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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Oct 02. 2021

호랑이도 이건 못 바꿔요

호질

“에이, 아니오! 그럴 리가 있나!”

“하지만 분명 저 목소리는 북곽 선생이 아니냐!”

옛날, 사람들이 ‘정’이라고 불렀던 한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마을에는 ‘동리자’라는 이름의 아리따운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일찍 남편을 떠나보낸 뒤, 자식들과 살았다.

   임금도 동리자의 절개를 가상히 여기신 바, 마을 근처의 땅을 상으로 내리시고 땅에 이 여인의 이름을 붙였더라. 동리자에게는 아들이 다섯 있었는데, 아들의 성이 전부 다르니 참으로 괴이한 일이다.

   어느 날 밤, 오 형제는 어머니 방에서 나는 수상한 소리를 들었다. 가만히 듣자 하니, 북곽 선생의 고고한 목소리가 아니겠는가!

   오 형제가 몰래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이는 필시 북곽 선생이라, 어머니가 시를 청하자 선생은 옷깃을 단정히 여미시더니 시를 읊더라.

“병풍에는 원앙이 놀고, 반딧불은 춤을 추는구나.

가마솥과 세발솥은 누구를 본떠 만들었는고?

생각하니 참으로 좋구나!”

   아, 잠시 북곽 선생에 대해 소개를 하자면, 나이 마흔에 직접 교정한 책이 1만이요, 중국 고전의 아홉 가지 경서에 해설을 덧붙여 다시 쓴 책이 또 1만 5천이라! 궁궐에도 그의 명성이 자자하며, 제후들이 존경하더라.

   헌데, 이런 고고한 선생의 목소리가 한밤 중 홀로 사는 여인네 집 방에서 흘러나오니 이 어찌 된 일인고?  가만히 목소리를 듣던 맏이가 네 명의 동생들을 제치며 말하였다.

“아우들아, 옛 말에 여우가 천년을 묵으면 조화를 부려 인간의 탈을 쓴다 했다. 필시 저것은 여우렸다!”

   이번에는 셋째가 큰 형님의 말을 거들며 말하기를

“큰 형님 말이 맞소, 내 들으니 여우가 쓰던 갓을 얻으면 큰 부자가 되며, 신발을 얻으면 대낮에도 자기 모습을 감출 수 있다 들었소. 게다가 꼬리를 얻으면 만인의 사랑을 얻을 수 있다 하니, 저 여우를 빨리 잡아 서로 나눠 가집시다!”

   다섯 명의 형제가 동시에 맞장구를 치며 작정을 하니, 이게 무슨 날벼락같은 일이란 말인가? 몽둥이를 들고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들어오는 소리에 북곽 선생은 너무나 놀랐다.


   그 와중에도 혹시나 누가 이 꼴을 볼까 하여 다리 한 짝을 목덜미에 걸고 독각귀(외다리 귀신) 흉내를 내니 그 모습이 어찌 우습지 않으리오?

“으아아악!”

   얼마나 내달렸는지 모를 그때 갑자기 땅이 푹하고 꺼지는 것이었다. 별안간 이것이 웬 조화인가 하였더니, 농부가 들판에 파놓은 거름 구덩이 속에 빠졌더라.

   제 아무리 북곽 선생이라도 별 수 없었던 바, 한참을 몸부림을 치다 간신히 밖으로 나오게 되었는데. 바로 그 순간 선생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다. 그 앞에 집채만 한 범이 있는 것 아닌가!

   범은 선생을 보다니 이마를 찌푸리고 헛구역질을 했다. 그가 방금 거름 구덩이에서 나온 까닭이라. 코를 감싸 쥐고, 고개를 돌리고 범이 말하기를.

“창귀(호랑이에게 잡혀 죽은 사람의 혼, 호랑이에게 붙어 다른 사람을 잡아먹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놈들의 말이 다 틀렸구나, 선비 고기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하더니 이놈에게서는 구린내만 나는구나!”

