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는 인간 Oct 13. 2021

바보야, 중요한 건 균형이야.

용부전

옛날 어느 마을에 용부(慵夫 게으름의 의인화)라고 하는 자가 살았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했는데, 다만 어딜 나가지도 않고 주야장천 누워만 있으니 마을 사람들은 그를 용부라 부르더라.


   벼슬길에 올라 관리가 될 수 있었으나, 그것이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닌지라 일찌감치 그런 생각일랑 버려두었더라. 또한 집에는 오천 여권의 책이 있었으나, 또한 귀찮아 펴보지 않으니 먼지만 수북하게 쌓이는 건 당연했다.


   아무리 아파도 의원에 가기 귀찮아 진료를 받지 않았고, 방에서는 앉는 것조차 불편해하였으며, 걷기조차 귀찮아 멍하니 길바닥에 서 있곤 하였더라.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를 ‘사람 같지 않고, 마치 허수아비 같구나.’하며 혀를 차곤 하였다.


   한편, 옆 마을에 근수자(勤須子 부지런함의 의인화)라 이름 하는 자가 있었는데, 뭇사람들에게 학식이 높은 자로 명망 높았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가진 지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하는 것을 몹시 즐기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용부는 그날도 산발을 하고서는 두 다리를 쭉 뻗고 아무렇게나 걸쳐 앉아 있었겠다. 다만 평소와는 다른 것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는 무언가를 보는가 했더니, 옆 마을 근수자였다.


   어찌 근수자가 용부의 마을까지 왔는가 하니, ‘용부를 찾아 말이나 걸어보자’하는 마음에서였더라. 이리저리 살펴볼 필요 없이 저잣거리 한가운데에 떡 하니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는 저 모양새가 사람들에게 들었던 딱 그 모양이라. 근수자 웃으며 용부에게 다가가 말하기를,


“이보시오, 내 그대를 보니 용부가 틀림없소. 나는 옆 마을의 근수자라고 하오. 옛말에 이르기를 부지런한 자 못 사는 법 없고, 게으른 자 무엇을 하여도 실패를 한다 하였지, 위대한 인물들은 근면성실로 자신을 지켰소. 봄에 바람이 불고, 여름에 비가 내리며, 가을에 서리가 내리는 일을 생각해 보게나. 겨울에 눈이 내리는 조화는 또 어떠한가? 이 모두 하늘께서 부지런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넌지시 뜻을 전하니 용부가 웃으며 근수자의 말에 대꾸하기를,


“하하, 내가 자네를 만나면 한 수 가르쳐 주려고 하였는데, 그대가 나를 가르치는가? 인생을 잘 생각해보게. 길어야 백 년뿐인데, 낮에는 먹고살기 위해 버둥버둥 뛰어다니며 애를 쓰고, 밤에는 아직 먼 일 생각에 잠 못 이루며 뒤척이니, 부지런함도 소용이 없음이라, 이것이 어찌 현명한 삶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이에 근수자가 질세라 또 한 마디 보태려는데, 용부가 더는 들을 수 없다는 듯 근수자를 힘차게 떠밀어 보내버리는 것이라. 이런 취급을 당하니 아무리 어질은 근수자라도 어찌 마음이 상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뭇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하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어 잠시 고민하던 근수자에게 좋은 수가 떠오른지라.


“이보게, 용부. 나 좀 보세나!”


   문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근수자의 목소리를 들은 용부는 다시 제대로 혼쭐을 내야겠다는 마음으로 문을 힘차게 열어젖히는데, 생각하지 못한 모습에 깜짝 놀란다. 근수자가 술병에 술을 가득 채우고서는 신명 나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용부를 보고 근수자가 빙그레 웃으며 말하기를


“하하, 거기서 그러고만 있지 말고 밖을 좀 보게나. 춘삼월이라, 날씨가 어찌나 화창하고, 새들은 저리 아름답게 노니는지, 내 그대와 함께 즐기러 여기까지 왔는데... 이래도 나를 문전박대하시겠소?”


   하니, 용부가 어느새 마음이 흡족하여 버선발로 일어나 근수자와 밖을 나서더라. 근수자와 용부는 주거니 받거니 하며 흥겹게 술을 마셨고, 동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함께 흐뭇하게 여겼다.


- 성간, ‘용부전 -



“아유, 쟤들은 도대체 언제 쉰다니?”


   언젠가 어머니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였다. 강남 학원가의 풍경이 다큐멘터리로 나왔다. 오직 입시를 위해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의 일상이 나왔다. 나와 어머니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애쓰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근면과 성실이 좋은 인생의 표준이라고 배웠던 때가 있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게으르고 나쁜 사람이라고 어렸을 적 읽었던 개미와 베짱이는 말해주었다.


   언뜻 보면 용부전 역시 그와 같은 이야기인 것 같지만, 아니다. 부지런함을 대표하는 근수자가 게으름을 상징하는 용부를 찾아가 훈계하듯 이야기를 꺼내는 장면만 봐서는 그렇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낮에는 일 하느라 고생하고, 밤에는 걱정하느라 못 쉬는 것이 어찌 좋은 인생이냐’ 묻는 용부의 말에는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다. 부지런함은 좋지만, 근면에 쩌든 인생을 좋은 삶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느 것 하나 부족해 보인다.


   그렇다면 어쩌자는 건가? 결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근면함과 게으름을 대조하고, 근면함을 미덕으로 말하는 개미와 베짱이와는 달리 용부전은 게으름에 대한 악평도, 부지런함에 대한 찬양도 없다. 다만, 용부와 근수자, 게으름과 부지런함이 서로 함께 하나가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무슨 뜻일까? 혹시 부지런함과 쉼을 균형 있게 잘 가져가라는 선조들의 가르침은 아닐까? 삶에서 쉼의 비중이 지나치게 커지면 게으름이 되고, 근면함이 지나치면 피곤함이 되니 말이다.


   그러니 누가 쉬고 있거든 ‘언제까지 그렇게만 있을 거냐?’며 호통 치지 말고, 계속 일하는 이를 보거든 ‘쉬엄쉬엄 하라’고 따뜻한 한마디 건네주는 건 어떨까? 이번에는 일본의 소설가요 극작가였던 무샤노코지 사네야스의 말로 글을 마친다.


“피곤해지면 쉬는 것이 좋다. 휴식은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다. 모든 사람은 푹 쉴 필요가 있다.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좋지 않지만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것도 나쁘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연히 여기지 않는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