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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Oct 09. 2021

당연히 여기지 않는 마음

규중칠우 쟁론기

“@#$%?”

“^&*!”


어느 저녁이었다. 그날따라 무리를 해서인지, 규중 부인은 유난히 무거운 눈꺼풀을 어찌할 도리가 없더라. 그리하여 자기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던 중, 어디선가 웅얼대는 소리가 나지 않는가!


‘이것이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부인이 가만히 잠결에 생각해보니, ‘저녁 식사를 하고 졸기 시작하였으니 지금은 분명 밤중일 터인데, 저 떠드는 것들은 무엇인가?’하여 덜컥 겁부터 나더라! 그러나, 아녀자의 몸으로 함부로 무엇을 하였다가 화를 당할까 두려워 가만히 눈은 감은 채로 귀를 세워보니,


“하하, 척 부인! 당신이 아무리 마름질을 잘해도 내가 자르지 못하면 모양이 제대로 나오겠소? 그렇게 따지면 내 공이 가장 크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요!”


“듣고 보니, 그대 말은 틀린 말이라! 옛 말에 진주라도 열 그릇을 꿰어야 구슬이 된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는가? 재단을 아무리 잘해도 내가 없으면 옷을 지을 수 없다는 사실을 왜 모른단 말이오?”


   라며 다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규중 부인은 일찍이 바느질을 하며 쓰는 도구들을 마치 사람인양 이름을 붙이고 친근하게 여기곤 하였다. 그 이름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으니,


   바늘에게는 ‘세요 각시’라 하고, 자는 ‘척 부인’이라 하였다. 가위는 ‘교두 각시’ 요, 인두는 ‘인화 부인’이라 불렀다. 다리미에게는 ‘울 낭자’ 요, 실은 ‘청홍 흑백 각시’라 하였으며, 골무에게는 ‘감토 할미’라고 부르며 정을 붙였더라.


   이름을 붙인 탓인가, 정을 붙여서 일까? 규중 부인이 잠에 취해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부녀자가 사는 방의 일곱 친구라 하여 ‘규중 칠우’라 부르는 이 물건들이 정말로 벌떡 일어나 서로 내가 잘났니, 네가 잘났니 하고 말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서로의 공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동안 일곱 친구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만 가더라. 이제 규중 부인도 도무지 참을 수 없었으니, 눈을 번쩍 뜨고, 입을 열어 ‘내가 더 잘났다’ 말하는 그네들에게 한 마디를 꼭 해야 하겠더라.


“이 녀석들아, 내 너희들의 공로는 인정하긴 한다만. 너희들의 재주 모두 사람이 써야만 빛을 발하는 것 아니더냐? 그러니 너희들은 서로 잘났다 싸움질은 그만하고, 이제 그만 싸우기를 그치거라!”


   하고 말한 뒤에 다시 몰려오는 잠을 이길 재간이 없어 베개를 베고 누워 깊이 잠이 들더라. 그것을 보고 규중 칠우가 깜짝 놀라기는커녕 서로들 서운한 마음 가득하여 한 마디 씩 하더라. 먼저 척 부인이 말하기를,


“저것 보아라. 사람은 매정하고, 여자는 공을 누가 세우는지 모른다더니, 그 말이 꼭 옳다! 옷에 마름질이 필요할 때에는 제일 먼저 나를 찾더니, 일이 끝나니 자기 공이라고 거들먹대는 꼴이 어처구니없구나!”


   척 부인의 말에 교두 각시도 맞장구를 치며 말하기를,


“옳다, 옷을 자르는 것은 나 밖에 할 수 없는데, 날이 잘 안 든다고 불평하며 내 다리를 잡고 흔들면 정말 화가 아니 날 수 없는 것이야!”


