격을 보는 순간 입맛이 싹 달아난다. 아, 선택지가 없다. 하필 다른 가게들이 휴무 거나 배달이 안된다고 한다.
"주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30분 정도 지났을까? ‘40-50분 정도 소요됩니다’라는 메시지 알림보다 도시락이 일찍 도착했다. 짙은 네이비색 앞치마를 두르고 정갈하게 뒤로 넘긴 희끗희끗한 머리의 사장님이 웃으며 하얀 봉지를 건넨다. ‘감사합니다’ 대꾸하며 받아 든다. 어라? 꽤 묵직하다.
"아, 이 정도면!"
봉지를 열어 내용물을 꺼냈다. ‘선 넘네’ 생각했던 순간을 반성했다. 분명 ‘1인분’이라는데 따로 저녁 메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양이 많았다. 나도 모르게 ‘아, 창렬인 줄 알았는데 혜자였네’ 중얼거렸다. 창렬과 혜자, 본래 연예인의 이름이었지만, 이제는 양과 질을 말하는 데 있어 ‘창렬스럽다’ ‘혜자스럽다’는 말은 퍽 보편적 표현으로 굳어졌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바빠서였다. ‘브런치에 글을 안 쓰니까 구독자가 줄어요’라며 울상을 지었던 후배 녀석이 생각났다. 나는 달랐다. 어찌 된 영문인지 구독자는 조금씩 늘었다. 가끔 글을 읽고 공감을 표시해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미안했다.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쓰는 인간’은 과연 독자들에게 어떤 이름일까 생각해봤다. 브런치에서 나를 구독한 약 700명의 독자와 포스 타입의 79명은 침묵하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부디 ‘쓰는 인간’이라는 이름이 글에 있어 ‘창렬스럽다’의 또 다른 이름은 아니기를 염치없이 바란다.
여전히 바쁘고 정신이 없다. 사실 그건 내일 마치는 프로젝트가 끝나도 마찬가지일 거다. 바쁜 삶이 바뀌지 않으니 쓰지 못하는 나를 바꾸기로 했다. 써야겠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많이는 못 쓰더라도 여전히 써야겠다. 누군가에게 ‘쓰는 인간’이 창렬이 아니라 혜자로 기억될 수 있도록.
창렬보다는 혜자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