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전
전신(錢神 돈을 신에 빗댄 표현)은 촉(蜀) 출신으로, 사람들은 그를 공방(孔方 엽전)이라 불렀다. 어떤 이는 그가 황제(黃帝 중국 신화 속 통치자)의 후손이라고 했고, 강태공을 도왔던 구부환(九府圜 돈을 유통하는 관청, 여기서는 사람에 빗댐)이 전신의 먼 조상이라고 말했지만, 누구도 정확히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는 큰 불이 금성을 감싸는 태몽을 꾸고 임신을 했다. 전신은 구리와 쇠로 된 이마를 가지고 태어났다. 배에는 통보(화폐라는 뜻)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사람들은 이런 그의 모습을 보며 신기하게 여겼다.
차분하며 친절한 전신의 성격은 사람들의 호감을 샀고, 명성이 온 나라에 퍼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난 체 한번 하지 않더라. 그는 늘 다른 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하늘은 사물이 만들어지며, 스스로 변화하는 것을 좋아하지요. 군자라면 당연히 이런 것을 늘 익혀야 하는데, 이는 책을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생각에는 주역(周易 유교 경전의 하나)이 그중 으뜸입니다.”
전신은 주역을 공부하는 것에만 10여 년을 썼고, 마침내 그 안에 담긴 원리에 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는 종종 마음이 맞는 친구들에게 ‘이익에만 눈이 멀어 싸우기보다는 가만히 때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의 말처럼 전신은 언제나 남의 눈에 띄기보다는 책상 안에 숨어 있기를 좋아하였으니, 같은 방에 있을지라도 전신을 만나는 일은 누구라도 생각보다 드문 경우였더라. 이러한 까닭에 한 친구가 그에게 찾아가 아쉬워하며 조언하기를,
“지금 진(晉) 나라가 세력을 뻗치고 있다는 사실을 자네도 들었겠지? 만약 자네의 재주를 임금이 보신다면, 크게 출세할 것이 분명하네. 지금이라도 자네의 능력을 알리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말하니, 전신이 대꾸하기를
“여보게, 옛날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는가?” 하며 묻자 그 친구가 대답하기를
“진(秦) 나라의 백리해(白里奚)가 딱 그런 경우였지.”
말하니 그제야 전신도 친구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더라. 한편, 전신은 거리를 거닐다가 노포라는 이를 만났는데, 그가 전신에게 이르기를 ‘요즘 같은 세상에서 보석 같은 이는 당신밖에 없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듯, 도시의 사대부 치고 전신과 친하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명성이 높아졌더라. 이에 임금께서 전신을 친히 불러 나라를 잘 다스릴 방도를 물으시니, 전신은 차분히 ‘먼저 모든 백성을 이롭게 만드는 정치를 하시면 된다’며 간언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임금께서는 크게 기뻐하시며 전신에게 벼슬을 내리시었는데,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어찌 벼슬을 그리 쉽게 내리는가?’하여 하나 같이 안타깝게 여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라에 큰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주리는 일이 빈번하다는 사실이 임금에게까지 들리게 되었다.
“이는 모두 신의 잘못이니, 제가 그들을 구하러 가겠나이다.”
‘왜 백성들을 돌보지 않냐’며 질책하는 임금의 호령에 그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하였는데, 오직 전신만이 홀로 자기 잘못이라 아뢰며 나서기를 청하였다. 그 말을 들은 임금께서는 크게 만족하시어 전신을 크고 작은 일을 모두 결정할 수 있는 자리로 높이셨다.
이제껏 신하들 가운데서 임금에게 이런 사랑을 받은 이가 없었으니, 전신을 아니꼽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를 보고 ‘그가 비록 높은 벼슬에 올랐으나, 늘 죄인을 묶는 포승줄에 묶여 있는 것이 수상하다’며 수근 댔다. 이는 사람들이 돈을 끈에 꿰어 다니는 것을 조롱하는 말이라.
그 말을 들은 전신은 웃으며 오랜 옛날 자기 조상이 왕께 ‘백성과 함께 하라’는 명을 받아 이리 하는 것이라 말하며 넘겼다. 이렇듯 전신은 조롱에도 끄덕하지 않았으니, 그를 미워하는 사람이 임금에게 전심을 모함하는 글을 올리게 되었다.