    그러자, 세요 각시가 한숨을 쉬며,


“그대는 그렇다 치고, 나는 어찌하여 간사하고 악독한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이오? 내가 약한 허리를 휘두르고, 날쌔게 입부리를 돌려 제 바느질을 돕는 줄도 모르고, 수틀리면 내 허리를 부러뜨려 화로에 넣으니 내가 어찌 분을 내지 않을 수 있겠소?” 말하는데,


   질 수 없다는 듯 인화 부인도,


“나야말로 무슨 죄를 지어 날마다 얼굴을 불에 달궈야 한단 말이오? 억울하고, 분통하오!”하고 분을 내니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게 되었다. 이에 규중 부인이 다시 일어나 전보다 더 무서운 얼굴을 하고서는,


“이 녀석들아! 내가 여기 떡하니 있는데도 내 흉을 그리 본단 말이냐?” 하고 화를 버럭 내니, 감토 할미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한다.


“저 젊은것들이 철딱서니가 없지요, 저희가 지은 죄가 있는 것도 모르고 잘난 척만 했으니 매를 맞아 마땅합니다만, 그동안의 정과 작은 공을 생각하시어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러자 규중 부인이 대꾸하기를,


“감토 할미 말을 들으니 그간 정과 공을 내가 생각하지 못하였네. 가만 보니 내 손이 멀쩡한 것은 모두 감토 할미 덕이 아니겠는가? 내 자네를 비단 주머니 속에 곱게 모시고 다니도록 하겠네.”


   그러자 감토 할미는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했고, 다른 친구들은 부끄러워하며 물러가더라.


- 작자 미상, ‘규중칠우 쟁론기’ -


“헐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야, 나 가야 돼. 빠이!”


   자취하는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그때 우리는 대학생이었고, 나는 기숙사에 살았다. 자취방에서 저녁으로 콜라와 치킨을 먹고 한참을 떠들다 보니, 가야 할 시간이 지났다는 걸 알았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다니던 학교 기숙사에는 점호가 있었다. 점호에 참석하지 못하면 벌점도 벌점이지만, 다음 학기 입사에 문제가 생길 게 뻔했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으로 기숙사로 돌아가야 했다.


“네가 뭘 몰라서 그래...”


   다음 날 우리는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과제를 하다 ‘너는 점호 없어서 좋겠다’ 말하니 친구는 고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나에서 열까지, 자기가 다 신경을 써야 하니 방 청소만 제때 하면 되는 기숙사가 훨씬 낫다는 거였다.


   당장 화장실 청소며, 주방에, 하다못해 쓰레기 비우는 일도 자취하면 혼자 해야 하는데, 집에 있으면 엄마가, 기숙사에 있으면 여사님들이 해주시니 차라리 기숙사에 들어가고 싶다는 말을 하는 그 친구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집과 기숙사의 깨끗한 창문틀이며 화장실 변기, 물때를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주방은 사실 당연한 게 아니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 말끔하게 해 놓으신 정성이 있었기에 누릴 수 있었던 호사였다.


   규중 부인의 일곱 친구들이 그렇게 서로 싸우고 자기들끼리라도 공을 논했던 것은 부인이 그들의 수고를 알아주었으면 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규중 부인의 말대로 물건이 재주가 아무리 뛰어난 들, 사람이 그것을 써야 빛이 나는 것은 맞다.


   하지만, 부인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아무리 사람이라도 가위가 없으면 옷감을 자를 수 없고, 자가 없으면 수치를 잴 수 없다. 다리미 없이는 깔끔하게 주름을 펴지 못한다.


   영국의 시인이자 성공회 신부였던 John Donne이 쓴 기도문에서 나온 것처럼 인간은 섬이 아니다. 그 누구도 섬으로 존재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인류의 한 부분이며, 그렇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 심지어는 사람을 넘어 동물과 사물에게까지 도움을 주고, 또 받으며 산다.


   그러니, 주변을 한번 살펴보는 건 어떨까? 지금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당연히 여기던 그 누구, 그 무엇의 도움 때문임을 기억하길 바란다.


   우리가 섬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상, 주어진 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는 마음. 감사는 인간의 품격으로 계속해서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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