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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Oct 30. 2021

샤프심보다 부러지기 쉬운 이것

오원전

오원(검은 털을 가진 고양이를 빗댄 말로, 고양이의 의인화)은 본디 ‘오직’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노나라 출신이다.


   조상 중에 오공이라 하는 자가 있었는데, 위나라 사람 서려와 아주 친하였다. 오공은 쥐를 아주 잘 잡았는데, 그런 오공에게 서려는 매일 100전씩을 주며 ‘백전군’이라 불렀더라.


   오원의 어머니가 그를 낳을 적에 커다란 별이 몸을 덮는 꿈을 꾸었더라. 이에 큰 인물로 자랄 줄 생각하였으나, 어린 오원은 체력이 약한 것이 흠이었다. 하지만, 성장함에 따라 동작은 날렵해졌으며, 눈동자에서는 빛이 나는 것이, 그 당당한 모습을 따라올 자가 없더라.


   어느 날이었다. 오원이 작은 도둑들()  잡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임금께서 그를 궁궐로 부르셨다. 전용 방석까지 하사 받은 오원은  임금 곁에 있게 되었다. 임금이 생선을 주면  겸손히 엎드려서 받아먹었으니, 이런 모습에 임금은 오원을 아끼셨다.


   하루는 임금이 오원과 놀다가 그의 코에 손이 닿았는데, 몹시 차가워 임금께서 깜짝 놀라며 “코가 어찌 차가운 것이냐?” 하문하시자 오원은, “콧병 때문입니다. 1년 중 가장 더운 하지 때를 빼놓고서는 언제나 이렇지요.”


   말하자, 임금은 껄껄 웃으며 의원에게 명하여 오원에게 약을 지어주라 명하셨다. 하지만, 그 약을 먹고도 오원의 병은 낫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오원이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을 밤이었다.


   그때 검은 옷을 입은 작은 도둑(쥐) 하나가 몰래 궁궐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아뿔싸, 복도 기둥을 타고 오르려던 찰나, 오원에게 걸리고 만 것이었다. 깜짝 놀란 도둑은 벽 구멍 속으로 숨었다.


   하지만, 이를 놓쳤다고 해서 포기할 오원이 아니었다. 죽은 것처럼 조용히 문 밖에서 기다리자 도둑은 다시 조심스럽게 궁궐 안으로 들어왔다. 오원이 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물건을 전부 물어뜯고, 음식들을 마음껏 훔쳐 먹기 시작했다.


“이놈!!!”


   그때 뒤에서 모든 것을 보고 있던 오원이 벼락같은 호통 소리와 함께 튀어 올라 도둑의 목을 눌렀다. 작은 도둑은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죽었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임금께서는 오원을 불러 크게 칭찬하셨다. ‘오정후’라는 칭호와 함께 조서산(鳥鼠山 중국 깐수성 웨이 위안현 서남쪽에 있는 산이지만, 여기서는 고양이가 좋아하는 새와 쥐를 뜻하는 것으로 봄)을 상으로 내렸다.


“가당치 않습니다. 신은 그저 좀도둑 하나 붙잡았을 뿐인데, 벼슬을 내리시다니요?”


   오원은 깜짝 놀라며 고사하였으나, 뜻을 굽히지 않는 임금의 모습에 결국 벼슬을 받게 되었다. 이때부터였다. 오원은 본래의 겸손한 모습을 잃고 교만해졌다. 거기에 사냥개 노령과 사이가 틀어져 싸우기까지 했다.


   노령은 오원의 얼굴을 주먹으로 사정없이 두들겼지만, 오원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싸움에서 졌다. 화가 난 오원은 그 길로 임금에게 달려가 노령과의 일을 말하며 하소연했다. 그러나, 임금께서는 오원의 편을 드시기는커녕, 못마땅한 듯


“내가 이전에 너에게 오정후 벼슬을 내렸건만, 사냥개 따위에게 두들겨 맞고 다닌다면 내가 너를 어떤 일에 쓰겠는가?”