‘폐하께서 전신에 대해 제대로 아시지 못한 채로 마땅한 까닭 없이 대우하시니, 신은 애통 합니다. 그를 들어 쓰시는 것은 나라가 망하는 길이요, 쓰지 않으시는 것이 나라가 흥하는 길이옵니다.
전신의 집안에서는 인재라곤 찾아볼 수 없으며, 그 또한 인색하며, 배신을 밥 먹듯 하는 자이옵니다. 그가 늘 바쁘게 이리저리 다니는 이유를 생각해보셨습니까? 그 자는 넉넉히 베풀어야 할 자에게 인색한 자오며, 손해 볼 것 같으면 빼앗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이리하여 현명하신 제왕들께서는 전신의 무리들을 나라 밖으로 내쫓아 발도 못 붙이게 하셨습니다. 하온데, 어찌 이리하십니까?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기를 원치 않으신다면, 폐하께서 직접 날카로운 칼을 내리시고, 전신의 목을 치옵소서. 그리하면 나라가 바로 설 것입니다.‘
임금께서 이 글을 보시고는 노하시며 글을 올린 자를 찾아 그 목을 벨 것을 말씀하셨다. 바로 그때 전신이 나서며 ‘지금까지 살며 제가 배운 것은 오로지 사람을 살리는 것뿐이었으니, 저로 인하여 누군가를 죽이라는 말씀은 제발 거둬 달라’ 애청하니 임금은 그만두라며 명을 내렸다.
이 일 이후 나라에 어려움이 많아 나랏돈이 몹시 부족하였는데, 전신이 다시 한번 힘써 자금을 끌어오니, 난처함이 없어졌더라. 이에 임금께서는 부민후(富民侯 백성을 부유하게 하는 제후)의 자리를 주시며 그 노고를 칭찬하시었다.
한편, 전신은 오래전부터 진(晋) 나라의 큰 부자인 석숭과 친하게 지내곤 하였는데, 어느 날 전신은 그에게 조만간 떠나야 하겠다고 말하였다. 이에 석숭은 그를 만류하며 억지로 눌러 앉혔는데, 전신이 이런 석숭을 보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아, 석숭도 곧 망하겠구나. 주역에 이르기를, 사물이 변화하여야 썩지 않는다 하였는데, 석숭은 탐욕이 많아 변하는 것을 싫어하니, 이후 큰 화가 미칠 것이다!”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신의 말대로 석숭은 죽임을 당하였고, 친족들까지도 화를 면치 못하니, 사람들은 전신이 걱정되어 안부를 물었다. 이에 그가 웃으며 대답하기를 ‘나는 무탈할 것이니 걱정 마시오’ 하였으니, 과연 죄인을 잡으러 온 사람들이 오히려 전신을 모셔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후 전신이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더라.
- 김만진, ‘전신전’ -
“너무 돈 밝히면 못 써!”
어렸을 적, 아버지는 신문에 나온 기사를 보며 내게 말씀하셨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큰 기업에서 일하는 어떤 사람이 돈에 눈이 멀어 회사 자금을 횡령했다는 소식이었다. 결국 그는 재판에 넘겨졌고, 결국 감옥에 들어가 죗값을 치러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소식을 듣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어느새 돈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돈을 아껴야지’ 같은 생각을 넘어서 돈이 무서워졌다. ‘혹시나 나도 돈 때문에 저렇게 되면 어쩌지?’하는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조금 더 자란 후에 무섭게 느껴졌던 돈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돈을 너무 밝히고, 욕심을 부리는 것은 문제이지만, 돈이 없는 것 역시 문제가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이는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신의 이야기는 이점을 잘 말해준다. 돈은 한 나라를 위기에 빠지게 할 수 있을 만큼 두려운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백성을 풍족하게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 유용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저자는 돈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면서 멀리하라고만 말하지 않는다.
돈 자체를 악하다 혹은 선하다 말할 수 없다. 사용하는 주체에 따라 돈은 좋은 일에도 쓰일 수 있고, 정 반대의 일에도 악용될 수 있다. 그렇다. 문제는 돈이 아니다. 돈을 다루는 당신의 손 안에 모든 것이 달렸다. 그러므로 레바논의 시인 Kahlil Gibran의 말은 마음에 새길 법하다.
돈은 현악기와 같다. 그것을 적절히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불협화음을 듣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