   북곽 선생은 머리를 한껏 조아리고 범에게 세 번이나 연거푸 큰절을 올렸다. 그러더니 산군님의 덕망이 어쩌고, 거룩한 이름이 저쩌고, 하며 한껏 아첨을 늘어놓는데 범이 호통을 치며 일갈한다.

“내 들으니 선비란 놈들은 다 아첨꾼이라 하더라, 네놈을 보아하니 정말로 그러하구나! 하찮은 목숨을 살리고자 애쓰는 꼬락서니가 우습다!”

   하며 잔뜩 움츠러든 북곽 선생을 호되게 질책하기 시작한다.(여기서 ‘호질’이라는 제목이 나왔다. 호질은 호랑이의 꾸짖음이라는 뜻.)

   범의 질책에는 하나도 틀린 말이 없었다. 세상천지에 제일 간악하고, 악독한 것이 인간이라! 북곽 선생 그 말에 아무 말하지 못하고 바짝 엎드려 말하기를,

“하… 하지만, 옛말에 악인이라도 목욕재계하면 상제를 섬길 수 있다 하였습니다. 그러니, 저 같은 하찮은 인간은 그저 뉘우치고 복종할 뿐이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참을 기다려도 대꾸가 없는 것이라. 이에 선생이 슬며시 고개를 들어보니 아니 글쎄, 범은 온데간데없고 말없이 해만 산 사이에서 얼굴을 조금씩 내밀고 있더라.

   때마침 농부가 밭 갈러 나오다 선생을 보았다. 이른 아침부터 그 고매한 북곽 선생이 들판에 절을 하고 있으니  이 어찌 해괴하지 않으리오? 이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아니, 선비님께서는 어째 아침 댓바람부터 들판에 절을 하고 계십니까 그려?” 묻자, 선생이 멋쩍게 웃으며 대답하기를,

“하늘이 아무리 높다고 한들 그 앞에서 허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고, 땅이 아무리 두텁다 한들 조심스레 디디지 않을 수 없다고 했네, 나라고 한들 어찌 다르겠는가?” 하며 아무 일 없다는 듯 애써 태연한 척하며 뒷짐을 지고 걸어가더라.

- 박지원, ‘열하일기  호질 -

   언제부터였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초조할 때마다 손톱을 물어뜯었다. 처음엔 불안해서 물어뜯었는데, 어느새 습관적으로 입에 손가락을 넣고 있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시고 어머니는 타이르시고, 아버지는 혼을 내셨지만 소용없었다.

   어리숙한 오 형제에게 들켜 뛰쳐나간 그 밤이 동리자와 북곽 선생의 은밀한 첫 밤이었을까? 한번, 두 번, 또 세 번 만나다 보니 꼬리 긴 줄 모르고 있다가 들켜버린 건 아닐까?


   손톱을 물어뜯었던 어린 날의 나처럼, 고고한 선비와 정절을 지키는 여인의 은밀한 밤 역시 하루 이틀에 생긴 일은 아니었을 거다. 한번 들인 습관, 고고한 선비인 척하는 모습은 호랑이가 큰 소리로 꾸짖는다고 해서 그리 쉽게 바뀌지 않았다.


   호랑이가 사라지고 나니 다시 고고한 선비인 양 뒷짐을 지고 허허 웃으며 서둘러 자리를 뜬 북곽 선생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려 본다. 정말 사람은 바뀌지 않는 걸까?

   아니다. 사람도 바뀔 수 있다. 적어도, 이제 나는 손톱을 물어뜯지 않으니까. 10년 넘게 달고 살았던 버릇을 버렸다. 별 특별할 것은 없었다.


   그냥 어느 순간 손톱을 물어뜯는 게 싫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손톱을 물어뜯는 내 모습이 굉장히 별로였다. 그뿐이었다.

   남이 아무리 호랑이처럼 무섭게 야단을 치고, 바꾸려 노력해봐도 소용없다.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였던 주희의 말처럼, 매일 반성하라, 만약 잘못이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더 반성해보라.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뉘우치지 못하는 사람은 호랑이가 와도 바꾸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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