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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Oct 27. 2021

사람은 물건이 아니다.

각로선생전

옛적에 왕승건(王僧虔 남북조 시대의 서예가)이라 하는 사람이 구리 족집게에게 각로(却老 늙음을 물리친다는 뜻, 족집게로 흰머리 털을 뽑는 것을 빗댄 별명이다.) 선생이라 불렀다고 한다. 내 주머니 속에도 마침 선생이 계시니, 나 역시 그를 각로라 부르기로 하였다.


“한낱 족집게 따위가 어찌 늙는 것을 물리친단 말입니까?”


   하루는 한 사람이 내게 찾아와 이리 말하기에 ‘그렇다’고 대꾸하니 그가 웃으면서 내 말에 대답하기를,


“하얗게 변한 털을 뽑는 것만으로 늙는 것을 물리친다는 말은 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건 마치 한 겨울에 잠시 불을 피우고는 ‘내가 추위를 몰아냈다’ 말하는 것과 같고, 나라에 도적이 침입하여 성이 무너졌는데, 잠시 갑옷을 두르고 칼을 뽑고서는 ‘내가 적을 물리쳤다’ 말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지요.”


   하니, 내가 다시 그에게 말하였다.


“아,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미어지는구려. 나라고 어찌 족집게 선생이 늙는 것을 막아줄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겠소?”


   이 말에 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왜 늙는 것을 다들 싫어하겠소? 죽음 때문이지. 하지만, 요즘 사람들을 보니 죽는 것보다 늙는 것을 더 끔찍스럽게 여기는 모양이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늙는 것을 막으려고 애쓰는가? 그대 생각은 어떠하오?”


   하고 묻자 다시 대꾸하기를,


“이전에는 나이 많은 사람을 존경했지요, 옛 임금들만 보아도 사람들의 머리 색을 보고 잔칫상에 앉는 순서를 정하지 않았습니까? 서경(書經 유교 경전 중의 하나)에 보니 ‘모르는 것이 있거든 누런색 털을 가진 노인에게 물어보라’ 하였고, 예기(禮記 이 또한 유교 경전 중 하나)에 이르기를,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에게 짐을 지우지 말라’ 하였지요.”


   그 말을 듣고 나 역시 동의하는 바가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소,  시절에는 오히려 머리가 희어지지 않는 것을 걱정했지. 늙는 것을 억지로 막아 세우거나, 나이 드는 모습을 한탄하는 것을  역시 보지 못하였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지. 내면보다는 이마와 귀밑머리며, 입과 턱의 수염이 하얗게  것만 보고는  사람을 늙었다 하여 업신여기않는가?”


   말하니, 그 역시 내 말에 맞장구를 치며,


“옳습니다. 그러고 보니, 귀밑머리와 턱수염에 돋은 흰 털만 조금 뽑아내면 사람들이 그렇게나 싫어하는 늙음을 최선을 다해 막아낸 셈이니, 이쯤 되면 어르신께서 말씀하신 대로 각로 선생의 공이 대단하군요!”


하였다. 이에 나는 우리가 주고받은 말들을 적어 각로 선생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 이옥, ‘각로선생전’ -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나요?”

“핸드폰 바꾸고 싶어서요.”


   며칠 전부터 핸드폰이 이상했다. 그럴 만했다. 진즉 약정이 끝났고, 햇수로 4년째 녀석을 굴리고 있었다. ‘오래 쓰긴 했지?’ 직장 동료와의 대화를 듣기라도 했던 걸까? 제발 다른 핸드폰으로 갈아타라는 듯 못 쓸 정도로 동작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내일이면 주말, 핸드폰 개통을 할 수 없다. 일을 마치고 바꾸러 갈까 생각하다가, ‘혹시나 오늘도 일이 많아 늦게 끝나면 내일은 어떡하지?’ 생각이 든다. 결국 오전 반차를 쓰고 핸드폰을 바꾸러 갔다.


   핸드폰뿐만 아니라, 모든 물건이 다 그렇다. 수명을 다하거나, 고장이 나면 다른 것으로 바꾼다. 시간이 지나면 수명이 다하거나, 본래 가지고 있던 모습을 상실하는 건, 인간도 똑같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낡은 물건과 늙은 사람을 동일하게 취급한다는 데 있다.


   각로선생전 속 등장하는 두 사람의 대화에서처럼, 사람들 사이에서는 언젠가부터 죽는 것보다 늙는 것이 더 끔찍한 일이 되었다. 오죽하면, ‘나는 늙기 전에 죽을 거야’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하나 둘 쯤은 본 것 같다.


   나이 든 어른이라고 해서 무조건 떠받들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적어도, 낡거나 고장 난 물건을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듯, 나이 들어 늙은 누군가를 똑같이 취급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사람은 물건이 아니다. 기능을 잃으면 쓸모없어지는 물건과 달리 사람은 늙는다고 해서 그 존재 가치가 변하는 건 아니다.  


   각로선생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를 찾는 일이 조금은 줄어들기를 바란다. 지난 시간 앞에 노쇠해진 외모보다 내면에 쌓인 삶의 지혜와 그 사람의 존재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프랑스의 배우였던 Jeanne Moreau의 말처럼, 누구나 지나온 시간의 흐름을 숨기려 하는 대신, 일그러져가는 몰골을 당당하게 내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굳이 각로선생에게 도움받을 필요도 덜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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