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공감
‘지잉’
손목에서 진동이 울린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나는 속칭 ‘앱등이’다) 이제는 이게 ‘재난 경보문자’인 것을 알만큼 익숙해졌다. ‘익숙해졌다’라... 혹시 누가 생각이라도 했으랴?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패션 아이템’에 불과했던 마스크가 ‘생존 필수템’이 될 줄을.
물론, 인류가 이런 유행성 전염병을 경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의 우리는 흑사병, 스페인 독감 같은 위기를 넘겨왔다. 굳이 경험하지 못했어도 그 심각성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물론 기록으로만.
‘어린 인간’은 코 앞의 있는 공포에 무감각한 경우가 많다. 2009년이었나? 신종 플루가 유행했다. 어떤 고등학생은 ‘열이 있다’며 양호실에 찾아갔다. ‘조퇴하고 피방 가야지.’ 생각했을 그 친구는 아마 체육 선생님이나 학생 주임 선생님에게 불려가서 신나게 불빠따를 맞았을 거다. 왜냐고? '80' 온도계에 이 숫자가 찍혔거든. 그래 맞다. 조퇴하고 싶어서 드라이기로 귀를 덥혔던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그렇다고 해서 나도 한 번쯤 이런 소망(?)을 품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아폴로 눈병이 유행했을 때였다. 친구들 사이에서 ‘품앗이’가 유행했다. 한명이 눈병에 걸리면 그 손으로 친구 눈을 비벼주는 그런 품앗이.
나는 그저 마음으로 간절히 바랐다. 그래, 바라기만 한 것이다. 친구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혹시나 저 친구의 손으로 내 눈을 비볐다가 정말 그게 내 눈에 옮았을 때, ‘그게 정말 죽을 만큼 아프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감히 “야, 나도 비벼줘.” 말은 못하고 그저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기만 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나는 이불 속에서 하늘에 있다는 누군가에게 평소 걸지도 않던 말을 걸었다. "저기요, 아저씨. 아, 아저씨는 아니겠다. 선생님? 아 몰라. 거기 계세요? 제가 내일은 꼭 좀 아파야겠는데 말입니다."
그 날 어떻게 잠에 빠졌는지, 대체 ‘내일’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내가 왜 그리 학교에 가기 싫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지금도 잊을 수 없었던 것은 아저씨인지 선생님인지 뭐라고 불러야 좋을지 몰랐던 그 분이 이불 속에서 간절히 중얼거린 말을 들었다는 확신에 찬 놀라움이 아니라 한쪽 눈이 감긴 채 떠지지 않는 것에 대한 그것이었다.
“엄마, 나 눈이 안 떠지는데?” 거의 울먹이다시피 말하며 화장실로 갔다. 거울을 봤다. 눈곱이 오른쪽 눈꺼풀을 완전히 덮고 있었다. 무슨 벌레 떼어내듯 찌푸리며 급하게 털어냈다. 비로소 떠진 눈은 정말 새빨간 색이었다. 춤을 추고 싶었다. 하지만 내적댄스로 만족했다. 엄마가 보였고, 내 등짝은 소중했으니까.
‘앗싸 나 눈병!’
천형(天刑)이라고 부르는 그 병에 걸린 환자들만 사는 마을이 있었다. 어떤 의사가 그곳에 들어갔다. 그는 ‘이방인’이었던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마을 사람들을 보며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기도했다. ‘저분들과 똑같은 모습이 되게 해주십시오.’ 어느 아침 의사는 환자가 되었다. 그가 맞이했던 가장 기쁜 아침이었다.
여기 또 다른 사람이 있다. 어린 아이처럼 늘 해맑은 그를 세상은 ‘지적장애를 앓는 사람’이라고 한다. 어느 날 TV를 보다가 남자는 울었다. 팬 사인회에 갔다가 울부짖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이 나왔기 때문이다.
‘상태 형을 만나고 싶다’고 여동생에게 말했다. "같이 헝아하고 롯데월드 갈래." 반복되는 그의 말에 여동생은 ‘헝아’에게 연락을 했다. 오빠는 계속 "내가 달래줘야 돼. 상태 형 지켜줘야 돼." 말했다고.
고길동 인형이 걸린 가방을 맨 상태 형을 사람들은 그 날 드라마가 아니라 롯데월드에서 마주쳤다. 촬영 날은 아니었다. 해맑아 보이는 어떤 남자와 함께 손을 잡고 놀이기구를 타며 함께 웃는 오정세를 내가 봤다면 아마 “와, 배우 신분이신 줄 알았는데, 배우신 분이었네.” 말했겠지.
최애 고문영 작가의 팬 사인회에 갔다가 소리 지르며 울부짖는 문상태의 모습을 보며 배범준씨가 눈물 흘렸던 것은 그가 같은 아픔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누가 알까? 세상은 그를 ‘아픈 사람’, ‘지적장애인’이라 부르지만, 사실 그는 함께 ‘아파함’을 통해 자신이 누구보다 건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공감의 다른 이름이 있다면, 동병상련이다. ‘같은 병자끼리 가엾게 여긴다’는 뜻을 가진 이 사자성어가 만나보지도 못한 그 사람, 배범준씨의 모습에서 진하게 보이는 것은 왜일까? 나의 건강함이 부끄럽다. 참으로 부끄럽다.
오늘 나는 그때의 소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땀이 흘러도 좋다. 그때와 같은 그 중얼거림이 나에게 필요한 것 같다.
'저기요, 아직 거기 계세요? 오랜만이네요. 다른 건 아니고요, 제가 내일은 꼭 좀 아파야겠는데 말입니다.'