   하고 차갑게 말씀하시었다. 이 일 이후로 임금께서는 전과 같이 오원을 사랑하지 않으셨다. 시간이 지나 늙은 오원은 예전과 같이 작은 도둑들을 내쫓지 못하였으니, 이제는 임금께서도 그를 어여삐 여기지 않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임금께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수라상 위에 있는 고기에 눈이 간 오원은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입에 넣고 말았다. 하필 들어오는 임금을 마주치니 깜짝 놀라 고기를 삼키지도 못하고 상 밑으로 숨어버렸다. 이를 본 임금께서는 노하시어


“쥐를 잡아야 할 네가 오히려 쥐의 모습을 따라 도둑질을 한단 말이냐? 여봐라! 당장 이놈의 벼슬을 빼앗고 성 문 밖으로 내쫓아라!”


   조금만 빠르지 못했어도, 오원은 흠씬 두들겨 맞고 버려졌을 것이다. 하지만, 젖 먹던 힘을 다해 내뺀 그는 도망치는 것에 성공했다. 이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음식을 움쳐 먹으며 살았으니, 이제는 모두가 그를 미워하더라.


- 유본학, ‘오원전’ -


“샤프심보다 부러지기 쉬운 게 뭔지 아세요? 초심이에요.”


   팟캐스트를 듣다 뼈를 맞았다. 글을 쓰다 부러뜨린 샤프심보다, 어쩌면 부러진 초심이 더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초심을 잃어버리고 교만에 빠졌다가 결국 버려진 오원이 우습다기보다는 가여웠다.


“한 달만, 딱 한 달만 한번 해보시죠.”


   바쁘다는 핑계로 체중 관리에 소홀했다. 호기심에 올라간 체중계는 ‘너 지금 인생 몸무게 찍었다’라며 팩트 폭행을 날렸다. 그때 마침 잘 아는 트레이너 선생님께서 한 달만 함께 운동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셨다. 나는 배수의 진을 친 장군처럼 쓸데없이 의연해졌다.


   일주일에 다섯 번, 단톡방에 올려주시는 운동 영상을 보고 인증 영상을 찍어 올리는 것이 미션이었다. 하루에 꼬박꼬박 마셔야 하는 물 2리터는 생각보다 많았다. 처음에는 ‘매일 운동하는 것도 아니고, 일주일에 다섯 번이면 어렵지 않겠다.’ 생각했다.


‘죄송합니다ㅠㅠ 벌금 보냅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운동을 주 5회 한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결국 단 한 주도 벌금을 내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내가 그러면 그렇지’ 생각하며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트레이너 선생님은 ‘조금만 더 힘내세요.’라며 용기를 주셨다.


   10월 31일, 한 달이 모두 지나갔다. 아직 티는 많이 나지 않지만, 목표했던 감량 체중보다 조금 더 살이 빠졌다. 참여한 다른 분들과 축하의 인사를 나누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으로도 계속 운동을 해서 좋은 습관을 만들기로 약속했다.


   단톡방을 들여다보며 스스로 물었다. ‘어떻게 가능했지?’ 생각해보면 한 달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의 초심은 이미 산산조각 났다. 애초에 일주일에 5회 운동하기를 성공한 적은 내게 한 번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어제 운동 못 했네요ㅜㅜ’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말을 꺼냈을 때, 트레이너 선생님과 다른 참가자 분들은 ‘잘할 수 있다’ ‘다시 해보자’ 하며 응원해주셨다.


   그분들 때문에 나는 또다시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만약 오원도 벼슬을 얻어 새로워진 자리에서 마음을 새로 다시 고쳐먹었다면, 이야기의 결말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누구나 초심을 잃을 수 있다. 우리의 초심은 여전히 샤프심보다 더 쉽게 부러진다. 하지만, 샤프심이 부러졌다고 해서 다시 붙이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굳이 잃은 초심에 미련두지 않기를 바란다. 차라리, 새 샤프심을 넣듯 새로 마음을 먹으면 어떨까?


   초심을 잃거든 다시 시작하면 된다. 미국의 영화배우였던 Barrie Chase의 말처럼 회복의 유일한 길은 부러진 초심을 가지고 끙끙대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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